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선생 Oct 28. 2023

후라이의 꿈

[아무것도 이룬게 없는 이들을 위한 詩]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도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어서 남의 꿈을 빌려 꾸기라도 해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고래도 사랑을 찾아 파도를 가를 거라고

하다못해 네모도 꿈을 꾸는데

아무도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

하긴 무슨 기회가 어울릴지도 모를 거야

무시 말아 줘요 하고 싶은 게 없는걸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Spread out

틀에 갇힌 듯한 똑같은 꿈

Spread out out

난 이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와 퍼지고 싶어


난 차라리 굴러갈래

끝은 안 보여 뒤에선 등 떠미는데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고민 하나 없이 퍼져 있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가사: 이찬혁



악뮤 [LoveLee] 2023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절대 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꿈이 뭐니?'  이 질문은 때때로 꿈이 없는 이들에게는 폭력적이기꺼지 하다. 꿈이 없는 것을 한심하게 보거나 여하튼 긍정적으로 보지 않기때문에 꿈이 없다고 하면 그 뒤로 '충고, 조언, 평가, 판단' 같은 말들이 쏟아지기 쉽상이다. 늘 크고 작은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나 역시 꿈이 없는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을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상태가 되고부터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꿈이 뭐니?



고래도 사랑을 찾아 파도를 가를 거라고. 하다못해 네모도 꿈을 꾸는데 아무도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 하긴 무슨 기회가 어울릴지도 모를 거야. 무시 말아 줘요 하고 싶은 게 없는걸.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


어린시절 지독히 가난에 시달리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가끔 '기초 생활 수급자'였던 그 시절,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쌀을 타러 엄마와 동사무소에 가던 일을 가끔 떠올리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교복이 아 구멍이 났는데도 돈이 없어 새 교복을 사지 못하고 계속 입고 다니다 엄마와 얼싸안고 운 일을 떠올리곤 했다. 그 친구에게 가난은 '수치'를 가르쳤다. 그 친구는 당연하게도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고 안정적인 배우자를 선택했다. 드디어 그런 어릴적 수치를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느 식당과 어느 카페나 어느 곳을 가도 음식의 맛과 분위기보다는 테이블 수를 계산해서 매출을 짐작해보곤 했다. 그리고 몇 대를 이어 하면서 번호표 받아야 하는 줄서는 맛집을 갈때면 그것을 물려 받은 젊은 사장을 질투하기도 했다. '와~ 이런거 물려 받은 사람들은 좋겠다. 저 사람은 운이 참 좋네' 그 친구는 가난이라는 칼날에 마음을 깊게 베였고,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가지고 살고 있다.




종류는 다르지만 내 마음에도 그런 깊게 베인 상처의 흉터가 있다. 나는 나를 스스로 지키면서 살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적 살던 환경은 '방임'에 가까웠다. 방임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3가지 행동 중 하나다. '버림' '학대' '방임'으로 인한 상처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것은 깊은 무의식 속에 숨어 한 인간의 평생을 괴롭힌다.


아버지는 집안일 따위는 모른 척하고 밖으로 떠도는 한량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와 함께 5형제를 먹여 살리고 대학 교육까지 모두 시켰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나에게 밥해주는 일 이외는 전혀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더 한 부모도 있다고 말하겠지만 처지가 더 엉망인 사람과 비교해도 나는 전혀 괜찮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채로 아무것도 아닌양 살고 싶은 내면의 진짜 꿈을 포기하고 공식적인 '그럴듯한 꿈'을 갖었다. 그것이 나에게 힘을 주고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나의 꿈이 비현실적이라면서 나무랐다. '날고 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니가 어떻게' 엄마는 나물을 다듬으며 무덤덤하게 나를 깍아 내렸다. 꿈이 없다고 하면 현실을 생각한다고 해서 꿈을 말하니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뭘 어쩌라는 건지.....결국 나의 그럴듯한 꿈은 현실이 되지 못했으니, 어머니의 예언이 딱 맞았던 것이다. 나는 그럴 주제가 못되는 존재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사실 내가 공식적인 꿈을 갖은 건 그 깊은 결핍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나는 나의 유년을 잔인하게 복기하기 시작했고 더욱 고통스러웠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를 더 이해하게 되고 효녀 또는 효자가 된다고 하던데 나는 예외였다. 깊은 분노가 치밀었다. 무책임한 아버지에게는 물론이고 한없이 희생했던 어머니에게도. 한없이 희생한 어머니지만 어머니에게는 내가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나는 한 동안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한 채 살았다. 한참 뒤에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불완전한 존재'였을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써 용서도 사랑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 부모가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냥 난 운이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사실상 많은 꿈들은 이렇게 마땅히 채웠어야 할 욕망들의 작은 파편들일 경우가 많다. 욕망은 '가지고 싶은' 또는 '가졌어야 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때 생기는 결핍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것을 가지면 그 욕망은 해결되지만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욕망인 줄 모르고 또 '꿈'이라고 잘못 부르며 쫓게 되어있다. 이렇게 살다보면 한 평생이 그냥 지나간다. 보통은 자기가 쫓는 것이 욕망인 줄도 모르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하고 싶다'라고 하는 것이 욕망인지 꿈인지 분간할 줄 알아야 하는 '성찰'이 필수다.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도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어서 남의 꿈을 빌려 꾸기라도 해.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어쩌면 진짜 꿈이란건 관념속에만 존재하는 것인 줄 모른다. 인간은 길다면 긴 삶을 살아갈 원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저 생존만 하면 됬을 구석기 시대가 아닌 이상, 현대에는 실제로는 별 의미없는 삶에 의미 부여를 하고 길디 긴 삶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치열하게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그것에 '꿈'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것에 도달한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단호하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는 상태, 충만함으로 가득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룬 상태의 사람들은 보통 그 다음 단계의 삶을 산다. 바로 타인을 위한 삶, 타인을 돕고, 타인을 성장시키고, 타인을 사랑하는 삶이다.


그래서 먼저 세상을 살다가 간 지혜로운 인간들은 공통적으로 ' 삶은 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타인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결국 나의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야 말로 모든 인간의 공통된 꿈, 본질적인 꿈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사실 개별적인 각각의 우리들의 꿈은  '상처로 인한 흉터'가 꿈으로 둔갑한 것이 대부분이 아닐런지. 그러니 거창하고 그럴듯한 꿈이 아니어도 소박하게 하루 하루를 채워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어떤 하루를 살아볼 것인가 고민이 된다면 이렇게 그대들에게 묻고싶다.


당신은 무엇에 가슴이 설레입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언젠가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