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배운 걱정

by 스텔라

“이번엔 더 아래로 가볼까요?”


다음날 같은 시간 그녀를 만났다.

“지금의 걱정 말고… 처음으로 불안을 배웠던 순간으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날 것 같아요.”

“기억은 머리로 찾는 게 아니에요. 느낌으로 가는 거예요.”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둡다.

조금 차갑다.

배 속이 비어 있는 느낌.

그 감각은 낯설지 않았다.

“몇 살쯤인가요?”

“…일곱 살쯤.”

낡은 식탁.
엄마의 한숨.

아빠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

돈 이야기였다.

나는 방에 있었지만 벽은 얇았다.


“이번 달은 빠듯해.”
“애 학원을 줄여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이해한다.

공기가 긴장으로 굳어 있으면 그걸 온몸으로 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덜 필요하면 좋겠다.’

내가 덜 먹고, 덜 배우고, 덜 요구하면

엄마의 한숨이 줄어들까...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그 아이는 무엇을 결심했을까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해야 한다고.”

“왜죠?”

“그래야 대비할 수 있으니까.”


나는 어린 나를 보았다.

아주 조용한 아이.
눈치 빠른 아이.
늘 상황을 읽는 아이.

나는 아이였지만 아이로 살지 않았다.

걱정은 그때 생겼다.

미리 생각하면 덜 놀란다.
미리 대비하면 덜 혼난다.
미리 눈치채면 덜 미움받는다.

걱정은 내가 선택한 방어였다.



“그래서 당신은 걱정을 버리지 못하는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걱정은 당신을 지켜준 도구였으니까.”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나는 평생 걱정을 적으로 생각했다.

없애야 할 것.
나를 괴롭히는 것.

그런데 그것은 나를 지키려던 어린 나의 전략이었다.



“그 아이에게 가보세요.”

나는 천천히 어린 나에게 다가갔다.

작은 어깨.
조심스러운 눈빛.

나는 그 아이 앞에 앉았다.


“그때 무서웠지?”

아이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이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제는 내가 있어.”

말을 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내 심장이 따뜻해졌다.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은 방어였어요. 상처를 최소화하려는 방식이었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나는 늘 최악을 상상했다.
그래야 덜 다친다고 믿었으니까.

나는 늘 대비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나는 늘 계산했다.
그래야 가치가 유지된다고 믿었으니까.

걱정은 상처를 피하려는 계산기였다.

하지만 그 계산은 언제나 과했다.

상처를 최소화하려다 삶 전체를 긴장 속에 가두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나는 속삭이듯 물었다.

그녀는 웃었다.

“걱정을 걱정으로만 두세요.”

“그게 무슨 말이죠?”

“걱정을 사실로 만들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생각했다.

–50은 실패가 아니라 숫자.
갈등은 거절이 아니라 상황.
미래는 파국이 아니라 가능성.

나는 그동안 걱정을 ‘예언’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걱정은 그저 생각이었다.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어린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고마워.”

그 아이가 나를 지켜주려고 그렇게 애썼다는 걸 이제 알았다.

나는 아이를 안았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묶여 있던 매듭이 하나 느슨해졌다.

걱정은 적이 아니었다.

과거의 내가 만든 보호 장치였다.

이제는 조금 덜 써도 되는 장치.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불안을 바로 걱정으로 덮어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 당신은 선택할 수 있어요.”

“무엇을요?”

“걱정을 방패로 쓸지, 아니면 필요할 때만 꺼낼지.”

나는 눈을 떴다.

거실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걱정 중독자가 된 건
나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일찍 강해지려 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걱정은 조금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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