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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Nov 29. 2023

7편. 두근두근, 순례숙소 첫날 밤

[7화] 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마음의 무게를 대신한 육체의 무게   

   

차를 반납하고 새털처럼 가벼워진

 마음의 무게를 즐긴 것도 잠시.

이내 새로운 차원의 무게가

빈자리를 훅 비집고 들어왔다.

그간 고맙게도 자동차가 대신 짊어져 주고 있던 그것. 순례자의 숙명과도 같은 그것.

 바로 배낭의 무게였다.      


한쪽 어깨에 걸친 뒤 등 뒤로 가볍게 휙 날려 맬 수 있는 일상용 백팩이 아니었다. 10kg에 육박하는 배낭을 어깨로 가져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한쪽 팔로 지탱하기 힘든 무게이기에 테이블 위에 배낭을 세워두고 내 몸을 거기에 맞추는 편이 나았다.


땔감나무를 한 짐 가득 실은 지게를 질 때를 떠올려보면 되겠다. 다리를 굽혀 자세를 낮추고 배낭 앞에 상체를 둔다. 어깨끈을 어깨에 걸친 뒤 두 다리와 양손에 든

두 개의 스틱에 의지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어깨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져 줄 힙벨트(허리끈)를 꽉 조이고, 중심을 잡아줄 가슴벨트도 마저 고정시킨다.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발걸음을 천천히 떼어 본다.      


배낭을 매고 스틱을 손에 들었다고

다 순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배낭과 장비는 분명 나를 자연스레

순례의 길로 초대하고 있었다.


나를 더 낮추고, 숙이고, 한달음에 뛸 수 없게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 나가도록.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말이다.

적어도 내게 순례란 그분의 뜻을 헤아리며

내게 허락하신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여정이니까.     


 신발이 불러낸 이름      


차를 반납하고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우체국이었다. 그래도 긴 여행을 떠나 왔는데 한국의 지인들에게 안겨줄 기념품은 준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두 달간 배낭에 계속 지고 갈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마르세유에서 산 기념품을 소포로 집으로 부치기로 했다. 기념품과 함께, 여분으로 챙겨온 운동화도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아 상자 안에 넣었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자는 단순한 이유였는데

갑자기 떠오른 기억 하나로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소포상자 속 신발은 남동생들이 입대하고 며칠 뒤 신병교육대에서 부친 사복과 신발이 집으로 도착했던 그 날로 날 데려갔다. 이어서 자식의 체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물건을 보며 그 고생이 눈에 밟혀

눈물을 훔치시던 엄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클 태(太), 순할 순(順).

이름처럼 순하디 순한, 평생 주시기만 해 놓고도

 늘 해준 게 없다며 셈이란 걸 할 줄 모르는 울 엄마.

분명 내 신발을 보고도 그러실 게 뻔했다.

매일 어디서 자는지도 모르는 딸내미를

홀로 낯선 땅에 보내 놓고 밤낮으로 상상의 모래성을 쌓았다 부쉈다 하실 엄마 모습이 그려지니

순간 몹쓸 불효자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 너무 걱정 마시어요!

동생들도 훈련은 좀 고됐을지 모르지만 더 단단해져 돌아왔잖아요. 그러고 보니 군에 갔던 동생들과

 내 모습이 어딘가 많이 닮아 있는 것도 같았다.


그 길에 맞는 새 신발로 갈아 신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 나가는 고행을 통해 무언가를 지켜 내고자 한다는 면에서.


동생들은 나라를,

나는 세파에 잃어가고 있는, 

창조주께서 고심해 만들었을

내 태초의 본모습을 지켜내기 위해서.


엄마! 동생들처럼 저도 더 영글어져 돌아갈게요. 그러니 눈물 뚝! 아셨죠?

그 마음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소포 상자의 테이프를

 더 단단히 봉인해 엄마에게로 부쳤다.

     

 순례자의 여권, 크리덴셜 카드      


우체국을 떠나 우리가 찾은 곳은

아를에 위치한 생 트로핌 대성당이었다.

순례자의 필수품인 크리덴셜카드를 사기 위해서였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반드시 여권이 필요하듯, 도보순례자를 위한 숙소를 이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크리덴셜카드. 그 크리덴셜 카드에 찍힌 각 마을의 스탬프와 새겨진 날짜를 통해 도보순례자임을 확인받은 후에야 순례자 숙소에서의 숙박이 허락되었다. 대부분의 스탬프는 성당이나 순례자숙소에서 받을 수 있고 식당에서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빳빳한 새 크리덴셜카드를 받아 든 순간 곧 순례를 시작한다는 것이 조금 실감 났다.    

