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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Nov 08. 2023

4편. 이런 위로는 처음이야.

[4편]누군가 내 생을 근사한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그림 한 점이 건네준 위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프랑스 국립 오르세 미술관展, 밀레의 꿈-고흐의 열정’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에 가서나 볼 수 있는 명화들을

한국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실 난 미술에 문외한이었지만 고흐의 그림들은 미술책이나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해왔기에

부담을 내려놓고 가도 될 것 같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시관에 들어서서 관람을 이어가던 중 ‘오후의 휴식: 낮잠’이라는 작품 앞에 섰다.

 

어? 아는 그림이다. 반가웠다.

밀레의 작품을 모사한 시골의 전원풍경을 담은 그림.     

그런데 작품 가운데 서서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날의 ‘낮잠’은 어쩐지 새롭게 다가왔다.  


실물 영접이 처음이어서였을까?

그간 책 속에서 보아왔던 10 x 10cm의 작품보다

훨씬 큰 73 x 91cm의 캔버스.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으며 몸부림쳤을 화가의 고뇌에 진심 어린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듯한 스포트라이트 조명.

그 아래 작품이 뿜어내는 엄청난 황금빛 에너지에

 곧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은 뭘까?


그 때다.

자신을 알아주는 고마운 마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작품 속 노란 터치의 밀밭이 순간 일렁이기 시작한다. 정말이지 밀밭이 살아 움직였다.

 처음이다.

음반을 통해 들었을 땐 별 감흥 없던 곡이 라이브 공연장에서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던 경험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건

미동도 없는 그림이다.


천천히 나의 시선이 고된 밭일을 끝내고

밀밭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부부에게로 가 멈춘다.

곤히 잠든 모습이 참 편안해 보이는 두 사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왔다.

그림이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따스함에

마음속 한켠 딱딱하게 굳어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말랑말랑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이건 치유에 가까웠다.


어느새 건초 더미 옆에 내가 누워 있다.

숙인 얼굴 아래로

멈추지 않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 내며.

마치 꽁꽁 언 얼음이 따스한 햇살 아래

흥건한 물 자욱을 남기듯.



 앞서 간 마음의 속도를 뒤따라가보는 머리 


나는 꽤 이성적이고 돌다리도  두드려보 편이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

그날 낯선 치유의 경험이 신비로웠지만

가능한 일인지 머리로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노란색’을 입력해봤다.

놀랍게도 색채용어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노란색이          갖는 기능은 내가 그날 느낀 감정과 많이 닮아 있었다.     


노란색은 심리적으로 자신감과 낙천적인 태도를 갖게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도록 도움을 주는
색채다. 또한 지식이나 지적능력을 나타내며, 운동 신경을 활성화하고 근육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생성한다. 노랑은 빨강과 초록빛의 혼합으로, 초록 파동의 회복 효과와 빨강 파동의 자극 효과가 혼합되어 있다. 따라서 노랑은 기능을 자극하고 상처를 회복시키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 색채용어사전 발췌 -  


또한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자는 그림 속 인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직접 낮잠을 자는 것은 아니지만

 고스란히 그 편안함을 전달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전문용어로 '전이'라고 한다지?

점점 내가 받은 느낌이 허상이 아닌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 감정이었음을 

확인받는 것 같아 기뻤다.


문득

 '노란색은 이러저러한 기능이 있고,

고흐의 강렬한 붓터치는 마치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그림 속 인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 먼저 알고 느껴보려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다. 가장 먼저 그려진 건

그림을 바라보는 사뭇 예리한 눈빛이었다.

'정말 그런지 어디 한 번 볼까?' 하는..

기저에 약간의 의심 한 스푼이 드리워진 눈빛 말이다.


작품이 진짜 얼굴을 드러내 보여주는

어쩌면 그저 마음으로 바라봐줄 때 인지도 몰랐다.

기를 쓰고 잡으려 할 땐 잘 잡히지 않던 것을

내려놓고 나니 그제서야 내어주는

얄궂은 세상 이치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흡사 스스로 지혜롭다는 자들에겐 감추시고

어린아이 같은 철부지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절대자를 만나는 순간 같기도 했다.


그렇대도 그쪽에서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면 그만인 건데

 나에게 마음을 열어 보여준 고흐가 고마웠다.


밀레 vs. 고흐의 '오후의 휴식: 낮잠' from 블로거 쿠쿠파

사실 고흐가 밀레를 존경해 많은 밀레의 작품들을 모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 고흐는

유독 이 '오후의 낮잠'이라는 작품에

많은 반복연습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무려 90번


90번이라..

습작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다 보니,

'고흐는 몇 번쯤 반복했을 때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을까?

40번째? 아님 80번째? 것두 아님 89번째?' 

별게 다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난 뭔가를 90번쯤 연습한 적이 있었을까?

안 해도 될 질문을 하고선 잠시 고개를  떨궜지만,

적어도 고흐가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모사 작품을

찰떡같이 알아봐 주는 눈썰미는 있는 것 같아

금세 다시 어깨를 으쓱여다.


무엇보다 그날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작가가 내게 건넨 위로이자

그와의 교감이라고 생각하니

‘시공을 초월한 우리의 만남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진 않을까?

          하는 엉뚱하지만 즐거운 상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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