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적재적소의 사람 배치와 올바른 투자 결정만이 사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6. 적재적소의 사람 배치와 올바른 투자 결정만이 사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인리히 폰 피러는 유럽 최대의 전기·전자 제품 회사인 지멘스 총수로서, 자유로움과 엄격함, 부지런함과 절제, 자연스러움과 적응력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그의 장점은 내부, 외부와의 의사소통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회의실에서 감사들과 이야기할 때에도 기자회견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적절한 어조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피러는 경영인이면서도 노련한 정치가처럼 처신을 합니다. 회장이라는 자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을 하나로 일치시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격적인 개혁 정책을 취하면서 모든 직원들에게 새로운 기업의식을 심어주고자 하였습니다.
피러는 1941년 1월 26일 독일의 에를랑겐에서 직업군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향에 있는 에를랑겐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으며, 1968년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듬해인 1969년에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에를랑겐의 지방 신문사에서 자유기고가로 일하였으며 학위를 마칠 때까지 법과대학 조교로 있었습니다.
1969년 지멘스 주식회사의 법률 부서에서 법률 자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8년 뒤에는 지멘스의 자회사인 유니온 발전소로 자리를 옮겨 판매와 주요 부서의 여러 업무를 위임받았습니다. 그는 발전소의 커다란 프로젝트들을 잘 수행해 내자 자청해서 지멘스의 경영 업무를 맡았습니다.
1988년 10월 그는 유니온 발전소의 세일즈 부서를 맡았는데, 이 부서가 독자적인 사업 영역으로 개편되면서 지멘스 주식회사에 편입되었습니다. 따라서 피러도 모회사의 이사로 승진하게 됩니다. 1990년 10월 지멘스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중앙이사회의 이사에 임명됨으로써 앞으로의 성공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핵에너지가 발전에 사용되면서 발전소 사업은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피러는 핵기술에 찬성한다고 공공연히 밝혔지만, 전통적인 가연물질을 이용한 발전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며
단호한 합리화 조처로써 유니온 발전소를 확실한 궤도에 올려놓았습니다. 1991년 7월 피러는 지멘스 부회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지멘스 전통에 따르면, 당시 회장이었던 카를하인크 카스케의 후임으로 내정된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의 지휘 관할 아래 지멘스는 동유럽 사업에도 진출하였으며 체코의 스코다와 합작하여 에너지 기술 분야에도 진출하였습니다.
1992년 7월 피러는 기술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멘스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었는데, 경제신문들도 이를 자세히 보도하였습니다. 300여 개의 자회사와 관련 업체를 거느린 지멘스는 유럽 최대의 전기, 전자 제품 회사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지멘스는 700개가 넘는 생산 기지를 두고 있으며 193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직원수는 38만 명에 이릅니다. 피러가 지멘스의 경영권을 맡았을 때에는 회사가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고는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경기 후퇴기여서 불황 문제와 맞부딪쳐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익에 대한 기대가 줄어드는 가운데 1992년과 1993년의 수익률은 2.4%에 머물렀습니다.
피러는 ‘TOP(시간절감과정)’라는 이름 아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세적 조치를 취하면서 1994년 초 모든 직원들에게 새로운 기업의식을 심어주고자 하였습니다. 3년 안에 1인당 생산성을 30%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 내 일자리도 줄였습니다.
지멘스는 전구, 마이크로칩, 유리섬유 기술, 통신, 발전소, 기관차와 같은 250가지 사업 분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격적인 개혁 정책들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TOP를 도입한 이후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증대하였습니다. 동시에 매출액과 수익이 증가하였습니다. 1847년에 베르너 폰 지멘스가 설립한 지멘스는 177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지멘스는 산업의 역사에서 공룡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전통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지멘스는 다른 독일 기업들보다도 이 사회의 문제를 훨씬 더 많이 반영하고 있습니다.
배가 잔뜩 부른 공룡 지멘스는 세계화라는 징후 속에서 질주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관성이 여러 면에서 엿보입니다. 하지만 지멘스의 능률 향상은 동시에 이 사회에 어떤 변화의 잠재력이 숨어 있는지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우리 회사에 투영되어 있다.’라고 피러도 동감하였습니다.
잭 웰치는 피러의 적수일 뿐만 아니라 우상이기도 합니다. 웰치처럼 피러도 자신의 회사가 배우는 회사이기를 바랍니다. 즉 성공한 경쟁사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잭 웰치는 ‘우리는 아이디어로 무장한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세계 기업의 경영 문화와 사업 스타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멘스 회장 역시 복잡한 변화 과정에 대해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말들의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행동하게 만들 것이다.” 피러는 지칠 줄 모르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피러는 “나는 여러 역할을 맡은 연기자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핵심을 정확히 찌른 말입니다.
피러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입니다. 그는 회사에 이로운 것만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자나 독자, 혹은 시청자들 마음에 들려고 하기보다는 중요한 사람들, 즉 감사위원과 고객, 직원들 마음에 들고자 하였습니다. 비밀이 없다는 것이 피러의 유일한 비밀이라고 인물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피러는 개방적인 기업 경영 스타일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서류를 써 보내는 것보다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하며, 이메일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직접 회의하면서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근무지침보다는 현장에서 실행하는 경영을 선호했으며, 명령보다는 동기 부여를 더 좋아했습니다.
지멘스가 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세계 경영을 하였고, 전기역학 원리와 같은 기술은 오랫동안 선두 자리를 고수하였고, 주로 국가 기관에 납품하면서 매출액과 가격을 장기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 세 가지 성공 조건들이 모두 달라졌습니다.
대기업들은 모두 세계를 무대로 경영하고 있었고, 앞선 기술도 점점 퇴보하고 있으며, 주고객도 개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멘스도 변화의 시대에 공룡처럼 되어있었습니다. 생산품의 80%를 수출해야 했고, 납품 기한이 8개월에서 14일로 단축되었습니다. 생산성의 증가는 4년동안 15%에 그쳤습니다. 전자 제품은 값이 더욱 싸지는 반면, 성능은 더욱 좋아지고 있습니다. 지멘스 제품 중 70%는 수명이 채 5년도 되지 않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지멘스에게 굉장한 위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러가 주도하는 개혁 프로그램들은 한결같이 “템포”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감량 요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멘스 시조새는 공룡과 조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로 생각됩니다. 새가 되고 싶은 공룡, 이것이 당시의 지멘스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이미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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