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선생 Oct 10. 2023

7. 개근상 VS 우등상

엄마 어릴 적에 어른들은 아파도 학교가서 아프라면서 우리를 무조건 학교를 보내던 시절이었어. 지금처럼 현장체험학습이나 병결로 인한 인정결석 같은 제도도 없었고, 어린 우리에겐 학교는 안가면 안되는 절대적 공간이었지. 그리고 초등 6년을 아픔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가면 '6년 개근상'이란 것을 줬어.


엄마는 바로 그 대단한 '6년 개근상'을 탄 사람이야. 그때의 6년 개근상은 우등상만큼? 아니 어찌되었든 굉장히 의미있는 상이었어. 생각해보렴. 6년 동안 매일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가는게 쉬운게 아니야. 아픈 날도 있는데 조퇴를 할지언정 그때도 갔다는 얘기니까. 엄마는 굉장한 건강 체질을 타고 나서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았던 건지, 조퇴한 기억마저 없어. 그게 가공식품 먹지 않고, 매일 매일 자연에서 잘 뛰어 놀았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엄마의 타고난 기질은 하기 싫은 걸 참고 하는 걸 정말 못하는 사람인데도, 6년 개근을 탔던 걸 보면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교에 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던 게 분명해. 더구나 나때는 토요일에도 오전엔 학교에 갔었는데 말이지.


그나저나 엄마의 6년 개근의 증거를 찾아보니 엄마꺼는 없고 대신 아빠의 고등학교 시절 우등상장과 개근상장을 찾았어. 믿기지 않게 아빠는 이 두개의 상을 모두 탔네. 아이큐는 전교에서 가장 높았고, 전국 등수를 가진 전교1등을 이기지는 못해도 한 학년 1000명 가까이 했던 그 시절에 전교2등으로 졸업 했다고 자랑삼아 얘기를 하더니 진짜였나보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우등생은 꼭 아니라더니....쉿! 아빠 디스는 비밀이야~


남편 제공



지금이야 아이들 하나하나의 장점을 찾아서 상을 주는 바람직한 문화로 인해 초등학교 졸업식에 누구나 하나씩 상장을 주더라. 그리고 중,고등학교에서도 과목별 학업 우수상을 주니 상장이 좀 흔해진 시대가 되었지. 그러다보니 너희들도 상장에 특별히 의미를 두지 못하는 것 같더라. 그저 형식적으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더라고.


당연히 나때는 상장의 의미가 지금보다 더 무게감이 있었어. 학업 우수상은 모든 과목의 점수를 더해 평균을 내어 등수를 매겨서 주었지. 그러다보니 학업 우수상을 탈때는 일어나서 모든 아이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어. 박수를 받는 아이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우월감을 느끼는 일이었고, 박수를 치는 대다수의 아이들은 열등감과 부러움을 느껴야 했으니까.


그래서 엄마 어릴적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은 꽤나 쓸모있는 권력이었지.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유독 관대했고, 소위 일진이라는 아이들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절대 건들지 않았어.  전교1등의 아우라는 엄청난 것이었어. 그건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에서는 전체 평균을 내지도 않고, 등수 자체를 공개하지 않잖아. 학교의 비경쟁 교육을 하겠다는 의도는 참 좋은 것 같은데, 사회 자체가 경쟁적이라 학교의 그런 의도들은 자녀의 위치가 잘 파악되지 않는 부모들에게 되려 불안을 부추기는 것 같아.


어차피 학교 밖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약육강식''독자생존'이 만연해 있는데 말이야. 치열한 경쟁을 치뤄야할 대학입시는 엄마때보다 학령인구가 절반정도로 줄었지만 서열화는 더 공고화 되어 있는 냉혹한 현실이야. 그 서열에서 조금 더 높은 위치를 차지 하기 위한 경쟁은 정말 말도 안되게 치열하니까.


등수를 매기지 않는 학교가 아니라, 등수를 매기지 않는 사회가 우선인 것 같아.

아들 상장


지난 1학기때 우리 **이는 9과목 중에 7과목 교과 우수상을 받고, 예절상을 받았더라. 너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전과목 교과목 학업 우수상을 받겠다고 선언했지. 학교 시험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영어 어학과 코딩과 농구를 배우는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만 지필 평가는 물론 모든 과목 수행평가까지 만점을 받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 엄마는 약간 코웃음을 치기도 했지. 너는 국어 수학 지필 평가에서  하나씩 틀려 아쉬움이 많았지만 엄마는 7과목 우수상에 예절상까지 받아 와서 매우 기뻤어. 아빠는 이건 성적표와 함께 액자 처리를 해둬야 한다며 너를 더 으쓱하게 해주었지.학교 시험 공부를 위해 달리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서도 공부를 곧 잘하는 너희들을 둔 엄마는 그저 고마울뿐이야. 이게 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이란 거 알지?


그나저나 엄마는 초등학교 이후로는 받아 본적이 없는 우등상을 받는 걸 보니 공부 머리는 아빠를 더 닮았나보다. 공부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고루 잘하는 너를 보고, 특정 부분만 발달한 너의 누나는 엄마가 유전자를 잘 못 분배했다고 투덜대기도 하는데 그게 어디 엄마 맘대로 되는 일이겠니?말했듯이 각자 타고난 재능이 뭔지 잘 알아내서 잘 쓰고 사는 방법을 연구하며 사는 수밖에.


똑똑한지, 성실한지, 사회성이 좋은지, 운동 능력이 좋은지, 손재주가 좋은지, 듣는 귀가 좋고 보는 눈이 좋은지 말이야. 혹여 유전자 몰빵된 운 좋은 사람도 물론 세상엔 많지만, 모든 인간은 살아가는 도구로 쓸만한 재능 하나씩은 누구나 있으니 자신이 절대 가지지 못하는 걸로 남과 괜한 비교를 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기만 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그런데 얘들아~똑똑함과 성실함 중에 진짜 무엇이 더 중요할까? 엄마가 생각하는 똑똑함은 꼭 학교 공부에 국한되지 않고 분야에 따라 다양하다는 걸 우선 말해두고 싶어. 그리고 엄마가 만난 진짜 똑똑한 어른과 똑똑한 아이들은 대부분 매우 성실하기도 했어. 타고난 지능과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성실성이 뒷받침되어주지 않는다면 그 재능은 그저 잠재력으로만 머물게 되더라. 그러니 어느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똑똑한 사람들은 성실하기도 했던 거지. 그런데 그들이 성실했던 것은 어떤 종류의 공부든지간에 그들이 했던 공부가 그들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 실제로 사람은 적성에 맞지도 않은 일에 진심으로 오래 성실함을 유지하기는 힘들어. '죽을각오'와 같은 절실함이나 절박함이 없다면 말이야.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잘하는 일을 찾는 게 언제나 우선해야 해. 그러면 저절로 성실해지는 게 인간이야.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어떤 의미든 재미있고, 즐거운데다 얻는 것까지 생기니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야. 그렇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매일 성실해야 한다면야 그건 '노예'의 삶이거나, 오로지 '희생'으로만 점철된 삶이 아니고 뭐겠니. 그러니 늘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너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기 바란다.


엄마 어릴 적 얘기 해준다고 해놓고 꼰대의 잔소리만 길어졌네. 미안~



이전 07화 6. 학교 앞 네모난 상자 속 병아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