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줄기차게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무섭게 내렸다. 해거름
산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기 전에야 차츰 기세가 가라앉았다. 하늘을 보니,
내일도 퍼부을 조짐이다. 이 나무 저 나무 가지를 현란하게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방울새무리만이 숲 속 적막을 깨울 뿐이다. 흰 눈 꽃송이 속에서도 팥배나무의
빨간 열매는 단연 눈부시다. 사방이 얼어붙을 듯한 흰 눈의 세계지만 얼음장 밑에
서는 졸졸 물이 흐르고 바람이 제멋대로 휘젓지만 곧, 비가 오면 눈이 녹아 쨍쨍한
빛을 보내주리라. 따뜻하고 평화로운 날이 쉬이 올 것임에 당혹스러운 3월의 폭설은 해프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