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험 기간에는 별다른 일 없었죠?
문제 오류도 크게 없었던 것 같고요.”
“아뇨. 어제 3학년 시험에서
부정행위 한 학생이 있어서
징계받을 거라던데요.”
“어? 3학년 2학기 2차 지필고사에
부정행위요?
애들 다 찍고 자는 분위기
아니었나요?”
“상황이 좀 애매하긴 해요.
답안지 받자마자 다 찍고 잤는데,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나 봐요.
규정상 착용만 해도
부정행위잖아요.”
“에이, 그건 좀 그렇네요.
규정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구제할 방법도
있어야 하지 않나요?”
“안타깝긴 한데, 아시잖아요.
성적이 워낙 민감해서
규정대로 가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거요.”
아이들에게는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교사들에게 시험 기간은
한때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런 교사들의 모습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시험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
교사들은 딴 세상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인정한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정말로 그런 호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즘도 시험 기간에는
수업이 없고
오후에 조퇴가 가능한 날도 있으니
육체적으로는 편한 게 사실이다.
대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내신이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학생부종합전형이
본격화된 이후로
시험 기간은 말 그대로
살얼음을 걷는 시간이 되었다.
우선 시험 출제부터 달라졌다.
요즘은 한 달 넘게
여러 차례의 검수를 거친다.
1차 지필고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2차 지필고사 구상에
들어가는 과목도 있다.
시험지가 외부에
모두 공개되다 보니
편집 하나, 표현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학원가에서는
학교 시험지를
파묘하듯 분석한다.
홍보에 이만한 소재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해도
오류가 발생할 때가 있다.
그 순간,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그래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이런 말이 오간다.
변별력 있는 문제 출제보다
오류 없는 문제 출제가
더 중요하다고.
시험 감독 역시 만만치 않다.
학교에서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시험 기간이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모두 예민해져 있다.
최근에는
부정행위 적발이
가장 민감한 이슈가 되었다.
학교 시험을
수능에 준해 운영하다 보니
예전에는 없던 규정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무선 이어폰 하나만 소지해도
부정행위가 되는 상황에서
감독을 하고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정황상
부정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여도
규정은 규정이다.
하나씩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전체가 흔들린다.
학교에서 정상 참작을 하려 해도
다른 학생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학생의 성적이
곧 나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서글픈 감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시험 전
부정행위 관련 교육은
점점 더 촘촘해졌다.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한 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학교 풍경을 기록하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돌아보면
교사와 학생 중 어느 쪽이 더 힘드냐고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시험 기간은
언제나 학생이 더 힘들었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의
대표적인 기억은
각양각색의 시험지 양식이다.
글자 포인트 하나만 달라도
반려되는 요즘 시험지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대부분의 교사들은
시험 문제를
자필로 출제했다.
과목마다
편집도, 글씨체도
제각각이었다.
시험지를 보면
출제 교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씨체로 성격을 짐작했고
줄 간격으로 난이도를 예측했다.
악필인 교사의 시험 시간에는
문제를 푸는 것보다
문제를 읽는 게
더 어려웠다.
가끔 타자기로 찍어낸 시험지는
유독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고
극소수의 얼리어답터 교사들은
‘한글’ 프로그램이 낯설던 시절에도
유난히 정갈한 시험지를
내놓았다.
그 종이 한 장에는
그 시대의 기술과
교실의 온도가
함께 찍혀 있었다.
그 시절
기출문제는 귀했다.
요즘처럼
시험 문제가 모두 공개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기출문제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선배에게서 몇 장 얻어낸
기출문제는
보물처럼 다뤄졌다.
대학 시절 시험 자료를
‘족보’라 불렀다면
고등학교 시절 기출문제는
그보다 한 단계 위였다.
지방문화재와 국보의 차이라고 하면
과장이려나.
몇몇 선생님들은
작년 기출문제를
거의 그대로 내기도 했으니까.
답안지도 요즘과 달랐다.
OMR카드는 귀해서
모의고사 때나
구경할 수 있었고
보통은 시험지 아래 여백을 잘라
답안지로 썼다.
자르다 찢어 먹은 답안지 때문에
혼나는 일도 흔했다.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는 날에는
시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멘털이 반쯤 나갔다.
혼이 난 채
시무룩한 얼굴로
시험지를 들여다보던
아이들도 많았다.
시험 시간에
아이들을 혼낸다는 건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시험 자체도 힘들었지만
시험 기간의 여건도
녹록지 않았다.
연휴를 끼고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많아
마음 편한 휴일을
보내기 어려웠다.
시험 기간에
교사 단합대회가
열리던 시절도 있었다.
배구가 거의 국룰이었다.
다음 날 시험을 앞둔
학생들 눈에
체육관의 열기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지금은 그런 장면도
거의 사라졌다.
시험 기간에
회식조차 잘 잡지 않는다.
개인주의가 강해진
교직 사회의 변화이기도 하다.
시험 기간을 둘러싼
학교의 얼굴은
분명 많이 달라졌다.
규정은 더 촘촘해졌고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그대로다.
시험을 앞두고 느끼는
아이들의 긴장과 부담,
시험이 끝났을 때의 허탈함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시험 기간의 학교는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조용하지만 팽팽하고,
긴장돼 있지만
어디선가 본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