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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귤-10

by 디오소리

껍질을 벗기면 손끝에 남는 향처럼,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작은 문장 하나쯤 건네고 싶어서요.

그 사이 계절이 한 바퀴를 돌고, 제 곁에는 ‘귤’을 함께 까 먹어 준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힘들었던 날에 “오늘도 귤 한 쪽 잘 먹었다”고 말해 주신 분들, 조용히 읽고 가끔씩만 마음을 보여 주신 분들까지, 모두 고맙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와 여러분이 함께 깎아 온 한 봉지의 끝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인사를 쓰는 오늘, 멀리 홍콩에서 들려온 소식 때문에 한동안 키보드를 잡지 못했습니다.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큰 화재가 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며칠 사이 사망자가 140명을 훌쩍 넘었고, 아직도 실종자와 유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건물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뉴스 화면에 비친 건 까맣게 그을린 건물과, 하얀 꽃을 들고 선 사람들의 뒷모습뿐이었지만...
그 안에는 집, 가족, 일상, 꿈, 내일의 계획처럼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있었겠지요.

그래서 오늘의 마지막 귤은, 저만을 위한 안부가 아니라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을 향한 작은 애도의 표시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화면을 통해 먼 도시의 참사를 스쳐 지나갈 수도 있지만
잠깐이라도 발걸음을 멈추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마음속에서 촛불 하나쯤 켤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부디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붙잡고 버틸 힘을 얻기를.”
짧은 기도 한 줄이라도요.


귤 한 조각은 작지만, 그것을 나누는 마음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닿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제 책상 위에 놓인 마지막 귤은 홍콩을 향한 애도의 마음으로,
그리고 이 연재를 끝까지 함께해 준 당신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천천히 나누어 먹을게요.


이제 귤시리즈는 여기서 조용히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눴던 문장들과, 당신의 하루 속에 잠깐 비쳤던 귤빛은 각자의 삶 속에서 계속 다른 모양의 빛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멀리 홍콩의 밤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오늘을 함께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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