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알 Nov 22. 2023

6편. 웰컴 흑역사 3종세트!

[6편]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의탁[내어 맡김]을 향해 걸어가는 중입니다.

도착은 아직....


2018년 4월 5일

도보순례를 시작하기 전 친구와

파리, 남프랑스의 도시들을 5일 정도 여행한 다음

며칠간 순례를 함께 한 뒤 친구는 귀국하고,

나는 홀로 순례를 이어가기로 하고

파리 샤를드골 공항을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강과 하늘빛함께 빚어낸 낭만적인 에펠탑의 야경,

이듬해 2019년 4월 화재 소식이 더 안타까웠던

긴 세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노트르담 대성당,

친구의 버킷 리스트 루브르 박물관투어,

머플러 하나로 멋이 흐르던 거리 곳곳의 파리지엥, 

버터 향미 그윽한 원조 파리 크로와상의 추억까지.

  짧지만 알차게 즐긴 이틀간의 파리 여정

뒤로하고 니스행 테제베(TGV)에 올랐다.


노트르담 대성당

 한 여행책자 작가는 남프랑스의 도시들을 두루 둘러보기에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는 팁을 주었다. 그래서 니스, 에즈, 아비뇽, 마르세유 등의 도시를 차로 이동하며 여행하다 종착지 아를에서

차를 반납하고 걷기 시작하기로 했다.

     

소문으로 익히 듣던 프랑스 철도파업에도 불구하고

우려하던 일 없이 히 기차에 오를 수 있었고

4시간여 만에 니스시티역에 도착했다.

각각의 개성을 품고 있는 남프랑스 도시들을 빨리 만나고픈 들뜬 생각으로  Hertz 렌털샵에 들어섰다. 그런데 간단한 유의사항을 숙지한 후

키를 받고 운전석에 앉은 순간,

어째 들뜬 마음은 이내 긴장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처음 몰아 보는 차종,

길도 잘 모르는 도시를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 우리나라와 다른 차선, 낯선 신호 체계까지.

불안감을 부추기는 요소가 한 둘이 아니었다.     

 

니스, 남프랑스

하지만 그 감정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모험을 감행해 보겠노라 스스로 한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난 미리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거기에 학교라는 직장생활은 그 성향을 굳히는 데 한몫했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처리에 구멍이 생겨 고스란히

그 피해가 동료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가니까.

그래서 늘 긴장 속에서 각인형처럼 시간을 쪼개

계획적으로 해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나였다.



하지만 한 학생으로 인해 내 인생은

전혀 계획에 없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모토는 계획의 최소화였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떠나온 만큼,

나의 힘을 빼고 나를 그분께 맡겨 드리고 싶었다.


계획대로 인생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었고

하나하나 계획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떠나온 이상 굳이 계획적 삶을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순례길도 목적지를 미리 정해 놓고 걷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숙소 상황에 따라

갈 수 있는 만큼 걸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준비를 너무 최소화했던 걸까? 

나의 역사적인 국제운전 흑역사가 펼쳐졌다.

솔직히 창피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걷어 내고 용기있게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는 반증이기도 

자랑스러운 흑역사 3종세트!

     기대하시라! 놀라지 마시라!     


[흑역사 1]

니스여행을 마치고 마르세유로 이동하기 위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진입했다. 그런데 내려온 통행 바가 앞을 가로막았다. 통행료를 지불하기 위해 카드와 지폐를 준비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자세히 보니 coins동전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지?동전 많이 없는데. 설마 동전만 받는다구?

근데  깔대기 모양의 통만 있지

동전을 넣을 만한 구멍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다 넣어?

그렇게 1분 정도 답답한 시간이 흘렀을까?

 백미러로 기다리고 있는 몇 대의 차들을 확인하고 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큰 일 났다.


통행 바라도 없으면 추후 통행료를 지불하더라도

 일단 지나가고 봤을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

바로 뒤차의 젊은 여성 운전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너무 반가워 반사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지폐를 보여주니, 한 장을 빼서 가져가고 자신이 가져온 동전을 한 줌 깔때기 모양 통에 던지고는 시크하게 돌아선다.

그제야 기계에서 나온 통행권을 챙겨서 마법처럼 열린 통행바 아래로 액셀을 밟아 빠르게 그 자리를 떴다.


기다리는 뒤차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창피함이었다. 얼굴이 후끈거렸다.

톨게이트 정보 미리 챙기지 못했을까. 

