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교육 9번째 이야기)
학교는 삶을 배우는 첫 번째 공동체다. 친구를 만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학교폭력, 정신건강, 치열한 경쟁 등이 그것이다. 학교에서 존중과 배려의 태도를 배우지 않으면, 사회의 불균형과 갈등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학교의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학교 폭력 발생 건수가 2022년 57,727건에서 2023년에는 61,445건으로 증가했다. 심의 건수 역시 2020년 8,357건에서 2021년 15,653건, 2022년에는 23,602건까지 늘었다. 폭력의 유형도 다양해져, 언어폭력, 신체 폭력, 사이버폭력까지 확대되고 있다.
더불어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와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매년 증가 추세다. 이런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갈등은 학교 내부를 넘어 법정 분쟁으로 번지고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경제적·정서적 피해를 주고 있다. 해결이 아닌 상처만 남는 상황이다
이런 학교 문제를 접할 때면 무거운 마음을 떨치기 어렵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단기적이고 부분적인 접근으로 근본적인 변화는 어려웠고, 보다 학교 전반을 아우르는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했다.
경기교육은 2025년 1월,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통합해 [경기도교육청 교육공동체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를 마련했다. 교육공동체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하고 상호존중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방향성을 담은 조례이다. 이를 기반으로‘권리와 책임 위원회’를 구성하고,‘학교생활인성담당관’을 배치하여 현장 지원을 시작했다. 학생인권옹호관 제도와 더불어, 학교 구성원의 권리 침해 사례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학교 스스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문화와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법적 분쟁으로 커지기 전에, 학교 내부에서 건강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강화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경기교육은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을 지켜가기 위하여 ‘타율’이 아닌 ‘자율’의 방법을 선택했다. 공동체의 약속이란 상대방을 존중하고 서로 간의 신뢰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연결하는 사회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강요한 규칙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정한 약속은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약속을 정하고 지켜가는 과정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훈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단위학교 차원의 갈등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갈등 해결에는 ‘골든 타임’이 존재하며, 이를 위해 ‘긴급 갈등 개입’이나 ‘학교 내 갈등 대화 모임’과 같은 대응 체계가 학교 현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갈등 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현명하게 해결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경기교육은 이를‘상호존중’이라는 철학으로 묶었다. 갈등을 학교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지고 지혜롭게 풀어나갈 때, 학교는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경기교육의 모든 변화는 자발성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스스로 결정할 때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타인의 변화나 행동을 외부에서 강제하면 오히려 저항과 반발이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스스로 약속을 정하고 지키는 문화에 집중한다.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모여 직접 만든 공동체 약속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 전, 학교 교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들이 모여 공동체 약속을 정하는 자리에서 "학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처음엔 이 말을 학부모들에게 전하면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작 학부모들이 모여 약속을 만드는 자리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공동체의 약속은 타인의 요구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구성원들이 함께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공감할 때, 그 약속은 비로소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것과 아이들이 스스로 “우리가 좀 수업 시간에 조용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선생님이 강제로 "조용히 해"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기분이 나쁘지만, 친구들이 옆에서 "내 귀가 진짜 너무 아프고, 나는 떠들지 않았는데 계속 혼나니까 속상해"라고 표현하면, 떠들던 아이들도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하며,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다. ‘공동체의 약속 만들기’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권리와 책임을 함께 고민하고,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한 주춧돌이 된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서로 존중하며 풀어나가는 이런 과정들이야말로 경기교육이 추구하는 진정한 ‘상호존중’의 모습이다.
경기교육의 ‘교육공동체 약속 만들기’는 교육부의 학교문화 책임규약과 연계하여 모든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각 학교는 학교급의 특성을 반영하여,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공동체의 약속을 만들어가고 있다.
교육공동체의 약속은 학교가 직면한 다양한 현안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학교 단위, 학년 단위, 학급 단위로 약속을 구분하여 운영하는 학교의 사례를 보면, 학급 단위에서 정한 약속일수록 더욱 구체적이고 실생활과 밀접한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학급단위 약속의 경우 ‘교실 뒤에서 춤추지 않기’, ‘친구가 발표할 때 미소 지어주기’와 같은 내용도 등장한다. 이는 교육공동체의 약속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학교 일상 속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학생들 스스로 약속을 정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율성과 주인의식이다. 이 경험을 통해 학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효능감과 공동체로서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권리 역시 존중하는 균형 잡힌 태도는 진정한 존중의 출발점이다. 경기교육은 앞으로도 자발적인 약속과 상호존중의 문화를 바탕으로, 구성원 간 권리와 책임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있는 공동체 문화를 지속적으로 확산해 나갈 것이다.
존중이 일상이 될 때, 학교는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따뜻한 배움의 공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