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통증 기록]애매하다고 믿었던 시간들

by 영애비

상자를 들다가 생긴 통증 역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며칠 쉬고
물리치료 몇 번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날의 상자가
특별히 더 무거웠던 것도 아니고,
내가 특별히 더 무리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살다가 생긴,
평소의 통증이라고 여겼다.


연례행사처럼 가던 정형외과였기에
병원행도 낯설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 고역이었다.
특히 전기치료를 받을 때
느껴지던 묵직한 이물감은
언제나 불편했다.

옆에서 치료를 받던 어른들이
“시원하다”고 말할 때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그 어른들이 물리치료 침대 위에서
“아이고—어휴—” 하고 흘리던
타령조의 신음소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물리치료를 받을 때 느껴지는
시원하고 나른한 감각 덕분에
치료 도중 조는 일도 많아졌다.

누군가에게
케어받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나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다는
뿌듯함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서 나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조금 불편하면 참았고,
아프면 자세를 바꿨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특히 의식적으로
허리를 곧게 펴는 데
신경을 썼다.

한 번 아팠다가
회복해 본 사람들은 안다.
몸의 기억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여지껏 그렇게 해서
회복이 되었기 때문에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허리가 보내는 신호를
경고라기보다는
조율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조율이 아니라
유예에 가까웠다.


통증은
예전보다 분명 더 자주,
더 오래 이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나아지고 있는 것도,
완전히 무너진 것도 아니라며
이 상태를
‘애매하다’고 불렀다.

이 애매함이
사람을 가장 지치게 한다.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도 없고,
완전히 포기할 만큼의
절망도 없는 상태.

그래서 나는 더 버텼고,
그래서
더 오래 방심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허리 상태에
신경 쓰는 것을
‘아픔을 관리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더 많은 기준을
허리에 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아주 미세했다.

허리를 기준으로 산다고
느낄 만큼의 일은 아니었다.

약속을 정할 때도,
이동 거리를 계산할 때도
그저
한 번 더 생각하는 정도였다.


하루 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능하면
오래 앉아 있지 않으려 했고,
괜히
서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하루의 주도권이
아주 조금씩
허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이미
허리를 기준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앉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 걸을 수 있는지,
오늘은 어느 정도까지
괜찮을지.

허리는
더 이상 몸의 일부가 아니라
하루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이번 통증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이.

물론 그때도,
이 통증이
3년 이상 지속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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