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전담경찰관이 내 휴대폰번호를 특별 연동시켰다. 앞으로 내 폰으로 112를 누르면 바로 내 위치가 추적되고 곧장 경찰이 출동해 준단다.
나의 안전이 걱정된다며 내 차 뒤를 바짝 따라오는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퇴근한 날도 있었다. 어쩌다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걸까.
그 시작은 이랬다.
야간자습 감독을 하기 위해 학교 주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군가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나를 발견하고서 황급히 달아났다.
'지금 나보고 달아난 거 맞지? 근데 누구지?’
동작이 민첩하지는 않았기에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라는 느낌이 금세 왔다.
그래! 그 아이!
올 해 졸업해 지금은 대학교 1학년인 한 남학생.
'쟤가 왜 저러고 있지? 대학가서도 적응을 잘 못하고 있나?' 잠시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살짝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조금 전 그 행동은 분명 졸업생이 선생님에게 하는 일반적인 행동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더군다나 그 친구에게 다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들었던 기억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에이...저러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러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 날도 10시까지 야자 감독을 하고 퇴근하기 위해 차를 몰고 교문을 통과하는데 누군가 교문 뒤에 숨어 있다 튀어나오더니 내 차를 향해 뭔가를 던졌다.
액체가 든 캔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캔 안에 위험물질이 있었다고 한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본능적으로 재빨리 교문을 빠져 나와 백미러로 뒤를 돌아보았다. 또 그 남학생이었다. 순간 이건 단순한 장난이 아님을 직감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은 작년에(고3 때) 친구들, 선생님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 하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내성적인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 더 이상 숨지 않고
전면에 나타나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섬뜩했다. 집에 가는 내내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두뇌를 풀 가동했다. “왜 나한테?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로부터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고, 친구도 거의 없던 아이라 더 잘 해주려고 노력했었는데..” 하지만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음 날 문득 재학 중 그 친구가 상담실을 자주 드나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곧장 상담선생님께 일련의 일들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날 수 있더라
상담선생님이 그 아이와 통화를 시도하셨고 아이와 나눈 대화 내용을 전해 주시는데 황당했다.
그 아이는 내가 수업 중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한 말을 흉내내어 망신을 줬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맹세코 난 그런 적이 없다.
흉내? 내가 남의 흉내를 냈다고?
난 그런 변죽 좋은 성격이 못된다.
돌이켜보니 다른 교과선생님들도 그 친구가
선생님이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겨
지도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는 환청을 듣거나 주변인의 말들을
믿고 싶은 대로 조합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과 상담선생님이 부모님께 아이를 위해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려 봤지만 인정을 잘 안하신다는 얘기도 생각났다.
내 입장에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런데 상담선생님은 한 술 더 뜨는 제안을 하셨다.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선생님이 전근을 가더라도 끝까지 쫓아가 해코지를 할 수 있으니 일단 들어주란다. 울산에서도 조현병을 가진 아이가 서울로 이사를 간 선생님을 끝까지 쫓아간 적이 있었다는 실례를 드시면서.
하지도 않은 행동 때문에 캔 테러를 당했는데
사과를 받기는커녕 잠자코 들어주어야 한다니.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마음이 아픈 아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일이란다.
내키지 않는 이유가 훨씬 많았지만
전문가인 상담선생님의 조언을 믿고 따라보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
상담실에 아이와 단둘이 마주 앉았다.
긴장됐지만 몇 분만 잘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나의 노력은 몇 초 가지 못했다.
지금 내 앞에 앉은 그 아이는 과거에 내가 알던 어눌하고 어리숙한 아이가 아니었다.
재학 중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적이 없던 그 아이는 정면으로 내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아이의 눈빛에선 금방이라도 나를 공격할 것 같은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욕 세례.
태어나서 부모님이나 친구 그 누구에게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험한 말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어야 했다.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당장 뛰쳐 나가고 싶었다.
여차하면 달아날 출입문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 그 때,
옆 방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상담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이의 목소리가 점차 격앙되자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서둘러 날 내보내신다.
새파랗게 질려 상담실을 뛰쳐나오자 온 몸이 떨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간힘을 다해 뛰었다.
안전한 교무실 한 켠 휴게실에 당도하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때 알았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당황스런 상황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는 것을.
“왜..선생님, 무슨 일이야..”
뛰어 들어오는 날 향해 건넨 동료선생님의 물음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신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어버렸다.
너무 무서웠다. 너무 억울했다. 다 원망스러웠다.
그 아이도. 상담선생님도.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왜 들어주겠다고 말했을까?
사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억울하긴 했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대화겠거니 했다. 순진하고 잘못된 결정이 너무 후회스러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