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끝없는 열정의 승부 – 진정한 글로벌 기업

6. 세계화, 서비스, 6시그마, e비즈니스

by 김병훈

6. 세계화, 서비스, 6시그마, e비즈니스


(1) 이니셔티브 추진에 운영 체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다.


1990년대에 GE는 4가지의 주요 이니셔티브(새로운 계획)를 추진했습니다. Globalization, Services, Six Sigma, E-Business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이니셔티브들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그 아이디어의 씨앗이 우리의 운영 체계에 심어지면, 그다음에는 곧바로 성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위의 4가지 이니셔티브들은 지난 10년 동안 실로 엄청난 크기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것들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니셔티브는 조직 구성원 전체를 사로잡을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회사 전체에 거대한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크고 넓으며, 충분히 포괄적인 어떤 것입니다. 이니셔티브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직의 근본적인 성격을 바꾸어놓습니다. 어떤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든 간에 웰치는 언제나 치어리더의 역할을 했습니다. 웰치는 종종 미치광이처럼 비춰질 정도로 엄청난 열정과 집중력으로 사람들을 무섭게 몰아붙였습니다. 이니셔티브는 어디에서든,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든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세계화라는 이니셔티브는 파올로 프레스코의 열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서비스는 크로톤빌의 강의 중에 고속 성장을 위해 우리의 시장을 더 넓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촉진되었습니다. 6시그마는 1995년에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제안되었습니다. 그들은 GE의 품질 수준이 비교적 우수하긴 하지만, 품질 프로그램을 통해 한층 더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e비즈니스를 남들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습니다. e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그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e비즈니스에 뛰어든 다음에는 그 혁명에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GE 특유의 운영 체계가 도와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고경영진의 열정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아니, 열정을 넘어선 혹독함을 필요로 했습니다. GE는 각각의 이니셔티브에 최고의 인재를 배치해 철저하게 훈련시켰습니다. 나아가 그들이 거둔 성과를 측정하고, 각자의 결과에 대해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이니셔티브의 목표는 더 유능한 인재를 개발하고, 보다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업부의 리더들은 이니셔티브의 철저한 옹호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소극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만 옹호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리더들은 A등급의 사람들이 이니셔티브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고, 회사는 그들에게 연봉 인상, 스톡옵션, 역할 모델 선정과 같은 크고 확실한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니셔티브의 추진을 맡겼는가를 보면 조직에서 그 이니셔티브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GE가 초일류 기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6시그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만일 GE에서 6시그마를 최고의 인재들에게 맡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또 다른 그저 그런 품질 프로그램 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GE는 하나의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끊임없는 격려와 촉구의 북소리를 울려댔습니다. 이니셔티브들이 조직 내부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년 직원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 조사 결과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지침으로 이용했습니다. 설문 조사 결과는 이니셔티브와 관련된 메시지들이 조직 내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모든 이니셔티브의 성공은 얼마나 집중적으로, 그리고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것을 수행하는냐에 달려 있습니다. 격려와 촉구의 북소리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각 사업부 책임자를 포함한 최고경영진은 모든 이니셔티브에 전심전력을 다해 몰입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이니셔티브 효과는 보다 많은 결과들로 나타납니다.


(2) 진정한 글로벌 기업.


GE는 언제나 전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왔습니다. GE를 진정한 세계화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은 바로 파올로 프레스코였습니다. 1986년에 그는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임명되었고, 모든 사업부의 리더들과 동등한 지위가 부여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업에 대한 책임은 없었습니다.

파올로는 글로벌 경영자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는 키 크고, 잘 생기고, 매력적이고, 도시적이었으며, 또한 세계 곳곳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1962년에 GE에 합류한 이탈리아 태생의 변호사인 파올로는 오랫동안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는 GE 내에서 최고의 협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파올로는 GE의 세계화 활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미스터 글로벌’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GE를 미국 국경 밖으로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눈을 떴습니다. 그는 회의 때마다 동료 경영자들에게 자신의 세계화 전략과 계획들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때로는 사업부 CEO들에게 글로벌 비즈니스의 현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어서 귀찮게 하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글로벌 거래를 더 많이 수행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을 하였습니다. 그는 세계의 어떤 시간대에 있거나 편안함을 느꼈고, 한 달에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미국 이외의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파올로는 말 그대로 세계화의 전도사였습니다.



GE의 세계화 전략에서 중요한 핵심은 세계화에 대해 일반적인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GE는 과도기적인 발전 단계에 있는 지역, 혹은 침체기에 빠져 있는 지역에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런 지역이 위험 부담이 큰 만큼 보상도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유럽이 경기 침체에 빠져 있을 때, GE는 많은 기회들, 특히 금융서비스 사업에 있어서의 많은 기회들을 보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멕시코의 페소가 평가절하되고 경제가 일대 혼란 속에 빠져들었을 때, GE는 멕시코에서 20개 이상의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거래를 성사시킴으로써, 지역 생산 기반을 상당히 증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오랫동안 외국 기업의 투자를 허용하지 않았던 일본 시장에 GE의 금융서비스 사업이 침투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회주의적인 전략으로서,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에 진출한 것은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GE는 세계 각국에서 여러 인재들을 찾아내 회사의 중요한 자리에 배치시킴으로써 진정한 글로벌 기업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화 초기 단계에서는 GE가 보유한 인재들을 세계 각국에 파견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세계화를 향한 GE의 출발이 성공을 거두는 데 있어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그 ‘버팀목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현지의 인재들을 확보하는 데에 더욱 힘을 쏟았습니다.

해외 파견을 줄이는 것은 더 많은 글로벌 인재들을 중요한 위치에 앉힐 수 있고, 해외 파견에 따른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현지 채용 인원들이 성장해서 미국 본사의 책임자로 성장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벽[Boundary] 없는 조직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