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육, ‘자율’을 향한 새로운 길"[by 임태희]

(경기교육 3번째 이야기)

by 임태희

취임 첫날, ‘새로운 경기교육’의 출범을 알리며 경기도 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등교시간 자율화’를 시행했다.


당시 학교들은 일괄적으로 9시 등교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일찍 학교에 와도 교실은 닫혀 있고 선생님들도 출근 전인 경우가 많았다. 9시 등교제는 사실상 도교육청의 지침으로 인식되어 학교들은 일괄적으로 시행하고 있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해가 긴 여름에 서머타임을 운영하듯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았다.


학교에서 등교시간은 하루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 시간조차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도록 하는게 옳을까’를 생각하며, 학교 자율화의 첫걸음으로 등교 시간 자율화를 결정했다.


경기도는 각 학교와 지역이 가진 여건과 특성이 매우 다양하다. 교통 여건, 교육 환경, 학생과 학부모의 생활 여건, 교육적 관심과 요구 등이 다르고 차이도 크다. 현장의 상황들을 고려할 때 학교를 획일적 지침하에 운영토록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도교육청은 각 학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등교 시간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교육 현장의 정책 의도를 살피거나 다르게 하기보다는 같게 하는 게 안전하다는 식의 관행적 행태도 감안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율이 현장에서 실행되기를 기대하며, 등교 시간에 대한 어떠한 통계나 보고도 일절 받지 않았다.


이 정책은 “바꾸고 새롭게”를 실천할 경기교육의 정책 기조‘자율 균형 미래’ 중에서 자율이 현장에서 가장 먼저 추진한 사례였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13년간 경기교육을 사실상 주도했던 전교조는 ‘0교시의 부활’을 기정사실화하며 반대 입장을 냈다. 일부 단체에서는 ‘진보 교육 폐기’의도가 있다고 정치적 해석을 하는가 하면, 또 다른 단체에서는‘자율화’형식이지만, 실질은‘9시 등교제 강제 폐지’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이러한 일부의 움직임을 의식해서인지 새로운 변화를 고민하기보다는 다른 학교의 동향을 살피거나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자율!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토록 하는 일이 우리 교육 현실에선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럼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자율성을 갖추도록 교육할 수 있을까?


그래서,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거듭 나의 생각을 밝히고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 “9시 등교제를 금지하라는 것이 아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의논해서 상황과 여건에 맞게 등교 시간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자”라고.


왜 자율인가?


우리 교육에서 ‘학교는 학생들이 인성과 역량을 갖추고 미래를 준비하도록 성장시키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교육 현장’이다.


그러나, 선거운동을 하며 수많은 교육 가족을 만났다. 그들이 전한 학교 현장은 실로 걱정스러웠다. 하나 같이 ‘학교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라는 고충과 하소연.그 이유는 이랬다. 교육청과 지원청에서 쏟아지는 지시, 지침과 보고, 평가와 관리 등이 너무 많다. 공문만 해도 연간 1만 건이 훨씬 넘는다는 얘기였다. 그렇다 보니 학교의 교직원들은 교육 본연의 업무보다 주변 업무 처리에 급급한 경우가 많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자율에 대한 인식과 행동은 어떤가?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판단하고 활동할 자유와 권리의 소중함, 그에 따른 책임도 알고 행동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제대로 된 자율교육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유와 권리에 치우쳐 책임은 거의 자리 잡지 못했다.‘학교의 자율성이 부족한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자율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 현실을 보며 확신하게 되었다. 학교 교육에서나 교육행정에서 자율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교육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자율은 개인이나 조직, 나아가 사회의 가장 강력한 힘이며, 성장과 발전의 에너지이다. 자기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율이야말로 교육의 가장 기본이고 기초가 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율의 힘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자율은 주인의식에서 나온다. 개인은 물론 가정, 학교, 사회공동체 어디서든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 즉 주인의식을 가질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해진다. 자율이 없는 교육에서는 창의도 책임도 지속성도 기대할 수 없다. 단지 따라 하기, 암기 그리고 정답 찾기 기술만 느는 퇴행적 교육만 남게 될 것이다.


자율의 힘을 현장에서 확인하다.


시간이 흘러 자율분위기가 확산되자, 학교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사례들이 생겨났다. 인상 깊었던 방문현장을 몇가지를 소개한다.


