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끌려가는 소는 이런 기분

by 히든알라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소프트웨어도 여러 분야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하는 분야는 좀 특이하다고 할 수 있죠.

장비소프트웨어 개발자입니다.

장비소프트웨어란, 반도체생산라인, OLED 생산라인 등등의 공장자동화 생산라인에서 설비기계들을 작동시키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합니다.


그때는 회사에서 과장일 때.

예전에는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런 직급으로 회사에서 불렸는데, 물론 요즘도 이렇게 사용하는 곳이 있지만, 많은 직장들이 이런 직급을 부르지는 않는 것 같다.

어쨓든, 내 생각에 회사에서 눈으로 보기에 가장 바쁘게 일하는 부류가 대리, 과장일 때 인 것 같다. 더 높은 직급 일 때도 회사 생활에 바쁘게 지내겠지만, 실무적인 일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은 조금씩 덜해지는 것 같다.


과장이면서, 팀장인 나는 무척 일이 많았다.

그래도, 꽤나 일에 대한 욕심, 성취욕 등이 충만해 있어서, 일을 함에 있어서는 재미있게 했었다.

회사에서 제조된 설비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서, 자주 해외출장을 나가야 했다.

급여소득자라면 매달 급여에서 건강보험료가 빠져나가게 된다. 그런데, 한달 중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국내에 없을 경우에는 그 달의 건강보험료가 환급이 된다. 자동으로 환급이 되지는 않고, 출입국확인서를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면 처리가 된다. 회사에서는 경리 직원분이 연말에 일괄적으로 처리를 해 주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은 연말에 꽤나 솔솔한 비자금이 생기게 되었다.


설비기계들은 사람을 대신하여 자동화를 위한 요소인데, 납품 후, 셋업을 하고 초기 생산 시 모니터링 하면서 문제점들을 보완하지만, 때로는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특별히 신규로 개발된 장비의 내부 구조는 개발 담당자만 제대로 된 상태를 알고 있을 경우도 많이 발생된다.


일이 발생된 그 당시, 난 3개의 신규 개발 장비를 동시에 생산 현장에서 못다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을 때. 몇 주째 회사에는 출근 하지도 못하고, 바로 납품 생산현장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쁘재? 미국에 좀 잠시 갔다 온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해외영업담당자가 몇일 전부터 나에게 계속 SOS를 보냈는데, 현재 내가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계속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님께서 직접 나에게 전화 하신 걸 봐서는 뭔가 문제가 심각해진 모양이다.

다음날은 회사로 가서,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몇 달 전에 퇴사한 팀원이 신규 개발했던 장비가 미국으로 납품이 되었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이고, 사실 납품된 미국 회사에서는 6개월도 훨씬 전부터 조금씩 문제점에 대해 문의를 하였는데, 대응할 인력이 마땅하지 않아서, 영업담당자는 계속적으로 지금까지 미루게 된 것 이였다.

그러면서, 미국 회사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히스토리와 함께 손해배상이 100억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뭔지 이제 파악이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결할지를 곰곰히 고민을 해 보아야 하는데, 에러 리스트가 100개 이상은 있었던 것 같고,

사실 이전에 개발한 팀원과 내가 사용하는 프로그램 툴이 다르기에, 내가 설명도 없이 그 소스들을 짧은 기간 파악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테고, 같은 툴을 사용한다고 치더라도 개발자 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을 소스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해 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사실일 테다.


머리는 복잡하고, 무엇부터 하나씩 해 나가야할 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바로 내일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자주 해외출장이 있었지만, 보통은 중국과 동남아의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였고, 미국이나 유럽은 아주 가끔 있는 출장이였기에, 미국에 간다고 하면 일단, 좀 들 뜬 기분이 들 수 도 있는데, 비행기 타면 먹던 캔맥주도 먹기 싫고, 온통 머리가 멍 했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는 이런 기분이지 싶다…’


실리콘밸리 내 납품된 회사 현장에서 차근차근 하나씩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먼저 소프트웨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본적인 상황부터 확인하면서, 잘못된 부분들을 제대로 잡아 나갔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기본적인 설정들이 잘못된 경우들이 발견이 되었다. 그러한 내용들부터 정리를 해 나가니, 에러리스트의 절반 이상이 해결이 되었다. 하나의 문제점 이였는데, 나타나는 상황 대로 에러리스트가 작성되었기에, 한꺼번에 여러 개가 해결되는 상황이 나타났다.


짧은 시간에 뭔가 대단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주 이상이 소요될 소프트웨어 개발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해결해 보자는 생각이 어는 정도 맞아 들어 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50%나 문제 해결해야할 부분이 남아있는 상항에서, 출장 10일의 일정에서 벌써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 이였다.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고민을 해 보았다.

남은 기간 할 수 있는 부분과, 시간이 더 소요되는 부분으로

다행히 비교적 간단히 프로그램 수정으로 처리되는 부분들이 어느 정도는 있어서, 그 부분을 처리하고 나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빠른 시간 내 처리를 하여, 차후에 전달하는 방향으로 담당자에게 문의하였다.

사실 이정도만해도, 몇 달 동안 사용 못 하고 신규 장비가 애물단지가 되어있었는데, 실 생산에는 적용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기에, 담당자는 흔쾌히 인정을 해 주었다.


또한, 출장 마지막 날에는 이 큰 회사 대표가 나와 미팅을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여러 회사에 출장을 가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표님은 콧수염이 아주 멋진, 백인의 중년 이었는데, 영화에서 나 보는 미국적인 인상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난 영어회화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못 하는 수준 이였다. 엔지니어끼리 대화 시에는 그림을 그려 가면서 이야기 하면 대략적으로는 의사소통이 되어서 문제가 없었는데, 일반적인 회화는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있는 상황 이였다.

요즘은 K컬쳐가 전세계에 화재가 되고 있지만, 15년 전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한국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본인 와이프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자주 집안에 한국말 소리가 나온다고 하면서, 폐기 처분 할 생각까지 했었는데, 정상적인 장비로 되돌려 줘서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고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은 하늘을 날아 가는 기분이다.


한국 행 비행기에서 흐믓하게 마신 맥주 맛이 참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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