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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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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당
Oct 17. 2021
지난번 화왕산성의 싱싱한 억새 풍경에 아내와 나는 깊은 감동을 먹었다.
우리는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또 다른 억새숲을 구경하기 위하여, 영취산과 신불산, 신불재 등을 가보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십여 년
전 나는 영취산을 두 번 올랐던 적이 있는데, 멋진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 번
은 깊은 가을날 산행 사부들을 따라 통도사에서 영취산으로 올랐는데 힘겨웠던 기억도 또렷하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신불재 쪽 그 멋진 평원을 잊을 수가 없다.
하늘에 맞닿은 고원을 내려다보며 먹었던 점심과 반주는 내 생애 최고의 맛이었다. 신불재로 내려오면서 보았던 광활한 억새풀의 향연은
내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싶은 풍경으로 남아있다.
함께 산행을 이끌어준 친구들을 사부로 대접하며 작은 경외감이
싹트게 된 것도 이때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한 번은 정월 대보름날 고향의 중학교 동문산악회에서 영취산을 오르는데 친구 BT가 다리에 쥐가 나서 정상을 코앞에 두고 단 둘이서 포기를 하고 하산을 했다.
마침 하북면 달집 태우기 행사에 어울려 막걸리에 고기 수육 등을 대접받고 흥겹게 잘 놀았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 대보름날 정취와 인심을 오랜만에 실감해 본 날이기도 했다.
이렇듯 통도사 뒷 길로 오르는 영취산은 정상까지가 꽤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신불재를 간다면, 영취산 루트는 배제하고
언양 쪽에서 신불산을 오르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였지만 이 또한 가보지 못한 길이라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지난봄 아내와 나는 배내 1 주차장에서 배내봉과 간월산 정상을 올라갔지만 아래 간월재까지 내려가지를 못했다.
따라서 오늘은 신불재, 간월재 두 곳 중에 일단 차를
타고 가며 정하기로 했다.
아직은 산행 실력이 초보에 가까운 아내를 대동하니 더욱 조심이 된다.
더구나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도
토요일인 오늘 아침에 기어코 도시락을 준비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아내는 스스로 컨디션이 염려된다며 간월재만 보고 오자고 한다. 인터넷으로 본 답사기를 참고하여 내비를
배내 2 주차장으로 쳤다.
일단 오늘의 목표는 임도 왕복 3시간의 간월재이다. 거기서 여력이 된다면 신불산 정상까지 가보기로 머릿속으로 계획을 잡았지만 어려울 것이다.
천 미
터 급의 고봉을 쉽게 생각할 수 없다.
나 또
한 산행 고수가 아니라 아직도 힘들지 않은 피크닉 같은 산들이 더 좋아서 아내의 오늘 결정이 마음속으로 기뻤다.
9시쯤 도착했는데
배내 2 주차장은 벌써 만차가 되어 길가로 줄을 세워 주차했다.
여기서 간월재까지 편하고 넓은 임도로 6km 남짓이란다. 산보 삼아 가을 억새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배낭을
메지 않은 젊은 남녀들과 아이를 대동한 가족팀 등 많은 인파가 산길을 따라 걸어간다.
울긋불긋 등산복이 아닌 간편복과 신발을 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삶의 활력이 느껴진다.
이렇게 밝고 행복해 보이는 젊은 부부와 아이, 가족 나들이가 많은데, 세계 제1의
저출산 국가라니 믿기지 않는다.
세상이 얼마나 어려우면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
몸에 꽉 끼는 레깅스를 편하게 입고 산을 오르는 여성도 몇몇 보인다. 내 눈에 오히려 그 위에 반바지라도 걸친다면 훨씬 패션이 세련되게 보이리라 생각되지만,
나는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이리라!
조금 더 올라가니 차에 아이스케끼를 싣고 와 팔기도 한다. 더운 날이라 장사가 된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마침내 억새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양쪽으로 간월산과 신불산을 오르는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상북면의 누런 들판이 환희 내려다 보이고 영남알프스의 관문이라는 표지판이 어울린다.
그런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은빛의 억새가 바람에 휘날리는 풍경은 최고의 장관이지만 아이들은 서서 버티기 힘들 정도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이다.
바람도 쉬어감이 없는 간월재 휴게소인가 보다. 모두가 바람을 피해 건물 뒤 담벼락과 둔덕 아래에서 햇살을 쪼이거나 컵라면과 김밥 등을 먹고 있다.
지난번 화왕산성의 싱싱한 억새와 달리 출렁이는 은빛 물결이
왠지 나의 흰머리와 쓸쓸하게 닮아져 있다. 내 삶의 가을도 왔음을 실감하면서 혹독한 겨울의 메마른 나목과 눈 덮인 설산의 풍경을 떠올린다.
억새숲 끝 지점에서 신불산 능선을 오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대략 1.6km의 거리라고 하니 몸을 튼튼히 만들어 올해 안에 아내와 함께 정상을 지나 신불재를 구경해보리라 기대해 본다.
우리는 바람을 헤치며 억새
숲 속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온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마침 길 옆 사람 없는 빈 벤치에 자리를 잡아 도시락을 먹었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숲 속에서 먹는 점심은 최고의 성찬이다.
야생 들국화가 드물게 핀 길 옆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밥맛을 더해준다.
아내는 등산 파트너로 최상이다. 이렇게 편하고 익숙한 친구가 또 어디 있겠는가!
도시락을 준비해 주고, 술도 강권하지 않고 내가 일부러 말을 붙이거나 대답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으며, 내가 힘들게 따라가지 않으며 걸음 속도를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이 좋은 산행 파트너가 최근에 소화불량과 어지럼증으로 힘들어한다. 병원도 가보고 최근 자주
못 간 온천천과 성지곡을 걸어며 컨디션을 회복해 주어야겠다.
올 가을은 욕심부리지 않고, 먼 곳보다 근교의 억새와 단풍을 즐겁게 둘러보겠다.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원동으로 향하니 처음 보는
배내 IC가 보인다. 근래 개통한 '함양-울산' 고속도로인가 보다.
신불산 터널을 지나니 곧바로
통도사 lC로 연결되어 빠르게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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