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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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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당
Sep 21. 2021
형님과 나누어 마련하는 추석 제수는 모레 장만키로 하고 모처럼 날씨 좋은 일요일 아침 아내와 함께 화왕산으로 차를 몰았다.
이제 명절 관습의 스트레스를 떠나 부부간 불화하지 않는 생각, 마음으로 음식도 단출한 방향으로 정하였다.
신문을 보니 퇴계 선생 종갓집도 추석 차례는 없고, 지난 설 차례 때 3인으로 모시는 등 코로나로 관혼상제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제사는 미풍양속인데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힘든 형식보다 간소화로 가족 갈등을 없애는 게 더욱 좋으련만!
일어나자마자 즉석밥에 반찬을 준비해 창녕으로 출발했다
오늘 산행에 대비해 어제 고기를 조금 먹었으니 체력도 보충되었다.
진영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니 은은한 안데스 전통의 목관악기로 버스킹 연주를
하고 있다. 벤치로 가 앉아서 오랫동안 멍 때리며 감상을
했다.
옆의 정자에는 때때옷을 입은 여자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라면을 끓여먹는 가족들이 보이고 나무에는 감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명절을 앞두고 산행을 하는 여유로움 같지만, 마치 고향을 잃은 가족이 없는 사람처럼 허전하고
텅 빈 마음이 스스로 들기도 하다.
화왕산 매표소를 지나 도성암 아래 주차를 하고 산 초입에 들어서니 산사의 염불과 시냇물 소리, 철이 지난 매미 울음소리가 내 귀를 깨우고 있다.
송이버섯 양생 지역인 소나무 숲에서 피톤치드가 가득 흘러나오고 산길에 코스모스와 꽃무릇 화원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자하곡 2번 코스의
서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예전에 두어 번 올랐던 코스와는 다른 방향으로 짐작된다.
명절을 앞두고 사람이 적어 고요하다. 오르막 경사길에 자주 쉬고 먹고 마시고를 몇 번 반복해 오른다.
어느 정도 오르니 자하곡 골짜기 너머 창녕읍이 보이고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눈이 부시게 맑다.
어느덧 많이 오른 듯 생각하는데 아직 '환장 고개'라고 표시판이 있다. 막바지 급경사 고개를 숨차게 오르며 환장하는 길이란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아내와 생각이 달라 며칠 전에는 크게 다투었다.
30년 이상을 함께 하면서도 생각의 간극을 좁힐 수 없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급경사의 숨이 차는 것보다, 마음과 생각의 답답함으로 이 환장 고개를 갈등의 당사자가 함께 넘어가고 있다.
나이 들수록 몸은 불편하더라도 마음 편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 진리처럼 다가온다.
아직 명절이 며칠 남았으니 그건 그때 생각하고 오늘은 즐거운 산행에 몰두하리라. 생각의 연좌제를 끊고 매 각각의 건별로 생각을 처리하리라.
마침내 서문에 도착하니 하얀 억새가 장관이다.
억새는 산 정상을 마치 메밀꽃이나 이팝나무처럼 하얗게 뒤덮었고 바람에 하늘거린다.
늘 보았던 스러져가는 쓸쓸한 갈색의 상징이 아닌 새파란 가지에서 흰 꽃을 피어내는 젊고 억센 생명의 향연이다. 아직은 '
으악새 슬피 우니~'가
아
닌 활력이 넘치는 흰 깃발의 함성들이다.
어떤 산이던 정상에 힘들게 오르면 희열을 느낀다. 더욱 볼거리가 많으면 그 감정은 더하리라.
화왕산성에 처음 오른 아내도 이렇게 좋은 곳이 없다며 감탄을 한다. 큰 아이를 못 데리고 온걸 아쉬워한다.
올 가을에 이렇게 넓은 억새밭이 있는 영축산 정상에서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그 멋진 평원을 밟으리라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곳은 천 미터가 넘는 산이라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 키를 넘는 억새밭 숲길을 헤치며 동문으로 가는 길은 환상적이다. 저 아래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식수였던 검고 작은 연못이 신비스럽게 보인다.
동문의 산성 밖으로 나가 허준 세트장을 구경하였다. 많은 역사드라마가 이 세트장과 주변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단다.
반대편 옥천계곡에서 타고 온 따릉이 팀들이 많이 보인다. 그 길은 완만한가 보다.
동문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산성길도 멋지다. 억새 숲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오르는 풍경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오래전 정월 대보름 달집 태우기 때 일어난 불의 참사가 떠오르지만 억새의 군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서문 안 잔디 위에 자리를 펴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김치와 계란말이 외 전복구이도 맛이 있다. 커피를 마신 후 자하곡 2코스로 내려와 원점 회귀하였다.
시간이 많아 창녕 8경을 보니 우포늪과 관룡사 등이 눈에 띈다.
우포늪의 석양이 멋지다고 하나 지금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아 볼 수가 없어 우리는 차를 관룡사로 향하였다.
우리가 올랐던 화왕산 자하계곡의 대척 지점으로 뒤돌아가니 옥천계곡의 위치에 절이 보인다.
절 앞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기 상금이 친구를 만났다. 딸과 함께 절과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가는 길이란다.
서로 마스크를 하여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친구가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아마도 흰머리에 키 작고 변함없는 내 모습이 어디 가겠는가!
관룡사는 절을 지을 때 화왕산 정상 연못에서 승천하는 용을 보았다고 이름을 지은 것이라며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한다.
절 위에 있다는 용선대 석불은 보지 못하고 부산으로 차를 몰았다.
몇 번 와 신세를 진 성언 친구에게는 안부 전화도 못하였다. 그도 지금쯤 아들 딸과 손주를 맞이할 준비로 바쁠 것이다.
국도로 귀가하며 길 옆 예쁜 코스모스, 여물게 익어가는 들판도 곧 황금빛으로 변해갈 듯하다.
이 좋은 가을의 풍경이 쉬 지나가지 못하게 부지런히 마음껏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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