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여자가 미웠을까

괜히 마음이 상한 날

by 스텔라

요즘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자주 붙들렸다. 특별히 큰 불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나를 무례하게 대하거나 상처를 준 일도 없었는데 가슴 한켠이 늘 눌린 것처럼 무거웠다. 괜찮다고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답답함은 묘하게 끈질겨서, 아무 일 없는 날에도 나를 괴롭혔다. 도대체 내 안에 무엇이 이렇게 나를 자극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을 몇 달이나 품고 살았지만 답은 늘 머리끝까지 올라왔다가도 손에 잡히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다 정말 뜻밖의 장소에서 나는 그 단서를 하나 주웠다. 그날 나는 온천에 가 있었다. 여러 개의 마사지탕이 나란히 놓인 공간이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리를 찾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유난히도 사람이 많았던 날이라 나는 탕 가장자리에 잠시 서서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때 딱 하나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 앉으면 좋겠다.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까이에 있던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고, 묘하게도 우리는 같은 순간 같은 자리를 본 듯했다. 그 여자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바람처럼 다가가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나는 그 장면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결국 다른 자리로 향해야 했다.

그게 그렇게까지 마음이 상할 일인가 하면 솔직히 그렇지도 않다. 그 자리는 애초에 내 것이었던 적도 없고, 그 여자는 나에게 어떤 무례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왜 이렇게 불쾌하지. 내 감정이 내 스스로에게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문득 아주 낯선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아, 내가 지금 경쟁을 하고 있구나.

나는 그 여자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고, 그 여자는 내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여자와 한 자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늘 세상이 한정된 몫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어렴풋이 믿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돈도, 자리도, 사람들의 관심도, 사랑도, 인정도 누군가가 더 가지면 그만큼 나는 덜 가진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말한다. 세상은 정글이라고,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라고.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진실처럼 들려 나는 별 의심 없이 그 믿음을 등에 지고 살아왔다.

나는 그 여자가 단지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마치 내 몫의 무언가를 가져가 버린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때는 몰랐지만, 그 여자를 바라보며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자리 하나에 대한 분노치고는 지나치게 컸다. 나는 그 순간 그 여자를 은근히 미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그제야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여자가 가진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망설이지 않고 자기 욕망을 선택하는 태도,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기운, 그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내 오래된 결핍 하나를 정확히 찔려버렸다. 나는 늘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중심에 서고 싶었으며,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인사이더가 되고 싶었다. 겉으로는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나 있다는 느낌을 오래도록 품고 살아왔다. 그 여자는 그 결핍을 건드린 단 하나의 손가락이었을 뿐이다.

나는 그제야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두 가지 착각을 보게 되었다. 하나는 저 여자가 내 것을 빼앗아 갔다는 착각이었다. 애초에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고, 나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소유한 적이 없었다. 또 하나는 나는 이미 졌다는 착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속으로 판결을 내려버리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여자를 가해자로 만들고 나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내 인생을 아주 편리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미워한 것은 그 여자가 아니라 그 여자를 통해 비춰진 나 자신의 결핍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핍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원래 그런 몫을 가질 사람이 아니라고.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 판결이었는지를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혹시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나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사람들 평판도 나쁘지 않은데 유독 눈에 거슬리는 사람, 이유 없이 신경이 쓰이고 괜히 비교하게 되는 사람 말이다. 그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들여다보길 권한다. 그 사람이 가진 무엇이 혹시 당신이 오래도록 원했지만 스스로 포기해버린 당신의 몫은 아니었는지.

우리는 종종 같은 트랙 위에 서서 서로를 밀쳐내며 달리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 여자는 그 여자의 인생을 살고 있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있다. 겹치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한 번도 겹친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갖지 못한 그것을 나는 절대 가질 수 없다고 미리 단정해버리는 순간, 내 삶의 어떤 문 하나는 조용히 닫혀버린다는 것을. 문을 닫아놓고 나는 세상이 각박하다고 혼자서 투덜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 속에서 조금 덜 움츠러들어 보려 애쓴다. 누군가가 앞서 자리를 차지해도 그것이 내 인생의 패배는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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