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윤을 내는 기업만이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다!
3. 이윤을 내는 기업만이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다!
위르겐 슈렘프는 벤츠 영업소의 자동차 기계공에서 출발, 최고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경제 기적을 이룬 세대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경영자의 전형으로서, 목표 지향적이며 야심에 가득 찬 출세주의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1944년 9월 15일 독일 남부 바덴의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고향에서 대학을 중퇴한 후 처음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영업소에서 자동차 기계공 수습을 받았습니다. 그 후 엔지니어 공부를 계속해서 196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음과 동시에 그는 슈투트가르트의 다임러 벤츠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1974년 처음으로 해외 근무를 나가 남아프리카의 메르세데스 벤츠 자회사에서 일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고객 서비스를 담당했으나 1980년부터는 기술책임이사로 일하였습니다. 1982년 슈렘프는 다임러 벤츠 자회사인,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상용차 생산회사인 유클리드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심한 적자에 시달리던 이 회사를 2년 만에 흑자로 돌림에 따라, 그는 모험적이기는 하지만 능력있는 실력자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도하여 유클리드를 매각하고, 남아프리카의 메르세데스 벤츠에 부사장이 되었습니다. 1985년 그는 그곳에서 사장이 되었습니다. 1987년 슈렘프는 슈투트가르트의 본사에 돌아와 신설 부서를 맡아 상용차 설계를 담당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다임러 벤츠의 이사대행으로 임명되었습닏다. 1989년 다임러 벤츠는 구조를 개편하면서 방위 산업과 항공, 우주 산업 영역을 통합해 ‘독일우주항공주식회사(DASA)’를 설립하였습니다. 이때 슈렘프가 DASA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슈렘프는 다임러 벤츠 이사회의 정식 이사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기업의 다양한 활동들과 관련 분야들을 기능적으로 통합하는 구조 개혁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슈렘프가 맡은 일은 아주 도발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DASA는 금방 급류에 휘말렸습니다. 바르샤바 조약이 붕괴됨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방위비 지출이 급감했고, 항공 기술 사업도 퇴보 상태였습니다.
영업 실적이 좋지 않자 1994년 6월, 다임러 벤츠 감사위원회는 총수인 로이터에게 조기 퇴진을 제의하였습니다. 1995년 5월 24일 슈렘프는 다임러 벤츠의 이사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새로 총수가 된 그는 메르스데스 벤츠가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1995년에 57억 마르크의 기록적인 적자가 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동시에 1996년에는 다시 흑자를 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슈렘프는 자신의 혁신 활동에 대해서 일종의 ‘문화혁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진화론적인 과정을 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오기 전에는 지주회사에서 1,2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300명으로 인원을 축소하였습니다.
만약 설정해 놓은 높은 목표를 조만간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는 아마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슈렘프는 전에 남아프리카 변방에서 일할 때 뫼링겐의 본사 홀을 ‘빌어먹을 성(城)’이라고 비꼬았습니다. 이처럼 한낱 고참 병사에 지나지 않던 그가 이제 인생의 부침을 뚫고 나와 그 성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었습니다.
슈렘프는 한 회사에서 자신의 직장 생활을 모두 보냈으며, 견습공에서 출발해서 한 단계씩 승진했다는 데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캠핑장 야간 경비원, 타일공, 악단의 트럼펫 주자 같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대학 공부를 마쳤습니다. 슈렘프에게 신문과 방송에서 자신과 자신의 회사에 관한 어떤 보도가 나는지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株價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주식시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신경이 여간 예민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스컴에 약간의 낌새만 보여도 파장은 엄청 커집니다.
주주들이 냉정한 판단력을 지니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전혀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슈렘프는 바쁜 시간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왜 다임러 벤츠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결과, 벤츠가 수십억 적자를 냈지만, 주가는 계속 상승할 수 있었습니다. 슈렘프는 이를 자신의 성과라고 여겼습니다.
슈렘프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윤이다.’라고 하면서, 투자 자본의 12% 위에 막대기(목표치)를 놓았습니다. 그는 손해를 본 기업은 모두 처분할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사장인 베르너는 제네바에서 열린 자동차 전시회에서, 계열사 내에서 메르세데스 벤츠는 전체 매출액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계열사들은 적자를 내고 있지만, 그들은 수십억 원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슈렘프가 메르세데스 벤츠까지 포함한 전체 계열사를 전략적으로 지휘하려고 하지만, 베르너 사장은 말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베르너는 슈렘프에게 방해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로부터 몇 달 뒤 슈렘프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권력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슈렘프는 재직 초부터 업무상의 계통을 무시한 채 자회사 이사회를 제쳐두고 자신이 약 30개의 사업 영역을 직접 관할 했습니다. 각 회사에 대한 발언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슈렘프는 동료들의 일에 간섭하며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처방에 같이 책임을 지도록 끌어 들였습니다.
성공적인 자동차 생산에 관련하여 슈렘프는 베르너의 노선에 전적으로 의구심을 보였습니다.
메르세데스가 소형차 시장에 진출할 경우 그 위험 부담을 베르너가 잘 알고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슈렘프는 아주 신중해야 하며 기업 주력 업종의 이미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르너는 메르세데스를 결코 대중적 브랜드로 만들지 않을 것이지만, 자동차 생산 대수는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르너 대 슈렘프, 이 둘 사이의 갈등은 계속 증폭 되었으며, 얼마 뒤에 베르너는 물러났습니다.
슈렘프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독재였습니다. 그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도 기가 막히게 감정을 표현해 낼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혁명가라고 자부하는 사람에게 겸손은 전혀 미덕이 아닙니다. 슈렘프는 조급한 성격과 기본적으로 서류를 싫어하는 것을 자신의 최대약점으로 여겼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20장이 넘는 서류는 읽기가 싫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극히’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슈렘프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다임러 벤츠의 채산성을 강화하였습니다. 적자를 내는 AEG 매각을 추진하였고 AEG 본사는 해체 시켰습니다. 약 2년 동안에 슈렘프는 35개 사업 영역을 23개로 줄였습니다. 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슈렘프의 거친 요법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자회사였던 메르세데스 벤츠는 모회사에 통합되었습니다. 슈렘프는 적수였던 베르너를 1997년 1월에 사임시켰습니다. 1996년 결산은 이윤을 내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직원은 2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습니다. 슈렘프는 경제 기적을 이룬 세대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경영자의 전형인데, 이들은 냉정하고 비애국적이며 단호한 실용주의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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