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생활에서 마지막 학기다.
4학년 2학기 중간고사. 마지막 학기가 되면 시험이 몇 과목이 없다.
조별 발표 과제, 또는 개별 발표 및 리포트로 시험을 대체 하기도 해서, 난 딱 2과목만 시험기간 동안 시험을 쳤고, 그것도 시험 시작 월요일에 모두 끝이 났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참 힘든 시기, IMF였다.
사실 대학을 들어갈 때만 해도, 우리나라 경제는 항상 상승 곡선이기에,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직장을 들어가는 것이 그냥 다들 가는 코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4년을 보낼 시점에서 IMF가 닥쳐와서, 어지간한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모집하지 않았다.
그때, 대학 4학년이 중간고사 끝났다고 편하게 놀 수는 없을 때였다.
지금도 필요하겠지만, 그때는 토익 성적표가 회사 입사 시 꼭 필요한 요소였다.
토익에 대해 잠깐 그때를 회상해 보면, 야구에는 30-30 클럽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 타자가 홈런 30개, 도루 30개를 달성하면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사실 야구에서 이것이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얼마전, 메이저리그에서는 일본선수 오타니가 50-50 클럽을 달성하여 전세계 화재가 된 봐 있다.
토익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왠 야구 이야기인 것은, 그 당시 이것을 빗대서 토익시험에서 30-30 클럽에 가입했냐고 친구끼리는 이야기 했다. 토익시험에서 30-30 클럽은 토익시험이 그때 LC와 RC 문제로 나뉘었는데, LC 30, RC 30 문제를 맞추었을 때 토익점수가 대략 700점 정도 되었다.
그래서, 최소한 좋은 회사에 입사하려면 이것을 통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중간고사를 치고, 역시나 토익 책을 폈는데,
갑자기 머리 속을 ‘쿵’ 하면서 밀려오는 새로운 생각이 떠 오른다.
‘산에 가자’
‘지리산 종주를 한번 해 보자’
동네 친한 친구 집에 저녁에 갔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때부터 산악부를 해서, 산에 대해서 잘 알고, 관련 장비들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이것을 빌리고자 했다.
“니가, 산에 간다고”, “동네 약수터도 한번 안 가는 놈이, 혼자서 지리산을 종주 한다고”
친구는 근심 반, 놀림 반 나에게 이야기 한다.
배낭, 침낭, 코펠 등을 챙겨 달라고 했더니, 내어 주면서 헤드렌턴도 준다.
산에는 해가 빨리 지고, 해가 지면 앞이 하나도 안 보인다. 무조건 해 지기 전에 다음 산장까지 꼭 도착해야 한다면서, 만약 밤에 길을 잃어버리면, 절대로 당황하지 말고, 나뭇가지에 군데 군데 걸려있는 리본을 꼭 찾으라고 한다. 그리고, 토끼가 지나가면서 풀들이 마치 길처럼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때 나뭇가지 리본이 없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뒤로 돌아와야 한다고 한다.
친구는 산을 많이 가 봐서, 위험상황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런 경험들이 없다 보니, 뭐 별로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다음날, 혼자서 짐을 한가득 꾸려서 출발을 한다.
그 한가득 산행을 위한 짐과 함께, 난 큰 가방이 하나 더 있었다.
대학교에서 동아리로 사진 찍는 서클에서 활동을 했다. 요즘과 같은 DSLR이 아니라, 흑백 수동 필름카메라도 사진을 찍고, 직접 현상 하기도 했다.
많은 짐이 있어도, 한참 젊을 때 이였기에 낑낑 거리면서 산을 올랐다.
지리산 종주 코스는 최장 코스로 전라도에서 시작하여, 경상도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구례화엄사를 시작으로 최고봉 천왕봉을 오르고 내려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처음 산봉우리에 도착한 곳은 노고단 이였다. 엄청 헥헥 거리며 힘들게 올라왔는데,
옆에 보이는 사람들은 엄청 쌩쌩한 것 이다. 알고 보니 노고단까지는 차 로도 올라올 수 있는 곳 이였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는, 오늘 밤을 보낼 대피소까지 거의 해가 질 때쯤 도착을 하였다.
