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고통을 감수할 수 있나요?
나는 그 누구보다 커리어가 엉망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인생을 제대로 된 목표없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저 돌고돌아 저 멀리있는 나의 목표를 위해 이리저리 방황했을 뿐.
유독 호기심이 많고, 관심사가 많아 갈피를 못잡는 스스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다.
"무엇하나 특출난게 없다는 것"
학창시절때부터 나의 고민은 특출난 장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잘하는 것은 전부 평균 이상 그 뿐. 자신있게 내놓을 강점이 없었다.
공부도, 춤도, 노래도, 그림도, 운동도..
딱히 못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나 이거 잘해' 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TV 속 연예인들을 선망하던 어린시절에는 친구들과 틈만나면 춤연습을 했다.
수학여행을 가면 장기자랑은 빠지지 않고 참가했고, 3등 한번 그다음은 1등도 해본 적도 있다.
그렇다고 춤에 재능이 있진 않았다. 남들보다 조금 잘 추는 딱 그 정도.
운동도 곧잘 배우긴 했다.
고등학생때는 반 단체전이 있을때마다 선발되어 출전했지만, 그 중에선 내가 제일 못했다.
공부도 항상 중상위권.
친구들이 내 성적을 보면 놀랐다. '우리 같이 놀았는데, 왜 너만 성적이 잘나오지?'
딱 그 수준에 만족을 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던 탓일까 강점을 더 강하게 키우는 법을 몰랐다.
어떻게든 전부 손에 쥐어가고 싶은 어설픈 욕심만 남았다.
그러면서 절실히 노력하지 않았다.
"당신은 어떤 고통을 감내할 것인가요?"
마크맨슨의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다.
20살에 그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리를 맞은 기분'을 처음 경험했다.
저자는 삶은 모두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기꺼이 감내할 고통을 선택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내가 가수가 꿈이라고 가정해보자.
죽어라 노래 연습을 하고,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노래를 발매하고, 무명시절을 견뎌야한다.
곡이 써질때까지 앉아서 머리를 쥐어짜야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만약 이러한 고통을 견디기가 싫다면 내가 정말 가수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환호받길 원하고,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어 예쁘고 멋진 옷을 걸치는 것이 꿈이진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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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유라면, 가수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해도 된다.
결국, 업의 외형이 아닌 본질을 바라봐야한다는 이야기를 했던것 같다.
또 그것을 원하려면 반드시 고통은 따르기 마련이고 그것을 감내해야만 한다고..
내가 나의 길을 찾지 못했던 이유를 찾았다.
어릴적부터 막연한 나의 꿈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진로희망에 '영화의상 디자이너'를 적어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게 무슨일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영화를 좋아했고, 패션디자인과를 가고 싶었다.
비실기로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있어 지원을 했다. 그때까지 난 아무런 고통도 감내하고 있지 않았다.
원하던 패션 디자인과에 진학하고 현실을 깨달았다.
그림을 못그렸던 나에겐 드로잉 수업은 너무 고통스러운 수업이었다.
입시미술을 경험하고온 다른 동기들의 그림은 화려했고,
원근법도 모르는 내가 그린 그림은 초라해서 꺼내 놓기도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나는 패션 브랜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심지어 유명한 명품브랜드 조차 처음듣는 이름이 너무 많았다.
서울사는 시골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집 형편은 좋지 않았고 얼마 되지 않는 용돈으로 겨우겨우 고른 옷들은 죄다 싸구려였다.
그런 내가 패션 디자인과를 진학해서 겪은 상대적 박탈감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난 왜 이렇게 촌스럽지?'
'내가 유행을 너무 모르는건가'
'다른 사람들은 옷을 어디서 사지?'
'oo브랜드가 뭐지? 처음들어보는데..'
'내 그림은 왜 컬러 칠하면 망치는거지..'
그때부터 나는 고통을 감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만의 그림 스타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을 했다.
그림을 그리다가 짜증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경험부터
내 마음과 달리 실력이 늘지 않을때는 울컥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패션 브랜드 공부를 위해서는 인스타그램에 관련 브랜드를 전부 팔로우했고,
자연스레 그게 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틈틈히 모니터링했다.
매 시즌마다 런웨이쇼 사진을 둘러보며 찬찬히 내 취향을 다져갔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언제나 남의 떡이 더 커보였고,
디자인을 잘하는 동기들, 옷을 잘만드는 동기들을 보며
남몰래 질투하기도 했었다.
졸업후 2년이 지나 내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고군분투하며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을때,
한번은 후배를 만나 대학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내게 이런말을 건넸다.
"언니는 항상 세련된 스타일을 가진것 같았어요"
스스로 촌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세련되었다니..
그렇다고 그 후배의 말이 단지 내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한
사탕발림은 아니었다.
되돌아 보니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스타일이
어느덧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입는 옷스타일로, 내가 쓰는 글로, 내가 하는 말로,
하물며 인스타그램에 스크랩해온 취향의 조각들이
내 시선과 취향을을 감각으로 포장해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나의 강점은 형태를 갖추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