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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시대, 부국강병의 기술을 마련하다

3. 다윗 시대, 부국강병의 기술을 마련하다

by 김병훈

3. 다윗 시대, 부국강병의 기술을 마련하다


이스라엘 민족은 필리스티아를 비롯한 가나안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다윗 왕 영도로 이스라엘 12지파를 재통합해 강력한 통일왕국을 이룹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견고히 하기 위해 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민족인 여부스족이 사는 견고한 성곽도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습니다.

그 뒤 ‘다윗 도성’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12지파를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해 예루살렘과 왕이 국민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의 지배로 미미했던 유다 지파가 상대적으로 입지가 강화되자, 다른 지파들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불렸습니다. 이는 훗날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서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다윗 왕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정복한 뒤에 주위 나라들과 우호동맹을 조직해 이스라엘을 강대국의 대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뒤에도 다윗 왕은 언제나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왕국은 아카바 만에 이르기까지 현재 이스라엘 영토의 다섯 배 정도로 커졌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영토였습니다.

왕국은 이집트 국경과 홍해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솔로몬 왕 시대 이스라엘의 번영은 선왕인 다윗 왕의 영토 확장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비옥한 토지를 갖게 되었고 중요 국제교역로를 통제하게 되었으며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았습니다.


(1) 에돔 왕국 병합으로 대량의 소금과 철 생산.


에돔은 현 이스라엘 남쪽 지방 사해 주변과 현 요르단의 산악 지방을 아우르는 곳에 있었습니다. 야곱의 형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였습니다. 그곳에 사해와 그 밑에 ‘염곡(the Valley of Solt)’ 곧 소금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염곡은 사해의 남쪽 끝에 있던 사방 16km 정도 넓이로 된 소금 평원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협곡지대를 말합니다. 에돔 왕국이 염곡을 안 빼앗기려고 격렬히 저항하는 바람에 다윗 왕은 에돔 병사 18,000명을 염곡 전투에서 죽여야 했습니다. 에돔 왕국의 복속으로 소금은 이스라엘 왕국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소금의 대량 생산으로 국부의 기틀을 잡은 것입니다. 내국민에게는 싸게 팔아 가뭄으로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땅에 소금을 뿌려서 비료로 사용할 만큼 이스라엘에서는 귀한 소금이 지천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인들은 철광산 개발로 좀 더 강력한 철제무기를 확보하고 건축에 필요한 을 풍부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박 건조도 활성화되었으며, 철광석과 철제품 역시 주요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2) 국제 무역로를 장악하다.


이스라엘이 에돔을 점령한 주요 목적은 홍해의 에일랏 항구를 포함해 ‘왕의 대로’의 남단과 아카바 만의 에시온 게벨 항구로 가는 길을 장악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 에돔은 인도와 아라비아, 지중해, 이집트를 연결하는 ‘낙타로’ 또한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과하는 국제무역로는 ‘해변 도로’와 ‘왕의 대로’로 크게 구분되었습니다. 이 두 도로는 많은 군인, 사신, 상인, 여행자들이 다니는 길로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동서양 문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왕의 대로지중해와 홍해를 연결시켜 주는 도로였습니다. 상인들의 통행세만 받아도 국고를 충당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통행세는 일종의 관세였습니다. 팔레스틴은 세 개의 대륙이 묘하게도 집중되어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세계의 골목길이자 교통과 교역의 요지였습니다.


팔레스틴 도로들은 그 기능과 중요성의 척도에 따라 세 유형으로 구별됩니다.

첫째, 국제 고속도로격인 ‘해안 도로’와 ‘왕의 대로’입니다. 둘째, 지역 내 도로입니다. 셋째, 시골길입니다.

당시 지방 상인들이 도로와 시골길을 누비며 일반적으로 취급했던 품목들은 농산물인 밀, 보리, 올리브, 올리브기름, 포도주, 온갖 과일과 채소, 가축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도시와 마을을 다니면서 이것들을 팔았으며 수공품이나 외국 물건들을 구입해 갔습니다. 더 큰 규모의 국외 무역은 다양한 물품들이었습니다.

이들 수입과 수출 품목들은 왕의 대로를 따라 팔레스틴을 통과했습니다.


인근 페니키아 두로 왕국의 번영 역시 다윗의 군사적 활동에 힘입은 바 컸습니다.

다윗은 아람을 굴복시킴으로써 ,두로 왕국에게 아람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해 주었으며 해상교역의 경쟁자인 팔레스틴을 격파함으로써, 두로로 하여금 지중해 교역의 주도권을 잡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연고로 훗날 두로 히람 왕은 솔로몬 왕과 손잡고 해상교역에 나섭니다.


(3) 다윗의 호구조사와 유대인 기본사상.


다윗은 호구조사를 통해 징집과 세금 징수의 기본 틀을 마련했습니다. 이로써 확실히 부국강병의 국가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병적(兵籍) 조사 결과, 당시 무장 가능한 장정의 수가 이스라엘에는 80만명, 유다에는 50만명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다윗 왕이 실시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조사를 <성경>에서는 매우 사악한 것으로 간주했던 듯합니다. 다윗 왕은 그의 인구 조사가 너무나 사악한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神에게 용서를 빌었으며, 속죄의 벌로 7만 명의 백성들이 역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구를 헤아린 행위 그 자체가 통치행위의 시작이며, 이는 신이 가진 이스라엘에 대한 배타적 통치권을 침해함으로써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는 유대인의 중요한 기본사상 중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인간이 주권자 곧 통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백성의 대표는 단지 대표일 뿐, 그들의 통치자는 하느님 한 분입니다. 그래서 자치제와 민주주의 제도가 역사상 가장 먼저 유대인에 의해 실현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들의 통치자는 하느님 한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다윗의 별.


다윗의 별이란 ‘다윗왕의 방패’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Magen David’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대인 그리고 유대교를 상징하는 표식입니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과 유대를 통합한 후 다윗의 별을 유대 왕의 문장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의 별은 헥사그램(육각성, 六角星)이라고 하는 삼각형 두 개를 엇갈리게 그려놓은 별 모양입니다.

헥사그램은 한 종교에서만 독점적으로 쓰는 상징은 아니지만 오늘날 이스라엘 국기에 쓰일 정도로 유대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탈무드>에서 전하는 바로는 다윗과 솔로몬 왕은 이 헥사그램을 가지고 귀신을 내쫓고 천사를 불렀다 합니다. 그 뒤 헥사그램에는 악마를 쫓아내는 특별한 힘이 부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유대인들보다 오히려 기독교인들과 아랍인들이 이 상징을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특히 중세에는 헥사그램이 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해 준다는 믿음이 성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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