해가 어스륵하게 노을이 있다가, 바로 깜깜해진다.
요즘은 국립공원 산속에 있는 대피소를 이용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예약없이 그냥 가서,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 받았다.
단풍이 완연하게 불꽃을 터트릴 때는 아니 였지만, 어느 정도 단풍이 지리산을 가득 차 있을 때여서, 경치는 두말 할 필요가 없었다.
지나다가 구도가 좋아 보이는 포인트가 보이면, 잠깐 쉬면서 카메라를 꺼내고 삼발이를 펴서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 보니, 보통 등산객들이 소요되는 시간보다 좀 더 시간이 걸리게 되었고, 그 짬들이 모이다 보니, 숙박을 위한 다음 대피소까지 도착하기 전에 해가 져버렸다.
그냥 헛으로 들었던 친구의 말이, 진짜로 현실로 맞 부닥치게 되었다.
헤드렌턴을 착용하고 한발짝, 한발짝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조심조심 움직이는데, 앞에 큰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는 경사가 꽤 있었고, 밤에 보았을 때 이건, 절대로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꺼꾸로 되돌아 가 보았는데, 나무에는 빨간색 리본이 표시되어 있다.
다시 앞으로 가면서, 길을 찾으면서 걸었는데, 조금 전과 동일했다. 몇 번을 반복하였지만, 너무 크게 벗어나면 길을 진짜로 잃어 버릴까 봐, 그 주변을 계속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10월 이였지만, 산속에서 밤은 엄청 추웠다. 바람도 새 차게 불고, 멀리서는 동물 울음 소리도 들리고, 엄청난 무서움이 밀려왔다.
난 집안 종교가 천주교 이여서, 천주교 신자이지만, 그렇게 성실한 종교생활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저절로 하느님 소리가 나온다.
어제부터 하루 종일 걸어 다녔으니,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오늘은 아침 먹고는 사진 찍다 보니까 점심도 못 먹어서, 허기도 엄청 들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으로, 그냥 털썩 주저 앉아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혹시 내일 아침을 못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불길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가득 차고 있었다.
머리 속이 복잡한 그때, 갑자기 어릴 적 어머니께서 읽어 주신 동화 해님 달님의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하느님, 전 아직 인생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썩은 동아줄이 아니라, 새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그런 생각을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하고 있는데, 이게 왠걸?
꿈인지, 생시인지를 찰라에 엄청 혼돈되는 순간이였다.
저 옆에 동아줄, 동아줄이 아니라 밧줄이 보이는 것 이였다.
그 큰 바위는 정상적인 산행 길 이였고,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길이였다.
낮에 보았으면 별 의심이 없었겠지만, 밤에 그것도 이런 큰 산에 처음 온 나로서는 전혀 예상을 못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드디어, 대피소에 도착을 했다.
대피소에 계시는 관리인께서 엄청 놀라시면서 “다행입니다”라고 말씀해주신다.
해가 진 시간은 6시, 대피소 도착은 10시, 4시간 동안을 깜깜한 산속을 헤매 였던 것이다.
그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침을 하고 있을 때 였고, 난 조용히 취사실에서 조용히 아주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내가 먹어본 음식 중 최고의 맛 이였다.
다음날은 다시 또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다음 대피소까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을 했다.
여기는 장터목산장으로 바로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
다음날 새벽4시.
알람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한다.
모두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이다. 난 카메라 가방만 들고 그 행렬에 함께 했다.
대략 1시간 정도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와서, 천왕봉에 도착했다.
삼발이를 설치하고, 일출을 찍기 위해 카메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분이 옆에 오시더니, 나한테 이야기를 하신다.
“카메라 작가세요”
“작가정도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 천왕봉 몇 번 오셨어요”
“오늘 처음입니다”
“와~ 정말 운이 좋으신 분이시네, 저는 여기 10번정도 왔었는데, 한번도 여기서 일출을 못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분 이야기 대로 진짜로 좀 시간이 지나니, 멀리서 일출이 보였다.
너무나도 황홀한 장관이였다.
해가 뜨고, 산등성이로 구름들이 새차게 이동하는데,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양이라고 할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광경들이 펼쳐졌다.
‘그래! 이제 내 인생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