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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Oct 27. 2023

언젠가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이들을 위한 詩]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젊은 날엔 젊음을 잊었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생각해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반복)


-작사: 이상은


이상은 [Darkness ]1993


열아홉살 여자 아이 셋은 학교를 가야하는 일요일 자습날 기차역에 모였다. 아무리 고3이라도 힘들고 지칠때 쉴 권리는 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가 '일요탈주'를 기획한 이유다. 미리 말해봤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허락해줄 것 같지 않았다.


'니들만 힘드냐! 꼴값 떨지말고 공부나 해'


이런 말이 돌아올 것 같아 우리는 집에는 학교에 가는 척하고 나섰다. 그래도 학교에는 말을 해둬야 집으로 전화가 갈 것 같지 않아서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리고 진 사람이 담임에게 전화를 해서 알리기로.


"가위, 바위, 보!"

"아...이...C"


언제나 그렇듯이 운이 별로 없는 내가 걸렸다. 애들은 미안했는지 담임이 날 이뻐하니 니가 하는게 맞다고 총대를 매는 나를 격려했다. 나는 그 말보다는 전교1등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을 보험삼아 용감하게 공중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꾹꾹 눌렀다. 빠르게 널뛰는 심장때문에 수화기를 든 손이 덩달아 발발발 떨렸다. 전화는 교무실로 연결이 되었고 다른 선생님이 받고 이어 담임이 전화를 바꿔 받았다.

   

"네~전화 바꿨습니다"

"선..생님...저 **인데요"

"왜 학교 안오고 전화야!!"

"저...."

"뭐!! 왜!! 말해!!"

" (크게 한숨 한번 쉬고 이어 빠르게) 선생님 저랑 주영(가명)이랑 **이랑 오늘 학교 안가요. 저희들 오늘 여행가요. 그러니까 그런 줄 아시고 집에 전화 하지 말아주세요. 야단은 내일 맞을게요. 죄송해요. 전화 끊을게요"

"야..ㅁ 스 미 너...."


담임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내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이들은 잘했다면서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 뒤로 알 수 없는 자신감과 자유로움을 느끼며 우리는 기차에 올라탔고,  모든 것이 즐거웠던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는 용돈을 각출하여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뇌물'도 챙겼다.


다음 날 쫄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우리 셋은 교무실로 들어갔고 선생님 책상 앞에 냅다 그 뇌물을 먼저 바쳤다. 선생님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으셨다. "하하하하~ 으이구 이것들을 그냥! 아~이거 아니였으면 뒤지게 패버리려고 했는데(이때는 이게 굉장히 자비로운 언사였다)" 하시며 잘놀았냐고 물으셨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주의만 주시고 교실로 보내주셨다. 나는 역시 전교1등은 뭘 해도 면죄부가 주어진다 생각했다.


  



 내가 유일하게 지금도 이름이 아닌 '친구'라고 저장해놓은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입시의 정점인 고3때였다. 이제는 겉보기엔 아이라고 하기에는 분명 민망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순진하고 철없던 54명의 여자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담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대의 마지막 해를 이제 막 시작하던 화사한 봄날이었다.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와 자신의 이름과 가르치는 과목을 소개하고는 출석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담임은 이제 갓 마흔의 나이임에도 머리가 온통 새하얀 백발에 커다란 잠자리 안경을 쓴 남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입에서 아이들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지고 익숙한 이름과 한번도 같은 반이 된 적 없는 아이들 이름이 섞여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낯익은 이름 하나가 불렸다. '김주영(가명)'. 늘 전교1등만 하던 아이. 그 동안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 얼굴도 잘모르지만 그때는 전교1등이 누구인지는 다 알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는 얼른 대답하는 목소리를 쫓아 뒤돌아 보았고 내 두칸 뒤쪽에 앉아있던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고 한달에 한번 일요일 자습이 없던 토요일 오후 아이들은 모처럼 쉬는 다음날의 기대에 들떠 서둘러 짝을 지어 하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울음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김주영이 울고 있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 슬픔의 깊이는 어디서 본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닮은 것이었다. 전교1등쯤 하면 고민이나 슬픔따윈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해졌다.


"괜찮아?"


눈이 한번 마주쳐 웃음을 주고 받았을뿐 그 뒤로 데면데면 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그런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자 그 아이는 날 선 눈으로 날 째려보았다.


"꺼져! 니까짓게 뭘 알아"


하긴, 내가 뭘 알겠나 싶어서 뒤로 순순히 물러나 내 갈길을 가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아이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말할 수 없어. 말해도 넌 모를거야"


나는 아무말 없이 한참을 그냥 옆에 있어주었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뒤로 우리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붙어지내는 단짝이 되었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집전화로 몰래 새벽까지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리고는 꼭 연애하는 연인처럼 이렇게 말하면서 통화를 끝냈다.


