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힘들어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형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
"음... 나는 이해를 잘해주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
"나도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포용을 서로 잘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흔한 20대 남자들의 이상형 이야기였지만, 교회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창밖의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포용이라는 단어를 너무 오랜만에 들었다. 바쁜 삶 속에서 포용이란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풀타임 학생이면서 거의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생각도 단순해졌다. 갈등이 생기면 내 것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내 의견을 관철하려고 싸우기만 했다. 나는 이해받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타인을 이해하는 척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널 이해해 줄게, 그러니 너도 날 이해해 줘.' 이해는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무기가 되어버렸다.
포용과 이해가 어떻게 다를까? 본질적인 갈등의 해소는 포용적 자세에 가깝다. 우리는 어렴풋이 포용이 이해보다 더 상위 개념임을 알고 있다. 두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이해: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포용: 남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임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해는 정보와 상황을 판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도 물론 개입되지만 지식과 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하지 않는다. 또 상대방의 논리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야 작동한다. 반면 포용은 이해되지 않거나 틀렸어도 받아들이는 온전한 감정의 영역이다.
"서로 포용하세요."같은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성 타령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무조건적인 포용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수도, 부처도 아니다. 단계적 성장이 필요한 덕목이고 전략적이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본인이 여유가 없다면 타인을 포용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금전적, 경제적 여유를 당장 만들기는 어렵지만, 심리적 여유는 노력하면 키울 수 있다.
현대인은 항상 뭔가를 소비하며 뇌를 쉬지 않는다. SNS, 유튜브 쇼츠, 웹서핑… 피로를 잠시 덮을 뿐, 진짜 쉼이 아니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보자. 출퇴근길에 잠시 심호흡을 하거나, 일기를 쓰면서 감정을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유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기억하자
어느 날, 옆 사람이 "1+1은 3이에요."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아니요, 1+1은 2입니다."라고 정정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상대방이 "아, 그렇군요! 1+1=2군요."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갈등 없이 대화가 마무리된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황이다.
상대방이 "제가 살아온 경험에 따르면 1+1은 3입니다.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라고 주장한다면? 상대방의 논리와 나의 논리가 부딪히고 논쟁 속 감정이 개입된다. 결국 상대방이 1+1=2를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의 감정은 상해버렸고 관계는 어색해질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이 1+1=2 임을 알면서도 우리와 싸우려고 하는 경우이다. 사내 정치, 감정적 앙금, 단순한 반발심 등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논리를 가져와도 상대방은 이미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경우 설득이 매우 어렵고, 완벽한 논리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더라도 앙금밖에 남지 않게 된다.
반전이 있다. 1+1=3이라는 이야기가 우리에겐 터무니없이 들리듯이 어쩌면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믿는 이야기도 때로는 타인에게 1+1=3처럼 들릴 수 있다. 세상의 논쟁이 모두 1+1=2처럼 명확하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복잡하고, 감정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한 발짝만 물러나서 관점의 차이를 받아들여보자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관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이 논쟁이 우리 관계에 도움이 될까"를 한번 생각해 보자
포용의 핵심은 상대의 논리나 말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우리에게 전달할 때, 단순히 말의 의미만 해석하지 말고 그 말에 담긴 감정을 읽어야 포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를 잘 살펴야 한다. 상대방이 전달하려는 감정의 결을 읽는 것이 포용적인 태도로 나아가는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관점과 경험을 가진 채 살아간다. 때로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포용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다. 인간 개개인은 모두 다른 경험과 감정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면, 포용은 더욱 필수적인 덕목이 된다. 리더는 조직 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해야 한다. 이때, 단순히 이해하려는 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때로는 상대의 논리가 납득되지 않더라도,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포용적인 리더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논쟁에서 이기기보다는 관계의 지속성과 조직의 건강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용하는 리더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존중받고,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교류될 수 있다.
완벽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포용적인 태도를 갖춘다면, 관계는 덜 소모적이고 더 단단해진다. 우리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포용은 결국, 우리가 더 건강한 사회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