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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11. 2023

8. 복도 바닥 양초 칠하기

엄마 어릴적엔  학교로 장학사가 시찰을 나오는 날이면 특별 대청소를 했어. 그때는 마루에 양초칠뿐 아니라 화장실, 운동장 할 것 없이 새단장을 했어. 우리는 청소를 하면서 장학사라는 존재가 신분이 꽤 높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 그때 우리에게 선생님도 꽤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런 선생님들이 장학사들이 온다고 하면 엄청 긴장을 했으니까.


뭔가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듯 먼지하나 없이 어린 우리를 동원하여 청소 노동을 시켰지. 그리고 벌어지는 계속된 촌극들. 수업이 시작되고 장학사들이 참관을 하고 있으면 선생님은 갑자기 안쓰던 학습 목표를 평소보다 더 정갈하게 글씨를 썼고, 참관 수업 시간에 대비해 미리 발표 잘하는 아이들에게 시킨 답변을 하게 했어. 그리고 수업시간에 웬 갑자기 존댓말까지?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날 하루 그런 연극들을 했던 것일까?


특히 그때 했던 청소들 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양초 칠해서 마루 바닥에 윤을 내는 일이야. 교실 바닥들이 나무 마루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마루바닥에 양초를 칠해서 마른 수건이나 헝겊으로 윤이 나도록 닦았어. 그것도 저 양초와 걸레는 집에서 가져오도록 했지. 청소를 시키려면 적어도 도구 정도는 제공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참 나라가 국민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던 시절이지.


어린 우리들은 복도에 나란히 줄지어 앉아서 노래를 부르며 리듬에 맞춰 바닥 청소를 했어. 어떤 노래였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바닥을 닦으면서 리듬을 맞추기에 좋았던 것 같아. 그렇게 노동요를 부르니 덜 힘든 것 같기도 했고, 다 같이 하는 일이니 조금씩 나눠 자기 앞만 열심히 닦으면 되는 일이라 크게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게중에는 떠들고 하는 시늉만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엄마는 꾀부리지 않았어. 오히려 매우 열심히 양초를 칠하고 어깨가 떨어지도록 바닥을 문질러댄 기억이 선명해. 그래도 다 해 놓고 나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마루바닥을 보고 꽤 뿌듯했어.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한장면


 <내 마음의 풍금> 이라는 영화에 엄마가 말하는 그 장면들이 고스란히 등장하는데 각자 자기 반 복도 앞을 저렇게 앉아서 닦았어. 근데 중간에 비어 있는 4학년 2반 복도 보이지? 영화의 내용에서 저 반은 선생님은 복도에 양초 칠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시키지 않고 아이들과 다른 활동을 해서 선배 교사에게 훈계를 듣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더라. 그냥 깨끗하기만 하면 되지 굳이 양초를 칠해서 윤을 낼 필요가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장면이 나오거든. 아쉽게 나는 그런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런 선생님이 있긴 했나봐.


저렇게 닦아 놓으면 굉장히 보기에는 좋긴했는데 자칫 잘못하여 양말 신은 발로 뛰는 날이면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어. 초등학생 아이들은 알다시피 그냥 걷는 법이 없는 없잖아. 늘 뛰어다니는 게 기본인 나이인데 저렇게 광을 내 놓은 마루 바닥을 뛰다가 엉덩방아를 찧거나 더 심하게 넘어지면 뒤통수까지 바닥에 찧는 경우도 종종 있었거든. 그때야 저 바닥의 위험성보다는 아이들의 조심성없음을 나무라면 그만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저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고, 엄마의 어린 시절은 80년대였는데 저런 관행이 진짜 오래되도록 이어져 왔다는 거잖아. 엄마가 중학생이 되었을때가 되서야 학교 건물 바닥이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물걸레를 빨아다가 청소를 하면 되니 더 이상 저 양초칠하기는 하지 않아도 되었단다.


양초로 바닥 칠한 이야기를 너희들이나 엄마 학생들에게 해준적이 있었는데 너희들은 하나같이 눈이 엄청 동그래지더라. 그걸 당연하게 했던 시절의 생경함과 왜 대체 굳이 윤이 반들반들 나도록 그런 청소를 했냐하는 납득하기 어려움때문이었겠지. 글쎄 왜 그랬을까? 대체로 우리는 처음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규칙들을, 한참 시간이 지나 그것을 할 뚜렷한 명분이나 이유도 없음에도 지속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냥 원래 하는 것인양 받아들이고 사는 것 같아. 그 중 어떤 것은 전통이고, 어떤 것은 악습에 불과한 것인지 구분할 필요는 반드시 있어 보여.


어린 엄마도 그저 어른들이 하라고 하니까, 이상하다고 여기지도 않았고 그러니 당연히 질문을 해본 적이 없는데, 저걸 대체 왜 했어야 했는지 아는 사람이 대답 좀 해주면 좋겠다. 어린 우리들의 무릎보다는 그깟 나무 바닥이 더 중요했던 걸까? 아니면 저 마루바닥을 닦는 것처럼 매일 마음과 정신을 저렇게 닦으라는 아주 깊은 뜻이 담긴 교육 활동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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