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5월5일은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르름을 흠뻑 만끽할 수 있는 날씨였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다 즐거워 보였다.
난, 다음날이 입영 날 이였기에, 이 좋은 날씨가 전혀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논산훈련소에 입대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격어야 하는 일이지만,
20대 초반의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함께 입대한 동료들과 그럭저럭 군 생활에 적응해 군생활을 보내게 된다.
한달의 논산 훈련생활 이후, 광주 상무대로 이동하여 장갑차 조종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상무대에서 3주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한 것 이였는데, 군 안에 있었으니 엄청 큰일이 발생하는 경험을 해 본 것이다.
이후, 양평에 있는 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게 되었고,
여기는 포병 부대로 자주포 조종수로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안 갈 것 같은 시간이 ‘국방부 시계는 꺼꾸로 매달아 놓아도 돌아간다’ 라는 이야기처럼 그적저럭 짠밥이 차서 부대 내에 고참 측에 속하게 되었다.
일년에 두 세번 정도는 훈련을 나가는데, 그 중에서 실제로 자주포에서 포 사격을 하기 위해서는 양평이 아니라, 연천으로 이동하여 훈련을 하게 된다.
자주포는 연천까지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기차에 실어서 가게 된다.
자주포를 기차에 실는 과정은, 긴장되면서도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화물칸만 있는 기차에 18대의 자주포를 실게 되는데, 기차의 높이에 맞게 이동할 수 있는 언덕과 같은 공간에서 바로 자주포를 조정하여 기차로 이동하는데, 기차의 폭보다, 자주포의 폭이 조금 더 크기에 조금만 조종을 잘못하게 된다면, 자주포 궤도가 기차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될 수 있다.
자주포는 자동차와 같이 백미러, 사이드 미러 같은 보조 도구가 없기에, 사실 감으로 조정하게 된다. 기차에서 이동은 자주포 앞에서 손으로 지시해 주는 사람을 보면서 천천히 이동하게 된다.
자주포를 다 실게 되면, 부대원들은 전세 낸 일반기차을 타고 이동하며, 자주포를 실은 화물기차만 따로 이동하게 된다. 자주포를 실은 화물기차에는 기관사님과 부대의 선임하사 그리고, 부대의 고참 2명이 함께 타고 이동한다. 그 고참 2명 중에 내가 포함이 되었다.
일반기차가 먼저 출발을 하고, 이후에 화물기차가 출발하였는데,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근처 가게로 향했다.
군생활을 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휴가 기간이 아닌 상태에서 부대 내 PX가 아니라, 일반 물건을 사기 위한 가게에 간다는 것은 정말 얼마 안되는 일 중에 하나이다.
소주 2병을 사서 수통에 가득 넣고, 몇가지 주점부리를 샀다.
기차는 출발을 했고, 사 가지고 간 먹을거리들로 작은 파티가 시작되었다.
항상 통제된 군생활 속에서, 이런 자유로움은 너무나도 웃음이 나는 즐거운 시간 이였다.
화물기차는 항상 일반기차들을 먼저 보내야 하기에, 기차역 마다 자주 정차를 하였고,
우리는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다시 플랫폼 내 가게에 들러서, 다시 먹을 것을 사서, 기차에 올랐다.
소주를 먹는데, 특별히 국물이 없이 먹다 보니, 우동 국물이 너무 생각이 났다.
요즘은 기차 플랫폼 내 우동을 파는 가게를 볼 수가 없는데, 예전에는 꽤나 많이 기차 플랫폼 내에 우동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고, 기차 타기 전 먹는 이 우동맛은 엄청났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플랫폼 우동가게에서 우동을 좀 싸 달라고 했는데,
그때는 요즘처럼 일회용 용기, 포장 이런 것 들이 흔하지 않을 때였다.
포장은 안 된다고 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하든 괜찮으니, 사정사정 부탁을 했다.
아주머니께서 보시기에 군복을 입은 군인이 이야기를 하니, 흰 비닐봉지에 넣어 주셨는데,
기차에 가서 먹을려고 하니, 제대로 먹을 수 가 없었다.
다음 기차역이 도착하였을 때, 다시 한번 우동가게를 갔다.
우동 하나를 시켜서, 몇 젓가락을 먹고는 우동그릇을 들고는 기차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몇 발자국 갔을 때, 뒤에서 우동가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군인아저씨, 우동그릇”, “군인아저씨 우동그릇”
그런데, 아주머니는 나를 잡으려 뛰어 오고 계신 거다.
아, 그때 돈이 있었으면 우동그릇까지 지불을 하고 왔으면 좋은데, 딱 우동 한 그릇 돈 밖에 없는 상황 이여서, 어쩔 수 없이 그냥 튀었는데, 설마 아주머니가 따라 오실 줄은 몰랐다.
국물이 가득 차 있는 우동그릇을 잡고 뛰니, 국물은 넘쳐서 손이 뜨거웠고, 최대한 안 흘리면서 뛰려고 온 신경이 곤드썼다. 그런데, 마침 기차가 출발을 한다.
서서히 출발하는 기차를 뛰어 가면서, 간신히 탔고, 뛰어오시던 아주머니도 포기를 하고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기차가 지나갈 때 큰 인사를 하고는,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에 허겁지겁 올라탄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그냥 그 상황이 너무 생생한 코미디였으니까.
아주머니, 우동그릇을 돌려 드리지 못했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세요.
그렇게 그렇게 가을날의 기차는 연천을 향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