그래도 홀연히 나타난 구세주 덕분에 첫 관문을 통과했고 ‘이제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때 투입구에 통행권만 잘 넣으면 돼! 괜찮아!’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흑역사 2]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건 어렵지 않았고

슬슬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투입구에 넣으려고 하는 순간, 아뿔싸!

통행권이 바람을 타고 휘리릭 저 멀리 날아가버리는 게 아닌가. 황당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중에 알게 됐다. 남프랑스의 4월은 미스트랄(지중해 연안에 부는 북서풍)이라는 강한 바람이 자주 부는 시기인데, 미처 끝까지 들어가지 않은 통행권이

 마침 불어오던 미스트랄에 날아가버린 거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내심 또 한 명의 구세주가 있을까 하고.

애석하게도 뒤차는 내가 금방 통과하지 못할 것을 눈치챈 듯 후진을 해 옆 톨게이트로 통과해 가버린다.


어떡하지? 침착하자!

계기판 위 보이는 빨간색 버튼을 일단 눌렀다.

다행히 한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바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태풍처럼 강한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상황을 설명한 뒤 외쳤다.

‘Help, me!!’

지금 생각해도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내 긴박한 상황을 상대는 아는지 모르는지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바람 소리 때문에 그의 말을 놓칠 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Visa!”

아! 비자 기능이 있는 카드를 넣으라는 뜻인가? 긴가민가 했는데 카드를 꽂으니 바가 열린다.

휴~ 다행이다!!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부터였다. 차를 버리고

빨리 걷고 싶다는 간절함이 올라오기 시작한 게.   

  

문득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었을 때

고흐도 아를에서 마주한 미스트랄에 대해

화가  베르나르에게  편지가 떠오른다.

미스트랄이 한창일 때 이 그림을 그렸는데, 오죽했으면 이젤을 말뚝으로 고정해야 했네.
이 방법을 자네에게도 권하고 싶군.
이젤 다리를 흙속에 박고
50센티미터 길이의 말뚝을 그 옆에 박았네.
그러고는 이 모두를 로프로 묶어야 했네.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어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지.


그래! 이젤도 날아가는데 몇 백배는 가벼웠을 작은 통행권쯤이야 날아갈 수 있어. 암.. 그럴 수 있지.


 그리고 미스트랄로 고흐와 나 사이 연결점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애써 그날의 웃픈 실수를 끌어안았다.  


[흑역사 3]

우여곡절 끝에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숙소로 가기 위해 마르세유 시내를 통과하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간다고 갔는데 예약한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그런데 마르세유는 좀 큰 도시여서 그런지 길도 복잡하고 사람은 또 왜 이리 많이 지나다니는지. 벌써 숙소 주위를 세 바퀴는 돈 것 같다. 길을 헤매다 골목 끝 큰길이 보이는 것 같아

직진을 했는데, 글쎄 그 순간 눈앞에 지상철이

떡 하니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간담이 서늘했지만 한참을 후진해서

다시 길다운 길로 들어섰다.

                  에즈Eze, 니스 근교                     트램, 마르세유                                         

간신히 도착한 호텔 주차장에 파킹을 마친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다 버리러 떠나온 건데 난 또 뭘 붙잡고 있었던 걸까.


이틀 후 아비뇽을 떠나 아를로 향하는 아침, 

국도를 따라 운전해 가는 길에 정갈한 가로수,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들을 마주하는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평온했다.

마치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머물고 있다는 듯.


파란 하늘에 동화책에서 금방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새하얀 뭉게구름들, 수많은 초록잎들의 살랑임은

얼른 차창을 내려 더 가까이 느껴보라며 손짓했다.

시원한 바람에 실려 날아온 싱그럽고 깨끗한 아를의 공기까지 마시고 나니, 소박하지만 생명력 있는

시골 풍경화 속으로 풍덩 들어가 있는 듯했다.


그렇게 아를도 날 반겨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잘 왔어.

아를에 도착해 정산을 마치고 렌털샵을 나왔을 때의 후련함이란... 정말이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 그분께서는 내게 세상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어. 자동차로 휑 지나쳐 버리는 게 아니라, 뚜벅뚜벅 걸어가며 만나게 될 작은 풀꽃, 즈려밟고 지나가라며 자신의 기운을 기꺼이 내어줄 흙과 땅,  함께 걸어갈 멋진 길동무들을 보여주고 싶으셨을 거야. 


그분의 뜻을 다시금 헤아리다 보니,

앞으로 펼쳐질 도보 순례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커졌다. 

작가의 이전글 5편. 세 번 만에 알아차린 하트시그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