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슬레 회장 – 헬무트 마우허

4. 네슬레를 변화·개혁하여 세계 최대의 식료품 회사로

by 김병훈

4. 네슬레를 변화·개혁하여 세계 최대의 식료품 회사로


“어쩔 수 없이 YES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하지만 견뎌라. 결코, NO라고 말하고 싶은 데도 YES라고 말하지 마라!” 마우허는 평생을 네슬레에서 일했으며, 독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네슬레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관성있고 엄격한 경영으로 120년 네슬레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팽창 정책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네슬레는 세계 최대의 식료품 회사가 되었습니다.


헬무트 마우허 1927년 12월 9일 독일 알고이 지방의 아이젠하르츠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동생만 넷이고, 아버지는 우유 가공 공장의 기술자였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네슬레사가 소유하게 된 이웃 우유 가공 공장에서 장사에 필요한 훈련을 쌓았습니다. 네슬러사의 지원을 받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을 마친 후에 스위스 로잔에서 경영교육 과정을 끝마쳤습니다.

마후어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독일 네슬레사에서 영업결산 보조자로 일했습니다. 얼마 후 기획과 회계 부서 책임자로 승진하였으며, 영업관리부서의 간부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로잔에서 경영교육을 받고 돌아온 뒤에는 독일 네슬레사의 마케팅 책임자로 승진하였습니다. 이로부터 1년 뒤 그는 네슬레의 자회사로 냉동식품 체인점인 핀두스의 경영을 맡게 되었습니다.


1971년 마우허는 네슬러를 떠나 독일소비조합의 대량구매협회(GEG) 경영진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1년 뒤에 다시 네슬레 그룹으로 되돌아옵니다. 1972년 마우허는 뮌헨에 있는 알고이 알프스우유주식회사 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75년 독일 네슬레사의 경영진은 그를 사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1981년 마우허는 경영협의회 위원이 되어 제네바 호수 근처의 베베이에 있는 네슬레 본사로 파견됩니다. 이제 네슬레를 움직이는 요직에 진출한 것입니다. 이 무렵 네슬레의 매출액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며, 이미지 문제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 위생 상태가 불량해 잘못 먹으면 위험할지도 모르는 3세계에서 무책임하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신생아 음식물들을 광고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 스위스 회사의 신뢰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네슬레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거세졌습니다.


마후어 비판 진영과의 대화에 나섰고, 자신이 새로운 정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개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견해를 고수하였습니다. 1990년 마우허는 경영협의회 회장에 임명되었습니다. 네슬레 직원들은 대부분 마우허만큼 길고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의 눈은 사려 깊고 깨어 있었으나 결코 차갑지는 않았습니다. 마우허는 사람에 대해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리 작은 세부적인 것까지도 고려할 줄 알며, 때로는 독단적이기도 한 빠른 판단력을 자랑합니다.


마우허의 맘에 드느냐 안 드느냐는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승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우허는 인사 정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모든 일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골라 쓰면 교육하는 데 25%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1,000%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별 볼 일 없고 의욕도 없으면서 자신이 잘난 줄 알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르치고 또 가르쳐도 효과는 0.3%밖에 없습니다.


지능지수만 볼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욕과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능력, 오늘날에는 이것을 사회적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런 능력들까지 감안해 사람을 골라 쓴다면 성공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마우허는 사람들과 대화로 일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길에서 보내며, 눈으로 직접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가식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보는 지위라는 것도 결코 필요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마우허가 노조의 경영 참여를 도입했을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연설을 하였습니다.

“첫째, 나는 피사의 사탑과 같다. 기울어져 있지만 땅에 튼튼히 서 있다. 둘째, NO라고 말하고 싶을 때 YES라고 결코 말하지 말라. 이것이 나의 모토(Motto)이다. 여러분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알고 또한 우리가 서로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이것이 노사 양측에 더 이롭다. 하지만 NO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인데도 내가 두려움이나 압력 때문에 YES라고 말하는 일은 아마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우허는 일관성 있고 엄격하게 경영하면서 공급 품목 문제를 해결해 냈습니다. 동시에 팽창정책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전세계적으로 식료품 기업들을 인수했습니다. 뮌헨의 커피 회사인 달마이르와 유럽 최대의 소시지 회사인 헤르타 되르플러 주식회사도 인수하였습니다.

1988년에는 약 22,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국의 카네이션사와 영국의 제과 회사인 로운트리를 사들였는데, 이는 신문의 톱뉴스가 되었습니다. 기업의 총수 자리가 즐거움도 있지만, 큰 책임감으로 부담스럽지 않은지 하는 질문에, 마우허는 자신이 하는 말을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들어주는 건 기분좋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권력도 즐거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마우허는 자신에 대해서도 아주 비판적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제어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우허는 총수 자리에 대한 부담감 같은 건 전혀 없다고 하였습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과 좋지 않은 일들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누가 나를 공격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어디서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또는 사업에서 돈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놀라고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회사에서도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CEO는 이런 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마우허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문제를 수월하게 처리하는 편입니다.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이 문제들 때문에 죽을 정도의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1992년 네슬레는 아주 중요한 수입원을 손에 넣게 됩니다. 프랑스의 페리에르 광천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사들임으로써 마우허는 생수 시장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뒤로 네슬레는 생수 브랜드인 페리에르, 콘트렉스, 비텔을 소유하게 되며, 미국에서는 애로우헤드, 독일에서는 디 블라우엔 크벨렌이라는 생수를 출시했습니다. 네슬레는 베트남, 중국, 이탈리아, 폴란드, 태국, 이집트에서도 생수 사업을 계속 추진하였습니다. 1996년에는 70억 리터의 생수를 판매하였으며 생수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네슬레는 세계적으로 8,500개가 넘는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네스카페’는 매출액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997년 마우허는 경영협의회 위원직을 후임자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페터 브라벡 레트마테에게 물려주었으며 전략 사업만 책임지는 위치가 되었지만, 경영협의회회장 자리는 2000년까지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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