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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Jan 24. 2024

14편. 이 조합 뭐지? 운명의 톱니바퀴!

[14화] 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닮은 듯 다른 세 사람      

Joanna와 Mariella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함께 걷게 되었다고 했다. 둘이 잘 맞았단다.

두 분은 뭐가 그리 잘 맞으셨을까?

조안나는 50대, 마리엘라는 60대 후반. 조안나(Joanna)는 영국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자라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 3개 국어에 능통했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번역 일을 하시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셔서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리신단다.

또 플룻을 연주하시며 악단 활동도 하고 계셨다.


마리엘라(Mariella)는 음악선생님을 하시다 정년 퇴임을 하신 이탈리아 분이셨다. 현재는 숙박업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 듣다 보니 두 분 모두 나랑 조금씩은 공통분모가 있어 보였다. 난 현재 언어를 가르치고 있는 영어 교사다. 또 공공연히 학생들한테 선생님이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피아니스트의 길을 갔을 거라며 음악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한 나였다.


무엇보다 우리 세 사람 모두 걷는 것을 좋아하고,

길 위 친구들과 소통을 즐기며

가톨릭 신자로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 여정을 시작했다는 면에서 확실한 공통점이 있었다.    

  

 리더(Leader) 조안나(Joanna)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우리의 소통방식은 이랬다. 마리엘라는 영어는 다소 서툰 편이셔서 셋이 대화를 나눌 때는 최대한 마리엘라 편에 맞춘 영어를 사용했다. 혹여나 마리엘라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영어로 표현이 힘들다 싶으면, 얼른 이탈리아어로 조안나에게 말한다. 그럼 찰떡같이 조안나가 영어로 통역하여 나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곤 했다. 마리엘라와 내가 좀 더 심오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조안나가 필요했다.


3개 국어에 능통한 조안나의 능력은 남프랑스 숙소 예약에서도 빛났다. 사실 남프랑스분들 중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영어가 안 되셔서 불어로만 소통이 가능하신 분들도 계시단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간극을 조안나가 좁혀줬다.

그래서 보통 숙소 예약은 조안나의 몫이 되었다. 조안나는 우리의 리더(Leader)이자 다리(Bridge)가 되어 주었다.     

Leader & Bridge Joanna

 조력자(Supporter) 마리엘라(Mariella)

마리엘라는 우리 중 가장 연장자답게 위기에 강했다. 조안나와 내가 한참 얘기에 몰두해 길 안내 표식을

그냥 지나쳐 갈 때 마리엘라는 차분히 길을

다시 잡아주는 역할을 해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걷는 방식을 지켜보는 게 참 재밌었다. 시작은 같이 하지만 어느 순간 조안나는 앞서 걷고 마리엘라는 뒤쳐졌다. 나이가 좀 더 있으신 마리엘라는 젊은 사람들의 속도가 자신에게 무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걸었다. 단, 멈추어 잘 쉬지는 않았다.


반면 조안나는 자신의 속도대로 빨리 앞으로 걸어 나가다, 어느 시점이 되면 배낭을 내려놓고 길 위에 주저앉아 쉬었다. 그러다 쉬고 있는 조안나와 다시 만나면 잠시 눈인사만 하고 마리엘라는 그냥 자신의 페이스대로 길을 계속 걸어 나갔다. 그러면 마을에 도착할 때 즈음 두 사람은 어느새 다시 만나 있었다.

     

어부지리. 이런 두 사람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나였다. 조금 에너지가 있을 때는 영어가 유창한 조안나와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조금 힘들면 조안나를 앞서 보냈다. 뒤에 마리엘라가 있으니 혼자 뒤처진다는 불안감 없이 나의 속도에 맞춰 걸을 수 있었다.


길을 출발할 땐 4월 중순의 이른 아침이라 다소 쌀쌀했다.하지만 한 시간 즈음 걷다 보면 몸에 열이 돌아 겉옷을 하나 둘 벗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중간에 벗은 옷을 배낭 안에 넣는 게 귀찮아 그냥 배낭 스트랩에 바람막이를 질끈 묶고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손으로 옷이 잘 있는지

더듬어 봐도 만져지지 않았다.

앗! 길 어딘가에 떨어진 게 틀림없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저 멀리 마리엘라가 뭘 들고 손을 열심히 흔든다.

바로 내 검정색 바람막이였다.


우리의 각기 다른 속도가 고마운 순간이었다.

이렇듯 마리엘라는 뒤에서 우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조력자(supporter)였다.      

