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아주 작을 때/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두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우리 함께 한 날은/그리 길게 가지 못했지 어느 날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슬픈 눈으로 날갯짓하더니
새벽 무렵엔 차디차게 식어있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눈물이 마를 무렵/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날아라 병아리>1994. 넥스트 2집 정규앨범
신해철 작사, 작곡
엄마가 처음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야. 국어 시간에 어떤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해서 엄마는 초등학교 시절 병아리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발표했어. 그런데 그때 아이들 사이들 사이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리고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와서는 '너 왜 표절을 하냐?' 이러는 거야.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지. 아이들 말에 따르면 '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와 내가 쓴 글의 내용이 완전히 똑같다는 거야.
엄마는 억울한 마음은 없었어. 표절이 당연히 아니었으니까. 그 가수는 너희들도 많이 들어 알고 있는 노래를 작사작곡한 사람이야.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가슴이 뛰게 하는 노래를 만든 사람. 모든 삶의 응원가 같은 명곡을 데뷔곡으로 만들어 여전히 각종 운동경기나 방송에서 가슴 벅찬 순간을 표현할 때 배경음악으로 언제나 쓰이는 그 노래를 만든 사람. 그래서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그 노래.
빠빠빠빰바 빠바바빰바~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 걸
아직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 <그대에게>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 신해철-
아이들 사이에 표절 의혹은 가시지 않았지만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이 유명한 가수라는 사실이 뭔가 희한한 자부심까지 느끼게 했어. 그 이후 엄마는 그 노래를 들었고,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 정말 내가 쓴 글과 싱크로율 90%였으니까. 그 이후 엄마는 혼자 알 수 없는 유대감 같은 것을 느끼며 애틋하게 그 가수를 좋아했어. 오직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감정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음악이 딱히 내 취향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마 어릴 적에는 운동회 같은 특별한 행사를 하는 날이나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어. 그래서 같은 시절을 산 사람 중에는 엄마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꽤 많을 거야. 나중에 커서 '학교 앞 병아리' 이야기를 하면 자신들도 사서 키워봤다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이들을 생명이 아닌 '치킨'이라 부른다.
엄마가 그 아이와 만난 건 초등학교 4-5학년이었어. 하교를 하려고 학교 정문을 나서는데 옹기종기 모여 삐약대는 병아리를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지. 그리고 한 마리에 100원 정도 했던 병아리 값은 뭔 모르는 아이들이 '살아있는 장난감'으로 사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값이었지. 그래 엄마는 그 귀여운 병아리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귀엽다'라는 이유로 덜컥 사버렸어. 집에 가면 늘 심심했던 엄마는 그 아이를 그렇게 치마폭에 싸서 조심스럽게 집으로 데리고 왔어. 그리고 그 아이가 하늘로 갈 때까지 식구들의 잔소리와 구박을 견뎌야 했어.
일단 그 아이는 데리고 온 날부터 밤새 '삐약'거렸어. 어린 내 귀에는 그 소리가 아름다운 새소리로 들렸지만 이미 동심을 잃은 다른 식구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소음에 불과했지. 그래도 난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이에게 이것저것을 먹여보며 상자에 넣어 애지중지 키웠어. 상자에서 꺼내 놓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져서 그럴 수는 없었어. 게다가 학교에도 데리고 갈 수 없으니 수업 중에도 온통 그 아이 생각뿐이었지. 가족 중 누가 갖다 버리지는 않았을까? 혹시 상자를 탈출하여 마루에 떨어져 다치지는 않았을까? 또 마당에 나와 개의 공격을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들. 그래서 엄마는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갔어. 그 순간은 내가 올림픽 달리기 선수가 되는 양 날듯이 뛰었어. 그리고 크게 "아리야~"라고 불렀지. 그래 엄마는 그 병아리를 '아리'라고 불렀어. 그러니 표절이라고 더 의심을 받았던 거야.
사실 엄마는 웬만해선 달리지 않는 사람이란 거 알지?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었던 것도 달리기였어. 한창 체력이 좋아 빠르게 잘 달릴 수 있는 나이 때도 100m 달리기를 20초에 달렸으니까. 그런 엄마가 올림픽 선수가 된 양 달렸다고 한다면 얼마가 숨 가쁘게 달렸겠어. 그 정도로 엄마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리를 사랑했고, 아리와의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했어. 엄마 눈에 아린 정말 너무너무 예뻤거든.
그날도 여느 때와 똑같이 엄마는 빛의 속도로 달려 집으로 왔어. "아리야~"라고 불렀어. 그런데 집안은 너무도 조용했어. 내가 부르면 어디선가 "삐약삐약' 소리가 들려왔고, 난 그 소리를 찾아가 아리를 발견했지. 그런데 그날은 아무리 불러도 집안 어디에도 아리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 예전에도 상자를 탈출해서 마당을 활보한 적도 있었고, 심지어 없어진 아리를 어떻게 갔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옆집 마당에서 아리를 찾아온 적도 있었으니까. 난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리를 찾아다녔지. 이 작고 귀여운 녀석이 그 작디작은 발걸음을 옮겨 어디 가서 또 놀고 있을까. 아리와 숨바꼭질하듯이 그렇게 한참을 찾아다녔어. 날이 쌀쌀해진 늦가을이라 겉옷을 걸치지 않고 돌아다니다 보니 추웠어. 늦은 오후가 되도록 아린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어. 불안했어. 그리고 슬픔이 밀려왔어. '얜 대체 어딜 가서 이렇게 걱정을 하게 만드는 거야' 슬픔을 아리에 대한 투덜거림으로 밀어내고 있었어.
일단 너무 추워서 집안으로 들어왔어. 따뜻하게 깔아 놓은 두꺼운 담요 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 추위를 가시고 다시 나가 찾아보려고 했어.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으니 그 안에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담요를 걷어 올리는 순간 '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 그 이후부터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어.
아린 담요 속에서 납작하게 눌려 죽어있었고,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 몸은 눌린 그대로 이미 굳어있었지. 어찌어찌 이불 속에 들어갔던 아리는 누군가의 엉덩이나 발에 밟혀 죽은 듯했어. 아무 소리도 내지르지 못했겠지. 아리를 손에 올려놓고 울고 있는데 외출했던 외할머니가 왔어. 외할머니는 엄마 손에 있는 아리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어. "병아리가 죽어서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는 거야? "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어. 별 대수롭지 않게 그까짓 거 죽었다고 그렇게 우는 거냐는 말투였어.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화를 낼 여력이 없었어. 아리가 죽었다는 사실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그렇게 1시간이 넘게 울고 있으니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아리를 묻어 주라고 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마당 한편에 아리의 무덤을 만들었지. 흙을 파고 차갑지 않게 나뭇잎을 두껍게 깔아 주었고, 마당에 핀 가을꽃을 꺾어 이불을 만들어 덮어주었어. 그리고 기왕이면 고운 흙으로 덮고 무덤의 둘레에 작은 돌들로 둘렀단다.
엄마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날을 떠올리면 여전히 눈물이 그렁해져. 아마도 아리는 엄마가 사랑한 처음의 존재였고, 이별한 처음의 사랑이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