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님 대신 부모님과 함께한 어린 시절
"학교에 안 가면 공부는 어떻게 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당연하게 해야 하는 공부와 당연하게 받는 평가, 그리고 그것이 쌓여 만들어지는 포트폴리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밤잠을 줄여 가며 공부한다. 그러나 어릴 적 나는 치열한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방과 후 학원 한두 개씩은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에 학원은 고사하고 학교조차 다니지 않는다고 하니 얘는 대체 뭘 하나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나름대로 하루하루 할 것이 많았다. 아빠가 엑셀로 만들어서 출력해 주신 형형색색의 시간표가 늘 방에 붙어 있었는데, 매일의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시간표는 홈스쿨링 모임에 제출하는 학습 계획표에 따라 매 학기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비슷했다.
아침 여덟 시경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성경을 읽었다. 아침을 먹은 후부터 본격적인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국어, 영어, 수학은 기본으로 들어 있었고, 운동하는 시간과 집안일을 하는 시간, 악기 연습을 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는 시간은 자유 시간이었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열 시경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홈스쿨링 모임에 참석하는 시간과 거기에서 받아오는 과제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스케줄표만 본다면 오히려 학교 다니는 것보다 더 빈틈없고 빡빡한 생활을 한다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케줄을 칼같이 지킨 날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날 해야 할 공부를 하지 않아 다음날에 몰아서 하기 일쑤였고,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와서는 운동했다고 체크한 날들도 많았다. 부모님 역시 이렇게 빈틈없는 스케줄을 매일 수행하도록 할 만큼 엄격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두 달 정도 지나면 스케줄은 어느새 흐지부지되곤 했다. 내가 지나치게 풀어질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다시 스케줄을 짜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풀어지고. 이런 패턴의 반복이었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정규 교과과정을 따라가는 것을 중점으로 삼지는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그곳에서 공부하는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나잇대에 기본적인 상식으로 갖추어야 하는 수준에서만 공부했다. 안타깝게도 수학은 분수가 등장할 무렵부터 나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나이에 맞는 문제집을 사서 풀긴 했지만 응용문제만 나오면 어김없이 무너지곤 했다. 그럼에도 흔히 말하는 '수포자'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어서였다고 생각한다. 성적표에 적나라하게 찍힌 나의 점수를 일찍부터 확인했다면 '나는 수학은 안 되는구나' 하며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영어 공부 방법은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CD가 딸린 영어 동화책을 빌려와 들으며 시작했다. 영어를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책이라면 다 좋아했던지라, CD를 틀어놓고 영어책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눈으로 좇았다. 그렇게 하면서 영어를 어떻게 발음하고 읽는지는 자연스럽게 배웠다. 영어를 읽을 줄 알게 된 이후로는 영어 성경을 필사해 보기도 했고, 홈스쿨링 모임에서 개설된 영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듣기도 했다. 그러나 영어를 '공부'로 여기는 순간부터 다소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아빠가 학생 때 공부하던 지루한 영문법 책을 뒤적거리고, 두꺼운 영단어 책을 사서 형광펜을 칠해 보았지만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 다만 좋아하던 책을 원서로 읽고 싶은 의지가 강해서 해리포터 원서를 가지고 단어를 찾아가며 읽곤 했다. (물론 익히 알던 내용이기에 가능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핸드폰도 없을 시절엔 나의 지루함을 달랠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다 학교에 있을 시간에 나는 혼자 1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곤 했다. 또 홈스쿨링 모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독서 모임이 있었다. 매주 최소 한 권의 선정 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썼으며, 그 밖에 책과 관련하여 주어지는 과제들을 했다. 따로 국어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독서로 기른 독해 실력과 나의 생각을 글로 쓰는 능력은 고등학교에 가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홈스쿨링을 하면서도 나름대로 주요 과목들은 놓지 않았다. 시험을 보거나 경쟁에 시달리며 공부하지 않았기에 효과는 다소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수학에서 새로운 개념을 배우긴 해도 응용 능력은 제자리걸음이었고, 영어는 늘 감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처음 공교육을 받기 시작했을 때 의외로 두각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었다.
나는 과외나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시험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나는, 몇 번의 시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과목별 공부 방법을 나름대로 세워갈 수 있었다. 그 결과 1학년 때 낮았던 내신은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게 되었다.
물론 홈스쿨링을 할 때 온전히 혼자서만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참석하던 모임에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논리적 글쓰기와 발표, 토론, 독서와 성품 등 다양한 것을 배웠다. 이 모임에서 하던 프로그램들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