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빛 매듭

아흐레의 매립

by 도이진

아흐레의 매립


소파에 거꾸로 앉아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고,

하루속히 벗고 싶었던 껍질을 벗겨낸다.


영원한 기억은 없고, 영원한 관계는 더더욱 없다.

영원할 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애쓰지는 않았을 터.

나는 닳기보다, 매립을 선택했다.


하답스럽게 무언가를 내밀어 보던 순간들도

이제는 분노에 치밀지 않는 순간들로 변화하였나.


관계의 변화에 대해 애써 통제하지도,

그렇다고 자력 구제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는 순간을 지켜본다.


아흐레의 기억 속, 장면들이 되감기듯 스쳐가고

그 파노라마를 자족하듯 바라보며,

지나간 것들의 연장선에서 결핍의 구원성을 살펴본다.


모든 마찰음을 계속 거둘 필요 없음을

이 계절은 알려준다.


남길 것과 놓을 것을 옥석 보듯 가려본다.


이제껏 외면과 멀어짐만이 답인 줄만 알았던 나에게, 덮어두는 것도 방법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단하다.


매립이라는 단어에

소원해지지 않아야 함을 다짐해 본다.


*깨단하다
오랫동안 생각해 내지 못하던 일 따위를 어떠한 실마리로 말미암아 깨닫거나 분명히 알다.



©도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