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업무 정도에 무슨 청심환까지? 할 수도 있다.
말만 조교였다.
이 수업은 전공선택과목 중 하나로, 실험과목이었다.
실험으로만 구성된 이 과목에 교수님은 첫 수업 5분만 들어오신다.
그 5분은 수업을 실제로 진행하는 우리들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개되고 15주간의 수업을 진행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항상 매년 정해진 실험을 주제로 2학기 석사과정생들이 진행하고 있는 수업이다.
참고로 나는 80%의 I… 극내향 인간이다.
손들고 발표하는 거도 꺼려하던 내가 40명 앞에서 수업이라니
처음에는 생각만 해도 긴장되고 토할 거 같았다.
그렇게 첫 수업에 청심환을 태어나서 처음 먹었다.
크게 효과는 없더라…
나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그 눈빛들..
1학년동안 지루한 일반교양 과목들을 주야장천 듣다가
드디어 전공 첫 실험수업을 하는 2학년들의 눈빛은 너무나 초롱초롱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학부 2학년 이 수업을 들을 때 가장 기대되기도 했다.
대학 수준의 실험을 나도 드디어 하는구나…!라는 설렘이랄까?
그때 이 수업을 진행한 선배가 너무 멋져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 지금 내가…?
그 수업에는 장기휴학 했던 동기들도 몇몇 있었다.
같이 입학한 동기들 앞에 서려니 민망해서 더 긴장되었다.
아무튼 하고 싶지 않던 수업을 매주 진행하면서
나중에는 기계처럼 수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강의력은 조금 오른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수업은 실험 수업인 만큼
학부생들은 그 주 실험주제에 대하여
전 주에는 예비 실험보고서, 실험 후에는 결과 실험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건 내가 학부생일 때도 너무 귀찮았다.
학부생인 우리는 이 수업만 실험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매일같이 실험보고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과는 복사 붙여 넣기, 돌려 막기 방지를 위한 명목으로
모든 실험수업들이 노트에 볼펜으로 작성해야 했다.
너어어어무 귀찮았다.
석사가 되어 조교가 되고 보니
이걸 다 채점하고 피드백하기 너어어어무 귀찮았다ㅎ
채점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학부생들이 나름 머리 굴려 베끼거나 잘못된 정보를 작성한 건 바로바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새삼 신기했다.
참고로 위의 이야기들은 2020년도 이전의 얘기다.
지금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랩실에서는 내가 연구조교로 수업을 진행할 일은 거의 없었다.
수료 이후에 한 번 교수님 대신 이론수업 대타 들어간 경험뿐이다.
(오랜만에 수업하려니 그때도 떨려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확실히 다른 건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필수템으로 노트북, 태블릿을 들고 다닌다는 것.
음… 내가 학부생, 석사 때는 찐 노트필기가 대다수였던 때였다(2020년도 이전이다).
물론 태블릿 등을 들고 다니기 했지만 분명 주류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전 학교 가는 마을버스에서 학부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의 대화에서 난 새삼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다.
“다른 ai는 그 과제 안 뚫리는데 grok은 되더라”
통계학과 학생들로 추정되는 학생들의 대화였다.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 과제일까…?
내 주변에 빠르게 졸업한 친구 중에는 대학교수나 강사활동을 이미 시작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요즘 고충은
‘과제에서 이런 생성형 ai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해줘야 할까…?’
이게 최대 고민 중 하나라고 한다.
요즘 세상에 ai를 얼마나 활용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활용하기 전, 지식의 습득과정이 생략되고 있는 지금 현실에
어떻게 가르쳐 나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기한 건 학생들의 실력이 더욱더 양극화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고민은 당장 지금 나도 후배들을 가르칠 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교육자, 지도자들이 이를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나도 배워가는 과정에 있지만, 가끔 교육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향후 어떠한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현 상황과 고충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브릭, 하이브레인넷, 김박사 등등 대학원생, 연구직종을 중심으로 형성된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해당 커뮤니티도 물론 좋지만,
이곳은 온라인의 ‘익명성’이란 단점도 너무나 명확한 곳이기도 하다.
좀 더 편하게 그리고 ‘건강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요즘 많이 하는 독서클럽처럼
줌이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건강한 의견공유의 장이 이 분야에서도 활발해지면 좋겠다.
(혹시 나 모르게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 알려주세요.)
아무튼 연구조교 시절을 생각하며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배우는 과정 중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보며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대학원 생활이다.
연구조교 활동은 아마 대학원생들은 거의 경험하게 되는 활용일 것이다.
그 활동을 하는 동안은 아마 너무 정신없고 하기 싫겠지만
모두 파이팅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이런 경험을 통해 힘들었던 적이 있다면
여기에서라도 털어놓고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