든든한 조력자 Mariella

이제야 난 두 분이 왜 잘 맞는다고 하셨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두 분은 서로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 다른 틈을 잘 수용하고 맞추어

굴러가게 하는 두 개의 톱니바퀴셨다.

1 플러스 1 은 2 이상임을 고백하게 되는 만남.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는 만남.

그런 두 분의 아름다운 인연을 바라보다 보니

내게도 떠오르는 한 존재가 있었다.      


 운명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었던 건


궁극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은 같았지만

성향은 참 많이 다른 우리 둘.


학창 시절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어 주변에 항상 사람이 모이던 리더.

예술적 성향이 강해 자유롭고 ‘여자 신동엽’이라는 별명답게 늘 날 웃게 해 주던 동생. 혼자 속 끓이고 있는 내게 “왜! 누가 우리 언닐 속상하게 했어? 말해봐!”라며 항상 먼저 다가와 물어봐주던 동생.


반면 4살 어린 겁 많은 동생 곁을 지켜주고 보살피는 것에 익숙했던 나. 도전을 못하고 있다가도 겁 없이 뛰어드는 날 보며, ‘언니가 하는데 내가 못해?’ 라며 금세 용기를 내던 동생.

서로 달랐기에 힘든 순간 서로의 둥지가 되어주던 우리. 오죽하면 서로를 닮은 짝꿍을 보내주십사 기도하게 되던 존재.


그래서 난 그저 성향이 잘 맞는 찰떡궁합 자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동생의 깊은 마음을 알게 됐다. 언니가 많이 힘들어할 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언니를 웃게 해 주고 힘 나는 말을 해주려고 노력했었다고. 난 타고난 성향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서로 다른 톱니바퀴의 홈이 잘 맞아 굴러갈 수 있도록 해준 건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원래 잘 맞았던 것이 아니라, 서로 애씀으로써

잘 굴러간 톱니바퀴였다고 생각하니 더 감사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꼭 맞는 톱니바퀴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으로 맞춰갈 뿐.


사랑하는 동생아! 앞으로 언니가 더 사랑할께~  

 아름다운 마을 Saint-Guilhem-le-Desert

그런 존재를 순례길에서도 보내주신 절대자의 탁월한 안목에 감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즈음 지나게 된 Saint-Guilhem-le-Desert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이름난 관광지답게 옥빛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가 보기 좋았다. 

그 험난한 협곡에 세워진 Pont du Diable(악마의 다리)도 장관이었다. 이 오지에 804년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베네딕토 수도회(Gellone Abbey or Saint-Guilhem-le-Desert Abbey)를 세웠단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했다.

아름다운 회랑을 거닐며 관광객들처럼 우리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베어 물며 하루의 여정을 마치고 조안나가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어반 스케치 by 김명숙님
Pont du Diable(악마의 다리)

 민간닥터 포도알

너무 고마운 존재인 두 친구에게 난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기회가 왔다.

조안나는 발바닥이, 마리엘라는 어깨가 아프다고 했다. 족저근막염을 앓았던 터라 한국에서 좋은 근육통 크림을 준비해 왔다. 조안나의 발바닥에, 미카엘라의 어깨에 크림을 잔뜩 바르고 딱딱하게 굳은 발과 어깨를 마사지해줬다.


사실 집에서 내 손은 “금손”이라 불렸다.

식구들은 내 손 기운이 좋다며 아프면 너도나도 간절히 내 손을 원했다. 여동생은 갖다 대기만 해도 충전이 된다나 어쩐다나.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이탈리아분들께도 통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통증이 훨씬 줄었다며 좋아했다.

마리엘라는 “으음~ 쪼옥~” 특유의 이탈리아 손키스까지 날리며 나를 치켜세웠다.

이제 본인을 “이탈리아 맘(엄마)”이라고 생각해 달란다.


나는 그저 순례 초보로 조용히 따라나서는 Follower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의 민간닥터로 부르신 걸까?

앞으로 당분간 우리 세 사람의 순례가 즐겁게 이어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을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따라 침상 위 서로의 베개가 가깝다.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우리처럼.     

나란히 자리잡은 우리 셋의 숙소 침상
베네딕토회 수도원(Gellone Abbey or Saint-Guilhem-le-Desert Abbey)
숙소 확인하는 Joanna - 수도원 회랑 - Saint Guilhem de Desert 마을의 이정표

Day 7 : Montarnaud - Saint Guilhem de Desert 23.5km 완주 (17/0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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