"조금있다가 학교에서 보자"


 지금도 내가 고3때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잠 못 자고 공부한 기억이 아니라, 주영이랑 함께한 모든 시간들이다. '공부는 체력'이라면서 야간 자습 중간에 매점에서 매일을 컵라면과 자판기 커피를 먹어 8키로씩 살을 찌우던 일, 자습을 하다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학교 뒤뜰에 나가 벌판에 대고 함께 소리를 냅다 지르던 일. 자는 시간빼고 매일을 붙어 있으면서 마음 속 이야기는 따로 편지를 써서 주고 받던 일들...


 그러다 하루는 다른 아이들 모두 돌아간 빈 교실에 남아 피자를 시켜먹고 책상을 붙여 침대 삼아 누워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면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더 느긋하게 이런 저런 수다를 이어갔다. 그런데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더 거세지기만 했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방도를 찾든지, 쫄딱 비를 맞고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언덕에 있었고 버스 정류장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교실을 둘러보던 우리 눈에 띈 구세주. 커다란 쓰레기통을 씌우던 검은 비닐 봉투를 보자 우리는 또 눈이 마주쳤고, 누가 먼저랄 것없이 검은 비닐 봉지를 가방을 멘 채 뒤집어 썼다. 그리고 앞이 보이게 눈 부분을 찾아 구멍을 냈다. 그렇게 우리는 위풍당당하게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쓰고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빗 소리보다 우리의 웃음 소리가 더 컸다.  


"역시 우리는 천재야!"

"하하하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사랑을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우정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 쉬웠는지 모르겠다. 매일 매일 생생한 에너지가 온 몸과 마음에 가득차던 시절이어서 그랬던가 싶다.


춤도 잘추고 글도 잘쓰고 잘 웃고 똑똑하기까지 한 주영이는 내 조그만 얼굴이 긴손가락과 머리카락이 늘 예쁘다고 해주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주영이와 함께 하면 재밌고  더 많이 기뻤고 더 빠르게 슬픔이 가라앉았다.   




분명 고3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했는데 주영이는 ' 수능 ○○○도 수석'을 하고 서울대에 갔다. 그리고 3년 뒤에는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에 재능이 있던 주영이었지만 쉽지 않은 시험이라 낙방을 거듭했다. 그 사이는 나는 서울에 올라와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드라마 습작을 시작했다. 나 역시 드라마 습작이 신통치 않았고, 주영이는 오래도록 연이어 사법고시에 실패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주영이는 언젠가는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가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길에 주영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하시고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잘못 걸었나 싶어 확인했지만 저장된 번호를 눌러서 그럴리 없는 분명한 주영이 번호였다. 그렇게 주영이는 갑자기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주영이의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나는 주영이가 살던 집을 찾아갔고, 메일을 보냈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아무런 답이 없었다.


주영이가 어디서 무얼 하는 지 모른채 얼마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다시 몇 년 뒤에는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다시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더 이상 답을 기다리지 않고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살아있을거야.'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시간은 흐르고 그 사이 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둘째 기저귀를 주문하려고 컴퓨터 앞에서 앉았는데 전화가 왔다. 바로 받지 못하고 그 번호를 한참을 바라보았다.....5678? 5678? 그 5678!!!!


"주영이니?"

"흐흐흐 응 나야"

"야~~뭐야!! 어디야!"

"서울~"

"언제 언제 왔어"

"한 2년 전?"

"엥? 그런데 왜 이제 전화해"

"미안해서..."

"(울컥)......"

"나 결혼해. 결혼식에 올거지"

"당연하지~"

" 미안해. 나는 너 결혼하는 것도 애 낳는것도 못봤는데"


울다가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가버렸다. 극 전개가 너무 롤러코스트 같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너무 기뻤다. 친구가 살아 돌아왔으니까. 그것도 집 나갔다가 남편까지 데리고 돌아왔으니 기쁘지 아니할 수 있을까? 연락을 안한거야 사정이 있었겠고, 나중에 들어보니 그럴만했다. 다 이해가 되었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알것 같았다. 그리고 되려 미안했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사라질만큼 주영이는 힘들었는데, 난 그때 뭘 하고 있었나 자책하며 미안했다. 든든한 친구가 못되어준 것에 용서를 빌어야할 건 나였다.


이제는 늘 붙어지내고 시시콜콜 하루하루를 공유하는 열아홉 그때처럼 지내지는 않는다. 멀리 떨어져 사니 얼굴보기도 힘들다. 나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탓에 아이들끼리 어울릴 나이대가 아니어서 만나서 같이 놀기도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늘 '친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 말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가깝고 오래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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