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율과제 그리고 학교자율장학. / 경기교육 19번째 이야기.
어린 시절의 작은 경험도 때로는 평생을 관통하는 귀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 중학교 시절의 일이다.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겨울날,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운동장으로 불러 모으셨다. 그러고는 출발선을 긋고 눈을 감고서 똑바로 걸어보라 하셨다. '뭐, 이 정도야 쉽지!' 처음엔 자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눈을 감고 한 발자국씩 움직이는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불안했다. 나도 모르게 팔을 앞으로 뻗었고,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그 짧은 시간이 길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두려움과 답답함을 안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한 친구가 똑바로 걸어 목적지를 향하는 게 아닌가. 선생님이 그 비결을 묻자 “저기 보이는 산의 꼭대기를 목표로 정하고 걸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목표가 분명하니 곧장 걸어갈 수 있었던 거다.
어린 나이였지만, 목표를 정하고 그 중심을 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날 운동장 위 하얀 눈밭에서의 경험은 내 평생의 교훈으로 남았다.
교육에서도 그렇다.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명확한 중심과 목표가 필요하다. 경기교육은 그 중심을‘학교’에 두고 있다. 수없이 변화하는 교육정책과 갈등 속에서도 교육의 중심에는 언제나 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경기교육에서 학교는 학생들이 학습 능력과 인성,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균형 있게 키워나가는 교육 공동체이다. 모든 교육 활동이 시작되는 기본 학습터이자 학생들이 삶의 방향을 찾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경기교육은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온라인 학습 환경까지 확장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경기미래교육과정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요구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실천한다. 모든 학생이 기본적인 학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창의력과 문제해결력, 자기 주도성 등 역량 기반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래 사회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힘을 기르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교육청의 지침이나 정책만으로는 어렵다. 교육의 중심이 학교라면,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 역시 학교가 되어야 한다. 학교 스스로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민주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자율성이란 무조건적인 자유가 아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과 책무성을 수반하는 개념이다. 학교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근본적인 교육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학교가 중심을 잡고 교육활동을 운영할 때, 학생들도 혼란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 눈 위에서 깨달았던 경험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 이유도 이와 같다.
학교가 진정한 자율성을 갖추려면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힘을 키워야 한다. 학교는 스스로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학교자율과제’ 정책을 추진하는 취지이다.
학교자율과제는 학교 스스로 현안을 발굴하고, 구성원 간 협의를 통해 목표를 세우고 해결 방법을 찾는 자율적 실천 활동이다. 모든 학교는 상황이 다르다. 학교가 처한 문제도 다르다. 그래서 학교마다 각자의 특성에 맞는 과제를 설정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정뿐 아니라 예산과 인력, 공간 활용까지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운영한다.
예를 들어,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이 많은 학교는 학교자율과제로 학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또 지역의 문화예술 환경이 부족한 농어촌 학교에서는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학교자율과제를 추진할 수 있다. 학교 급별로도 유치원은 놀이 중심, 초·중·고교는 교육과정과 학교생활, 학교문화 등 각기 다른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경기교육은 학교에 기본 운영비 중 표준교육비의 5% 이상을 학교자율과제 운영 예산으로 편성하게 했다. 실제 대부분의 학교는 이 기준을 적용하여 적극적으로 자율과제를 운영 중이다.
학교자율과제는‘진단-계획-실행-평가’의 선순환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학교는 자율적인 진단 도구를 활용해 현안을 분석하고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실행한 후 평가를 통해 성과와 개선점을 확인하고, 이를 다음 단계의 과제에 반영하는 구조이다.
(재)경기도교육연구원이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1,600여 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설문조사에서 학교자율과제의 정책 인지도가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학교가 스스로 학교자율역량을 진단하기 위한 증거 기반의 진단도구를 현재 개발 중이며 9월 중에 학교 현장에 시범 적용할 예정이다.
학교자율과제는 학교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학교가 자신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때, 교육 현장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교육의 질은 물론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다. 경기교육은 학교자율과제를 통해 학교가 주도하는 교육혁신과 성장을 지원하고자 한다. 학교의 변화는 학교에서 시작되고, 학교가 중심을 잡고 변화할 때 경기교육의 미래가 펼쳐진다.
학교 교육의 핵심은 현장에 있다. 학교 교육, 변화의 시작은 현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변화의 중심에는 교사가 있다. 교사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고 자율적으로 전문성을 키울 때 학교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경기교육이 강조하고 있는 ‘경기미래장학’의 취지도 여기에 있다.
경기미래장학은 학교가 중심이 되고 교사가 주도하는 자율적인 장학이다. 과거의 장학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점검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장학의 역할 또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장학은 학교가 주도적으로 교육과정과 학교운영 전반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교육청은 더 이상 학교를 관리하거나 평가하는 기관이 아니라, 학교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지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청의 역할은 더 이상 정책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지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 현장의 불필요한 업무와 어려움을 덜어주고, 교사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면서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경기미래장학은 바로 이런 교육행정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경기미래장학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교육지원청 중심의 장학이다. 이는 장학사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 학교 운영 전반을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고민하며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미래장학 플랫폼’을 개발하였고, 이 시스템은 2025년 9월부터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두 번째 방식은 학교 중심의 학교자율장학이다. 교사들이 직접 장학의 계획과 방법을 정하고,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며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다. 학교는 매년 학교자율장학 계획을 세우고 교사들이 협의를 통해 운영 방법을 결정한다. 또한, 학교자율장학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수업과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교사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서로 배우는 협력적 문화가 형성되는 토대가 되고 있다.
경기미래장학은 학교 현장의 우수 사례들을 발굴하고 모든 학교가 함께 성장하는 교육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학교가 자율성을 가지고 발전할 때, 학생들도 더욱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경기교육은 이렇게 협력과 신뢰의 문화를 지속해서 만들어 나갈 것이다.
경기교육의 미래는 학교가 중심이 되어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데 달려 있다. 학교자율과제와 학교자율장학은 바로 이 학교 중심의 교육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다. 학교자율과제를 통해 학교는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힘을 키우며, 학교자율장학을 통해 교사들은 전문성을 높이고 서로 협력하며 성장한다. 학교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될 때, 학생들은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설정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