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인생과 행복의 기준은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16. 자연으로 돌아가라 – 도가 사상
노자는 ‘도(道)’와 ‘덕(德)’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작은 나라와 소수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정치적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1) 자연 천도관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 사상.
기원전 6세기부터 5세기 전후에 동양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 명의 위대한 사상가가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노자, 공자 그리고 인도의 석가모니입니다. 이 세 명의 사상가는 태어나 활동한 시기가 비슷하며 그들 각자 세운 학살은 모두 고대 중국에서 교류 융합 발전되어 동아시아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즉 석가모니가 창설한 불교, 노자로 대표되는 도가 사상 그리고 공자가 창설한 유가 사상입니다.
유·불·도 3교는 중국 전통문화의 체계를 구성하는 3대 요소입니다. 그 가운데 도가와 유가는 중국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전통문화입니다.
도가 사상은 춘추 말기 노자가 창건한 이래로 중국의 문화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중국 철학사에서 도가 사상은 체계적인 우주 생성론과 우주 본체론을 제일 먼저 폈을 뿐만 아니라 이후 2,000년 동안 중국 철학의 우주론이 발전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도가 사상은 천도관을 중심 내용으로 합니다.‘그것을 낳아도 소유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 일을 해도 그것을 믿어 의지하지 않으며, 그를 길러 주어도 그를 지배하지 않는’ 도의 속성을 모범으로 해서 행할 것을 주장합니다. 정치상에는 ‘강제력이 배제된 자연스런 정치’, ‘지식인을 받들지 않고 민중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 것’을 주장합니다. 윤리에 있어서는 ‘인과 의라는 기존의 사회 규범을 버릴 것’을 주장하고, ‘무릇 禮(강제적 규범)라는 것은, 진실된 마음과 서로 간의 믿음이 희박해졌기에 생긴 것이요, 따라서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징조요, 방조자이다’라 하여 유가 사상과 묵가 사상에 정면 대립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인류가 지혜를 개발함으로 초래한 죄악, 즉 간악함과 거짓됨이 갈수록 증가되었다는 그의 판단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인류 사회가 다시 순박한 원시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것이야말로 이상 사회의 청사진이라고 제시하였습니다.
(2) 노자 사상의 사회적 배경.
상고시대인 하·은·주 3대의 발전을 거쳐 춘추 전국시대로 들어선 이후 중국 사회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대변동을 역사학자들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제 사회로의 전환기 혹은 과도기라고 부릅니다. 경제 기초의 변혁은 반드시 정치에 반영되게 마련입니다. 당시의 정치권력이 점차 아래로 이행되어 새로운 봉건지주 계급이 차츰 정치 무대에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동은 사회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상고시대는 상제와 천명이 관념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시대로 사람들은 자연계는 물론 사회의 모든 현상을 상제가 결정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는 최고의 神이요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여 천명은 절대로 위반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춘추시대에는 노예제 사회가 붕괴해 가고 새로운 봉건 경제가 발생함에 따라 상제의 권위는 점차 약해졌습니다. 이와 함께 무신론적 경향을 띠는 회의론적 시각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상제 신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상의 자유시대로 진입하였습니다.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지자 실의에 빠진 지식인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편의 사람들은 유가와 같은 세속적 사고에 반발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식의 진보와 인위적인 문화의 발전에 회의를 느끼고 예, 인의, 도덕, 군신의 권력에 역겨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속적 가치를 부정하는 이러한 사고 경향이 마침내 극도의 이상주의에 입각한 속세를 초월한 철학 사상을 창출하였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창시된 것이 도가 사상입니다.
(3) 마음의 평안을 추구한 노장 철학.
도가 사상은 노자가 창시하였고 장자가 계승 발전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 사상을 이해하려면 노자의 사상과 장자의 사상을 알아야 합니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 서로 다른 점이 없지 않지만, 대체적인 경향은 같습니다. 이들은 ‘무(無)’를 자주 사용합니다. ‘무위(無爲)’라든가 ‘무아(無我)’의 주장이 그 좋은 예입니다.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정신적 행복, 즉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영화를 체념 또는 달관해서 괴로움을 잊으려 했고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야말로 어떠한 혼란이 와도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달관의 철학은 마침내 신비주의 경향을 보입니다. 그들은 현실의 조건을 개혁하기보다는 인생과 행복에 대한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꾸었습니다.
노자는 우주의 본원, 만물의 근본을 ‘道’라고 불렀는데, ‘도’는 본래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을 가리킵니다.
이로부터 사람이 따라야 할 법칙, 원리, 규율로 그 뜻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도’는 중국 철학사에서 점차 정치적, 윤리적, 철학적인 개념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정(靜)으로 동(動)을 제어한다는 주정론, 무위로 다스린다는 無爲論,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유약론, 모순하는 쌍방이 서로를 이루어 준다는 변증론, 현묘한 마음의 거울을 깨끗이 씻어 낸다는 직각 인식론, 돈후·질박·겸허·과욕의 윤리 가치론이 노자의 사상입니다.
(4) 유가 사상과 도가 사상 어떠한 점이 다른가?
유학이 대체로 중국 사상사의 양지를 장식한 데 비해 도가 사상은 음지에서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도가 사상은 민중 생활 또는 서민 생활과 밀착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孔子는 天命論을 계승하여 하늘에서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으며, 죽고 사는 것은 명(명)에 말미암고, 부유하고 고귀한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는 예(禮)는 사치스러움보다 차라리 검소함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老子는 “예는 정직과 믿음이 부족한 데서 생기는 것으로 혼란의 시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허위와 사기의 도구가 된 예는 이미 재앙을 일으키는 원흉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仁義에 대해서도 노자는 그것을 순박한 대도(大道)가 폐기된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오직 성인(聖人)을 끊고 지혜를 버려야만 비로소 백성의 이익이 백 배가 될 것이며, 仁을 끊고 義를 버려야만 비로소 백성이 다시 자애롭고 효성스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주로 허위적인 예의에 반대하였고, 전통적인 예의의 작용까지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禮 義 仁 愛를 자신의 ‘도덕’ 사상 아래에 위치시켜 두 번째 중요한 것으로 유보시켰습니다.
전국시대 중국 사상의 발생기에서 공자·맹자의 유가 사상과 노자·장자의 도가 사상이 출현함으로써 후대 중국 사상의 2대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공자에서 맹자를 거치면서 그 사상이 정리된 유가 사상은 철저히 실천적이고 교훈적인 윤리 체계였습니다. 그들의 과제는 개인적으로 수양의 실천이며 사회 정치적인 도덕규범의 관철을 추구하는 문제였습니다. 형이상학적 궁극 문제에 관한 사색은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한 도가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유가가 관학으로 발전함에 따라 도가는 서민적인 신앙과 결부되면서, 유가와 도가의 사이는 거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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