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거스 플레처, <고유 지능> 중에서

두려움과 분노에 대하여

by 닭죽


앵거스 플레처, '고유 지능' 중

분노와 두려움



월천도서관 신착 코너에서 이 책을 집었을 때 큰 기대는 없었다.


'고유 지능이라니 얼마나 사람 혹하게 하는 제목인가.'


'Primal Intelligence의 번역으로 고유지능이란 번역이 합당한가.'


내용을 얼마나 과대포장해서 저런 거창한 제목을 지었는지 가볍게 훑어나 볼 생각이었다.


뒤늦게 내 생각과 다르게 책이 대단하다고 느낀 건 200쪽을 넘어선 뒤였다.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심오한 내용을 자기만의 체화된 언어로 말하는 것 같아서 얼핏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금과 보석이 광채를 발하듯 휘황찬란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때부터 얼마 남지 않은 뒷부분을 정독하고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려고 글을 적다가


책을 다시 읽다가...



정말 좋은 책이고, 좋은 내용이 많아서 정리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책의 아주 일부인 두 가지 개념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려 한다.


다루려 하는 것은 분노와 두려움이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마주치는 감정이다.



앵거스 플레처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의 계획, 목표만을 가지고 있을 때 분노의 감정이 나타난다.



분노는 밀어붙이는 힘이다.


어제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분노한 상태로 차의 액셀을 밟았다. 시간에 맞추어 약속 장소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차의 속력을 높인다는 하나의 계획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좀 늦으면 어때? 기다려 주겠지."


옆에서 얘기해 주어도 들리지 않았다.


분노가 생긴다는 의미는 계획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의미다.


물건을 팔려고 다가와 제안을 하다가, 거절당하자 얼굴 위로 분노의 표정을 만들어 내는 상인들을 본 적 있다.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는 조잡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있으나 달리 보자면 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가지 계획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분노의 감정에 휩싸였다.


분노하지 않으려면, 목적을 재고하거나 계획을 추가하면 된다.


아이에게 이제 그만 놀고 밥을 먹으라고 할 때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점점 분노가 솟구친다. 그때도 오직 하나의 목표와 계획뿐이다.


목표 : 아이가 밥을 먹게 한다.

계획(수단) : 목소리를 높인다.


계획대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말을 안 듣는 아이를 강제하기 위해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분노가 실린다.


계획을 다양하게 할 수도 있다. --> 달콤한 후식으로 꼬신다. 같이 놀며 만족시킨 후 먹자고 한다.


혹은 목표를 폐기할 수도 있다. --> 밥 안 먹으면 굶긴다.


계획을 추가하거나 목표 설정을 바꿔버리는 것으로 분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 원시인이 있다. 그는 무시무시한 검치호랑이를 만났다. 손에 든 것은 돌칼 하나.


이때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은 손에 든 돌칼로 검치호랑이를 물리치는 것이다.


이렇게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하나의 계획만 있을 때 원시인은 분노한다.


무모할 정도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생각을 차단하고, 돌칼을 들고 호랑이에게 덤벼야 한다.


분노는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힘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게 우리 뇌를 붙들어 매기도 한다.


다른 계획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 뇌는 분노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똑같은 원시인이 있다. 그 역시 무시무시한 검치호랑이를 상대해야 하고 손에 든 것은 돌칼 하나뿐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계획이 있다. 최후의 최후의 순간에는 돌칼로 저항을 해야겠지만, 굴 속으로 도망가거나 함정으로 유인하거나 하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여러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 뇌는 분노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어느 계획이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높은 지를 따지기 시작한다. 고유지능 중 직관은 여기서 어떤 예외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호랑이가 딛고 선 땅의 상태, 동굴의 형태, 다른 동물의 침입 가능성, 조력자의 유무 등 여러 정보를 취합하고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발굴하는 능력이고,


상상력은 직관이 발견한 여러 수단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궁리하는 지능의 능력이고


상식의 힘은 그렇게 만들어 낸 여러 가지 계획 중에 쓸모 있는 것을 선택하고 쓸모없는 것을 폐기하는 지능이다.


(앵거스 플레처는 이렇게 직관, 상상, 감정, 상식을 인간의 고유지능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이미 아는 단어들이지만 이 단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고유지능이라고 부르는지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나의 계획만 있을 때 분노의 감정이 켜진다면



두려움의 감정 상태는 계획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검치호랑이를 만난 원시인이 살아남기 위한 저항도 포기하고 벌벌 떨고만 있는 상태다.


아무 계획이 없는 것이다. 살아남겠다는 본능적인 목표는 있으나 이를 이루기 위한 계획이 없다.


인간의 뇌는 계획이 없는 상태를 불안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때, 타인의 계획을 쉽게 차용한다.


옆의 원시인이 칼을 들고 호랑이에게 덤비면 그를 따라서 돌을 집어던지고,


누가 도망을 치면 따라서 도망을 친다.


공포 마케팅은 결국 이런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계획이 없는 사람들의 상태를 자신들의 계획(내 물건을 사서 이용하시오)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제시하는 치료법을 환자들이 쉽게 수긍하는 것도,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대개는 의사들이 집어주는 계획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 (전문가의 계획을 따르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무비판적 수용의 상황을 이용하는 전문가가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미래와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일을 해서 아끼고 저축한 돈으로 얼마를 모아야 노후 대비가 되는 걸까? 팔십, 구십 될 때까지 일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나의 경우는 s&p 500 주식에 적립하여 꾸준히 투자하는 경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획이 생기니 두려움이 가신다.

(하지만 계획이 하나뿐일 경우.... s&p 500의 주가 등락폭에 따라 분노가 차오를 수 있다.)



분노는 계획이 1개인 상태이며,


두려움은 계획이 0인 상태이다.


두려움과 분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계획을 짜 넣으면 된다.


계획을 짜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고유한 지능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편안하기 위해)


이 논리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두려움과 분노를 나는 명상 같은 방법으로 다스리려고 해 왔다.


두려움과 분노가 아예 떠오르지 않게 마음을 억누르거나,

두려움과 분노가 생겨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것에 마음을 썼고 그런 것이 수양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앵거스 플레처의 논리를 보자면,


두려움과 분노가 생기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이를 없애기 위한 방법이 존재한다.



계속 계획을 짜고 수정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


새로운 이야기로 삶을 채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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