#평택의 팽성초등학교 생존수영장 운영사례


주변에 수영장이 없던 팽성초등학교는“생존 수영만큼은 초등학교 때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라는 교장 선생님의 의지로 4백여만 원의 자율예산을 사용해 간이 수영장을 학교 운동장 한쪽에 설치했다.


학교마다의 필요에 따라 재량껏 쓸 수 있게 한 자율 예산, 이 예산으로 큰 돈 들이지 않고, 비록 간이 수영장이지만 팽성초등학교는 물론, 주변의 수영장이 없는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도 개방하여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안전하게 생존수영을 배우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생존 수영 지도는 해양구조사 자격을 가진 한 학부형께서 담당해 주셨다.

많은 학부모님께서는 안전요원을 자처해 활동해 주셨다.

배우는 아이들, 응원하고 도와 주시는 선생님들, 봉사하는 부모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자율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현장의 모습이었다.



#성남 늘푸른고등학교의 등교시간 운영사례


늘푸른고등학교는 원래 9시 등교 학교다. 그러나 3학년 학생들에게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몇 달 앞두고는 등교 시간을 수능 시작 시간인 8시 30분으로 앞당겨 미리 적응하게 했다. 물론 학생·학부모·교사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하였다고 한다.


3학년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수능 시간에 맞추어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었고, 점심시간 이전에 4교시가 끝나 오후 일정에 여유가 생긴 때문이다.


등교 시간 30분 변경은 작은 변화지만, 수능을 앞둔 학생들을 존중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교육 현장의 자율적 노력에 감동과 보람이 느껴졌다.



#안양의 박달중학교의 등교맞이 행사사례


안양 박달중학교는 8시 20분부터 등교를 시작, 8시 40분에는 오아시스(오늘 아침 시작은 스포츠로)프로그램을 운영, 9시 15분에 1교시를 시작한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께서는 등교하는 학생들과 교문 입구에서 하이 파이브 인사. 등교한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미리 준비된 오아시스 프로그램에 참여. 학부모님들께서는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호떡 나눔 행사. 교육공동체 모두가 행복하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하하호(떡)호(떡) 상호존중 등교맞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학부모님들의 자율적인 행사를 통해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한 가족처럼 화목해 보였다. 그런 영향인지 박달중학교에서는 학교폭력이나 학내갈등으로 구성원들이 힘들었던 사례가 없다고 한다. 자율의 힘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상황 아닐까?



#학교자율과제운영의 여러 성과사례


양평의 양동초등학교는 이상기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지구수비대 생태 시민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폭염인데 샤워를 못 한다면?', '폭우로 안전하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물이 찬다면?' 등 기후 위기를 고민하고, 문해력·과학·통합교과와 연계한 수업을 진행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한다.


고양 대화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감성의 힘을 키우는 문화예술교육.

파주 동패중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인성교육.

남양주 진건고등학교의 다양한 진로 진학과 고교학점제, 기본 인성교육을 아우르는 글로컬 인재 육성프로그램.



#경기도교육연구원의 학교자율과제 운영성과 분석결과, 학교들의 자율적인 교육활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 교원의 자율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고, 만족도 역시 긍정적인 변화가 확인되고 있다.


-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인성교육, 예술·독서·인문교육, 다양한 진로 체험, 인공지능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활용 등 자율에 기반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 도 교육청에서는 자율을 뒷받침하기 위해, 학교 기본운영비 예산의 자율 편성, 업무 경감, 현장 중심의 컨설팅과 방문 지원, 나아가 ‘자율역량지수’를 개발해 학교의 자율역량 신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자율은 지켜져야 할 원칙이자 가치이다.


자율은 경기교육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다.

경기교육 현장의 자율이 학교를 넘어 주변 지역으로, 나아가 도 전역으로 확산될 때, 이것은 곧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다.


교육에서 자율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원칙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이다.

자율을 제한하고 거꾸로 되돌리려 하는 것은 교육의 심각한 퇴행이며, 미래에 대한 배신으로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다. 이런 미래에 대비해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율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 사회에 필요한 자기 주도력과 문제해결 역량을 갖출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에서 자율은 더욱 소중한 원칙이요 가치인 것이다.


유튜브, KBSN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들의 오아시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081,100표–그 무게를 가슴에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