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의 생

에밀 아자르

by 낫썬 NOT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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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부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문득 책이 너무 읽고 싶어져서

교보문고를 기웃거리며 어떤 책이 좋을까 이리저리 펼쳐보다가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던 ’자기 앞의 생’

막상 그 날은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과 알베르카뮈 [행복한 죽음] 만 손에 쥐었지만,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당근앱을 통해 3,000원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이 책을 데려왔다.



모모는 사창가의 아이들을 돈받고 키우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집은 엘레베이터도 없는 무려 칠층에 있고, 이제 그녀는 점점 늙고 살이쪄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처음 모모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서 함께 사는거라 믿었지만 사실은 그의 친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키워준다는 사실을 알고선 꽤 충격을 받았었다. 머지않아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해지지 않았는데, 그건 그들이 서로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사창가의 아이들을 키워준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다. 로자 아줌마는 문서를 위조해 경찰이 들이닥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아야했고, 그래서인지 벨이 울릴때면 흠씬 놀라기도 했다.

이제 로자 아줌마는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늙고 병이 들었고, 더이상 새로운 아이를 맡지도 못했다.

로자아줌마에겐 모모만이 남아있었고, 그녀는 모모와 둘만 아는 '유태인의 동굴'이라 부르는 지하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문장 스크랩>

P. 93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 아랍인과 유태인, 흑인 그리고 그들과 구분되는 프랑스인, 포주와 창녀들 그리고 창녀들의 아이를 키워주는 로자 아줌마 같은 사람들.. 유독 이 책에는 어딘가 결핍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인들은 그 결핍에서 배제되는 데 하밀 할아버지의 이 말로 인하여 결국 구분지어지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p.196

어느 순간부터는 유태인도 더는 유태인이 아니며, 그때부터는 그 누구도 아무것도 아니다.

→ 모모의 이 말 역시 종교나 인종은 한 인간을 대변하기엔 부족함을 말하는 게 아닐까 결국 우린 다 인간일 뿐인데..


p.174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 였다.
(중략)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p.203

”약속해요” ”카이렘?” ”카이렘.”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p.257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 이 한 문장이 로자 아줌마의 사랑을 담고 있어서 눈물이 났다.

모모와 로자아줌마는 서로 의지했고 사랑했고 정말로 그들의 생을 함께 나누었다.

다소 표현이 서툴고 대부분 화를 내던 로자아줌마의 속마음을 한껏 드러낸 문장이라 마음이 아팠다.


로자 아줌마의 생의 끝에서 하염없이 그 생의 마감을 지켜준 모모.

그 순수하고도 기묘한 방식이 그 아이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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