아를의 성 트로핌 대성당  & 크리덴셜 카드                                                         

 낮의 카페테라스


아를 대성당을 둘러본 뒤 친구와 내가 향한 곳은 노란 차양이 인상적인,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테라스’의 바로 그 카페였다. 낮에 찾아서였을까? 관광객으로 북적일 줄 알았던 카페는 다소 한산했다. 그래서인지 호젓한 카페를 마주한 나도 함께 담담해졌다.

오히려 그게 좋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차를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그도 혹시 지금 내가 앉은 이 자리에 앉았던 적이 있었을까? 그도 나와 같은 시선에서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허공을 응시하며

그의 숨결과 흔적을 붙잡아 보려 했다.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차를 마시며

 한 동안 각자의 사색을 지켜줬다.   


 아를에서의 첫 순례숙소     


어제까지 우리는 호텔에서 묵었지만 오늘부터는 순례자 숙소(프랑스에서는 Gite‘지트’, 스페인에서는 Albergue‘알베르게’라고 부른다)에서 묵을 수 있었다. 사실 책이나 블로그에 순례자의 90%가 걷는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길(Camino Frances: 프랑스 생장드포드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났지만 아를 길

(Via Tolosana)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기댄 곳은 아를 길을 걸으셨다는 한 신부님의 블로그였다. 블로그에서 미리 메모해 둔 숙소 주소를 구글맵에 치고 따라가니 어렵지 않게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째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굳게 문이 잠겼다. 다행히 주인장 연락처로 추측되는 전화번호가 있어 곧바로 통화를 시도했지만 신호음만 갈 뿐이었다. 일단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이 오지 않자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반가운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오늘 그곳에서 묵을 수 있다는 주인장의 답이었다. 야호! 이 정도면 첫 시작으로 나쁘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한 주인은 젊으면 30대? 많으면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본 직업은 요리사고, 숙소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까 바로 연락을 받을 수 없었던 거구나.’ 추측했다. 숙소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아기자기한 작은 소품들, 은은한 노란빛이 도는 조명, 간단한 간식을 담아내온 목기 그릇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 같은 게 분명 있었다.


웰컴티를 건네며 대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장은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풍겼다.

앞으로의 순례 숙소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하니 갖고 있는 아를 길 숙소정보를 복사해서 건네준다. 고마웠다. 신부님께서 블로그에 주인장이 좋았다고 하신 말씀에 수긍이 갔다. 여기 묵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리고는 방을 보여줄 테니 어느 방에서 묵을지 선택하라며 우릴 안내했다.     



  순례학교 깜짝 입학 선물     


사실 내 마음속으로 생각해둔 방이 있었다.

블로그에서 본 로마네스크 타일 장식이 있는 방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좀 어둡고 환기가 잘 안 될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바로 확답이 안 나왔다.

      그럼 일단 다른 방도 보고 결정하지 뭐.      


그리고는 2층으로 올라가 안내해 주신 또 다른 방을 빼꼼히 들여다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방 전체가 온통 고흐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소품들로 꾸며진 고흐 팬심이 곳곳에 묻어난 방이었다.

도보순례 첫 숙소에서 고흐를 만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야심 차게 준비하신

순례학교 깜짝 입학 선물이 아닐까 싶었다.


것도 어쩜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선물을.

 몇 유로 더 비쌌지만 우리는 고흐의 방에 짐을 풀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나를 이곳 아를까지 이끌어준 그림

‘오후의 낮잠’, 그의 책과 영화,

그리고 먼 길을 날아와 100년 전 그가 내디뎠을

아를의 골목골목을 걸어, 어떻게든 그를 잊지 않으려는 소품들로 가득 찬 방에 누워있는 나.

이 모습을 고흐가 그려준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일 텐데. 나의 욕심은 끝이 없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던 그날 밤,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을 청했다.     


 “주님, 여기까지 저를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도요.

빈센트에게 자신을 끝까지 믿고

지켜봐 준 동생 테오가 있었듯,

저에겐 제 손을 잡고 산과 들을

함께 걸어주실 당신이 계심을 믿기에

두렵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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