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의 영향과 GE에서의 출발
[위대한 경영자, ‘잭 웰치’의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1935년 매사추세츠 피바디에서 태어나 살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60년 일리노이 대학에서 화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에 GE에 입사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년 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사업 및 경영 방식으로 승진을 거듭한 그는 1981년에 마침내 GE의 최연소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GE는 완전히 새로운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리스트럭처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다양한 전략을 통해 GE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서도록 만들었습니다. 엄격한 후계자 선정 과정을 통해 제프 이멜트를 후임자로 선택한 그는 2001년 9월에 GE를 은퇴하였습니다.
금세기 최고의 전설적인 리더 잭 웰치가 자신의 위대한 승리와 처참했던 실패의 순간들과 함께,
비즈니스와 인생 모두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비밀의 열쇠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꿈을 키우던 시절
(1) 어머니가 심어준 자신감.
학창 시절 초기에 어머니는 그에게 성실하게 노력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엄하게 다뤄야 할 때와 안아주고 입맞춰주어야 할 때를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는 사람인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의 기본적인 경영 신념의 많은 부분들, 예를 들면 이기기 위해 열심히 경쟁하는 것, 현실을 직시하는 것,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 목표를 보다 높게 설정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임무를 확실히 완수하도록 가차 없이 추궁하는 것들을 어머니에게 배운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불어넣은 통찰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떠한 상황이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하였습니다.
또 ‘자신을 속이지 마라.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종 ‘공부를 하지 않으면 넌 쓸모없는 사람이 될 거야.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사람 말이야. 이 세상에 지름길이란 없단다. 자신을 속여서는 안 돼!’라고 충고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통솔해 본 적이 전혀 없었지만, 자신감을 키워주는 법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간해서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말을 더듬어서 낭패를 당하거나 우스운 사건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말을 더듬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건 네가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이지. 어느 누구의 혀도 네 똑똑한 머리를 따라갈 수는 없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는 수년 동안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어머니는 엄청난 자신감과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너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잭 웰치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2) GE에서 힘겨운 첫걸음.
1961년에 연봉이 1,000달러 오르기 전까지 그는 엔지니어로서 GE로부터 10,500달러를 받고 일했습니다.
1,000달러라는 금액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5명에게 일정하게 균등 분배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러한 ‘표준적’ 인상분보다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여, 상사에게 말했지만, 그것은 논의할 여지도 없는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GE의 그러한 비합리적인 관행에 좌절한 그는 다른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GE에서 보낸 첫해는 악몽과 같았지만, 마음에 들었던 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PPO(Polyphenylene Oxide)라 불리는 새로운 열가소성 물질의 개발를 위한 새로운 실험 공장을 설계하고 지을 수 있는 자율권과 마치 하나의 작은 회사처럼 느끼게 하는 팀의 독립성이었습니다.
결국 회사를 따나기로 결정했으나, 루벤 구토프라는 상사의 끈질긴 설득과 보다 많은 보수를 지급하고,
조금씩 권한을 늘려주는 것과 관료주의로부터의 보호막을 약속하는 진심으로 배려하는 모습에 회사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구토프가 그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로 차별화는 그의 기본적인 경영 방식이 되었습니다.
균등한 임금 인상이 그를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고 갔지만, 차별화라는 것은 극단적인 것 그 자체입니다. 최고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비효율적인 것은 없애 버립니다. 엄격한 차별화는 진정한 인재를 발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재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팀원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는 게임이란 최상의 선수들을 어떻게 배치하는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최상의 팀에 배치되는 사람은 누구나 승리할 것입니다.
루벤 구토프는 그에게 그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팀의 우승은 최상의 선수에게는 보상을 해주고, 최악의 선수는 퇴출시키며 한계 범위를 좁히기 위해 싸우는 차별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3) 플라스틱 사업에 날개를 달다.
잭 웰치가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기 몇 년 전에 실제로 공장을 날려버린 적이 있습니다. 1963년 그는 스물여덟 살로 입사 3년 차였습니다. 엄청난 실험 공장의 지붕을 날려버렸고, 맨 위층의 창문을 모두 부숴버렸습니다. 그는 공장의 맞은편에 있는 피츠필드의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큰 탱크 안에 든 휘발성이 강한 용액을 가지고 산소 거품을 발생시키는 화학 실험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공장의 책임자인 그에게 폭발에 대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룹의 임원인 찰리 리드에게 사건의 전말에 대해 보고하였습니다.
찰리 리드는 잭 웰치의 대응 내용과 향후 대처 방안을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일을 매듭지었습니다.
‘나중에 대규모로 작업을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지금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차라리 낫군.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일세.’라고 하였습니다.
PPO에 균열이 생기는 문제를 폴리스티렌과 약간의 고무를 합성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릴(Noryl)이라는 합성 물질은 전세계에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적인 제품이 되었습니다. 1968년 6월 초에 GE에 입사한 지 거의 8년이 되던 해에 그는 2,600만 달러 규모의 플라스틱 사업부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서른두 살의 나이로 회사의 최연소 사업부장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큰 무대로 그를 이끌었으며, 그는 직위에 준하는 예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매년 1월에 열리는 경영책임자회의에 초대받았고, 처음으로 스톡옵션도 받았습니다. 그는 성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