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_ 이처럼 사소한 것들.
유튜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이동진이 추천하는 2023년 올해의 책들 중 클레어키건의 ‘맡겨진 소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 맡겨진 소녀는 책보다는 영화로 보고싶은 생각이 드는 내용이었고, 트러스트를 읽을까 하다가 베스트셀러 진열대에서 클레어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집어들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첫째, 평소 자기계발서 위주로 읽다보니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싶었고,
둘째, 두께가 얇아 금방 읽으며 독서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셋째,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라면 잔잔하고 어딘가 회색빛이 돌 것 같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사온 날 절반 그리고 오늘 아침 나머지 절반을 마저 읽었다.
옮긴이의 말에는 이 책을 두번 세번 여러번에 걸쳐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를 권했다.
클레어 키건은 하고싶은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어 여지를 두거나 암시를 하는 문체를 쓰는 작가라 한다.
언제나 독서는 내용을 습득하고 파악하는 데에 급급했지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독서라는 게 우리에게는 챌린지와 같아서 한권을 완독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제자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로 책을 읽을 때 생각할만한 구절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두었다가 해당 문장을 적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기록한다. 주로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는 유용하나 소설에도 적용될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은 문장이 마음에 들거나 문체가 좋을 때도 수집하곤 한다.
[문장 수집]
p.41 “시간은 아무리 흘러도 느려지질 않으니”
_앞으로 훌쩍 커버릴 딸들을 생각하며 펄롱이 아내에게 했던 말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아무리 흘러도, 나이가 들어 시간과 세월을 나란히 해도 시간이 빠르면 빨랐지 느려지질 않는다. 멈출수도 잠깐 붙잡아 둘 수도 없다. 인간에게는 시간이 세 가지 측면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 생리적 시간. 우리가 보통 이야기 하는 시간의 체감은 심리적인 시간과 연관이 많은 듯 하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빠르게 가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느리기도 하니까.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이 다르고 너와 나의 시간이 다르다. 그럼에도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그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p.44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_매번 똑같은 루틴을 지내는 건 여기나 저기나 모두 똑같구나 싶은 현실적인 문장에 나도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 가장 지루하고 일상적인 표현이 한편으로는 가장 고요하고 우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내가 나의 삶을 비추어 보자면 그저 반복된 노동과 발버둥침이겠으나, 나의 모습이 타인에 반영으로나타났을 때는 '나'라는 주체가 사라져서 인지 그 현상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p.100 ‘사람한테서 최선을 끌어내려면 그 사람한테 잘해야 한다고’ 미시즈 윌슨이 말했다.
_요즘의 고민은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는 것’에서 어떻게 하면 잘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일해왔다. 그래서 그저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었다. 최선을 기대할 곳도 '나'이고, 돌보아야 할 것도 내 자신 뿐이었다.
이제는 조직에 속하고, 팀원으로써 밀고 당김을 동시에 해내야 하기에 팀원 간의 최선을 끌어내고자 고민하게 된다. 더 좋은 팀을 만들어나가고자. 내가 더 ‘좋은’일을 해낼 수 있도록 그러한 환경을 만들고자.
그리고 리더라는 위치에서 고민하고 있을 모든 이들과 저 한문장이 교차되어 맞닥뜨려져 마음에 꽂혔다. 좋은 사람을 얻는 다는 건 나부터 친절해야하는 것이고, 그 친절함에 대가로 그들은 최선을 보여줄 것이다.
p.103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_ 펄롱은 크리스마스에 석탄을 배달하면서 여유로이 잘 사는 집에 배달할때와 그렇지 못한 집에 배달할때의 차이점을 확연히 체감하곤 한다. 전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탕이던 와인이던 하는 선물들을 주고 사정이 좋지 못한 곳은 대금을 외상으로 하겠다며 결제를 미루는 일도 많다. 크리스마스라는 특수한 상황은 서로가 인사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훈훈한 장면을 불러일으킨다. 펄롱은 그 순간 왜 자기가 가난한 집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선물을 나눠주지 못했을까 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크리스마스의 이중적인 면모를 이야기한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이라는 문장 하나가 감성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가장 뼈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한 저 순간을 펄롱만 느낀 것은 아닐테니.
p.105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_책에서는 다른 의미로 펄롱에게 한의미였지만, 현실에서는 꽤나 유용한 말이라 스크랩했다.
책 속에서 나타난 의미는 권력에 굴복하며 나 역시 일종의 권위를 취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현실에서 내가 유용히 사용할 생각은 적을 배척하지말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 아래 있는 모두가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구태여 대립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을 거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p.111 왜 가장 가까이 있는게 가장 보기 어려울까?
_ 펄롱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선뜻 물어보지 못하다가 성인이 된 이후 어느날 미시즈 윌슨 집에 찾아갔을 때 펄롱을 반갑게 맞아준 네드에게 처음 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네드는 그날을 회상하며, 돈많은 친척과 지인들이 오던 파티였고 그 중 한명일거라 여지를 남기며 결국 자신도 누군지 모른다며 대화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네드를 보기위해 미시즈윌슨 네를 방문했을 때, 펄롱과 네드가 닮았다고 말하는 가정부의 한마디에 네드가 자신의 아버지일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우리는 항상 가장 가까이 있는 것에는 까막눈이 되곤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닌 것 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도 네드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나 역시.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소설이란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그려낼 수도, 현재와는 다른 시대 배경을 그려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인생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이야기 하기 때문에 그게 휘향찬란한 환상이던 지독한 현실이던 우리는 그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곤 가끔씩 나의 현실과 비교하여 소설 속으로 도피를 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석탄을 배달하는 펄롱의 삶을 나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