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풍경] 성문종합, 정석의 시대는 정말 끝났을까?

by 영애비

"영어는 성문종합, 수학은 정석 아니었어?!"


고등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친구 자녀의 학업 상담을 해 줄 일이 종종 있다.

말이 좋아 학업 상담이지
술 한 잔 마시기 위한 핑계라는 건
친구도 알고 나도 안다.

물론 친구 아내도 알고,
우리 아내는 더 잘 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마음으로
학업 상담에 임하곤 한다.


우리 친구들은 대부분 자습으로 공부했다.
요즘 말로 하면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이다.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시골 출신이라
주변에 학원도 거의 없었고
과외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공부를 하려면
혼자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 못마땅해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얼마 전
자녀 학원 문제로
집안이 난리가 났다는 친구 녀석은
집에서 아무도 자기편이 없다고
섭섭해한다.


“야~ 영어는 성문종합 보고
수학은 정석 보면 끝나는 거 아이라?”

“왜 또? 이번에는 뭐가 문젠데?
너네 집은 어떻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나?”

“아니 애들이 하도
과외니 학원이니 해서
우리 때 얘기를 좀 했지.

정말 성문종합이랑 정석 보면
안 되는 거라?
우리 그것만 보고도 잘했잖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좀 답답해진다.

30년 전 공부 잣대를
자녀에게 그대로 들이댈 정도로
삶의 여유가 없는
50대 친구 사정도 이해가 되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하는
아빠가 답답한
친구 자녀 마음도 이해가 된다.

서로의 경험치가 다르다 보니
대화는 늘 같은 결론으로 흐른다.

“요즘 애들은 안 돼.”
“아빠가 뭘 알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멀리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고 생각한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는
친구의 말이 맞다.

성문종합 하나,
정석 한 권 붙들고
버텨낸 경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 기준을
그대로 자녀에게 들이대는 순간
그 말은 틀리게 된다.


그들 세대는
그렇게 공부해 본 적이 없다.

혼자 책을 붙잡고
길을 찾아가는 방식 자체가
이미 낯선 세대다.


요즘 아이들이
학습에 더 수동적으로 보이고
학원이나 인강에
의존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게으르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짜준 커리큘럼 안에서
배우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틀린 게 아니다.

단지 기준이 다를 뿐이다.


우리 세대에게는
능동적이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그들 기준에서는
이미 최적화된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효율성으로만 따지자면
요즘 아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훨씬 좋은 공부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을
서로의 잣대로만
재단하려는 태도다.


“난 니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 안 한다.”

“그럼 왜 안 된다는 건데?”

“우리 자식들은
우리처럼 공부 못한다.”

“왜 못하는데?
우리는 다 했잖아?”

“임마, 우리도 지금처럼
도움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그렇게 안 했을 거다.

그리고 니 계속 고집부리면
딸이랑 사이 더 멀어진다.
명심해라.”


예전에는
동네에서 학교 선생님이
가장 유식한 사람이었다.

선생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떤 선생님이 그랬다더라”
한마디면
이야기는 끝났다.

선생님은
살아 있는 네이버였고
구글이었다.

지식의 창구가
하나였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교사 외에도
학습 자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차고 넘친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습을 돕는 자료가 너무 많아
오히려 학습을 방해하는 곳이
오늘날의 학교가 되어 버렸다.


“어떤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 좋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나는 대개 이렇게 답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준비하는 입시 유형,
개인의 성향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을
부모가 대신해 주는 건
바람직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기회가 아니라,
조금 덜 복잡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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