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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Nov 15. 2023

5편. 세 번 만에 알아차린 하트시그널

[5편]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이해하고 있었다는 오해   


미술관에서 반 고흐와의 진한 만남 이후

거짓말처럼 그와의 우연한 만남은 계속되었다.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가면 머리가 완성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 가볍게 읽기 좋은

잡지들을 건네주시곤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디자이너님께서 준비해 주신

패션 잡지, 여행 잡지 사이에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제목의 책이 끼어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으로 내게 그림을 통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준

작가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이참에 그의 삶도 좀 들여다보고, 어떻게 그런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도 좀 알아볼까?

 고민 없이 그 책을 집어 들었고, 시간 내에 다 읽지 못해 아쉬워하자 평소 친분이 있던 디자이너님은 빌려주겠다는 배려까지 해주신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고

 찬찬히 그의 삶 언저리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사실 내게 고흐는 우울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광기, 스스로 귀를 자른 기이함, 정신이상, 권총자살 등.


어머! 그런데 깜짝 놀랐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읽다 보니

고흐 자신도 사람들의 이런 평판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미안했다.

형편없는 사람으로 그의 본질을 훼손시키려는

나를 포함한 뭇사람들의 섣부른 판단에도,

그의 영혼은 결코 침식당하지 않았다.

그를 향한 비난 따위는 가볍게 튕겨내 버리고,

자신의 영혼을 원망과 미움에 내어주지 않고 

평온과 사랑으로 채우고자 했던 고흐.

비수 꽂는 말들을 무심코 뱉어낸 사람들에게,

말이 아닌 작품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때로 말보다 강한 하트시그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말로는 쉬울 것 같지만

실행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쩌면 고흐는 '말'보다 진심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 허공에 흩어져버리고 마는 가벼운 말보다

소리 없이 긴 여운을 남기는 

글귀, 그림, 눈빛, 침묵,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마음속 메시지를 타인의 가슴 깊은 곳에

더 잘 전달해 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형과 같은 이름 빈센트로

독립된 빛이 아닌 형의 그늘로 살아야 했던,

선교사라는 도전에서 마저 고배의 잔을 마신 그가 창조주가 심어놓은 고유한 존재 이유를 입증해 보이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수단인 그림을 통해 말이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그의 그림에 감동을 받은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건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중략.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아! 더 이상 그는 내게

불행하고 가난한 정신질환자가 아니었다.

고흐는 예술에 진심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한,

그리고 고통을 사랑으로 끝내 극복해 내고자 한 

최상 중의 최상급 사람이었다.      


 우연이 세 번이면? 필연!


우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1월 즈음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를 개봉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하필 고흐의 전시회를 다녀오고,

고흐의 책을 접한 바로 같은 해에.

영화를 위해 125명의 화가가 6만 5천 컷의 유화를

2년 이상 직접 그린 그림들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장편 유화 애니메이션. 제작기간만 10여 년이 걸린

반 고흐의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가 곧 개봉을 한다는데 어떻게 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


from extremeMOVIE


오롯이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어

퇴근 후 혼자 조용히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를 놀라게 한 건

춤을 추듯 넘실거리게 표현한 장면 장면이었다.

 ‘오후의 낮잠’을 관람했을 때 살아 움직여

눈앞에서 일렁이는 밀밭을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의  장면이 명화이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다채로운 색의 향연에 눈은 호사를 누렸지만

 플롯의 중심 이야기는 사뭇 어두웠다.

고흐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타살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의심에 동조됐지만 점차 나는 자살의 가능성에 마음이 기울었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준 동생에게 매일 편지를 쓰던 고흐와 자식의 이름마저 빈센트로 짓고

형이 생을 마감하자 6개월 후 형을 뒤따라간(건강상의 문제) 그의 동생 테오,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끼는 동생이, 을 후원해 주느라

정작 본인지독한 가난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시리 아팠을까.

자신을 잘 모르고 떠들던 사람들의 말쯤이야

정진밑거름으로 화시킬 수 있었겠지만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자책감을 떨치힘들었던 건 아닐까.


어느덧 나는 그의 삶 언저리가 아닌

가장 깊고 아픈 마음 정중앙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내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갔.

그림으로, 책으로, 영화로.

우연이 세 번이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이쯤 되니 뭔가 내게 전해주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 것만 같았다.

산티아고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뒤,

대표적인 9가지 루트 중 어느 길을 걸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바로 그 타이밍에 말이다.

공교롭게도 아홉 개의 길 중 고흐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많은 작품을 남겼던 남프랑스 아를(Arles)에서 시작하는 순례길이 있었다.


그래!

아를(Arles)에서 순례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나에게 그림을 통한 첫 치유를 맛보게 해 준

고흐의 숨결이 살아 있을 그 길을!


그렇게 아를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1500km,

두 달 남짓의 나의 도보 순례에 대한 밑그림이

차츰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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