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없을 때, 왕이 된 자들”
어느 날, 교토 궁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창밖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황궁 안엔 향 냄새가 그윽했지만…
나라의 중심은 비어 있었습니다.
왕은 계셨죠.
천황은 교토에 그대로 앉아 계셨고,
쇼군도 존재는 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다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1477년,
10년에 걸친 오닌의 난이 끝났습니다.
“누가 이긴 겁니까?”
질문에 답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지고, 모두가 불탔습니다.
쇼군은 말만 ‘장군’이었고,
막부는 이름만 ‘정부’였으며,
지방은 이미 조용히 들끓고 있었죠.
지방에서 꿈틀대는 자들
일본 열도 각지엔
수많은 다이묘(大名)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지방의 사장님들.
“네 성은 몇 명 수용되나?”
“우리 병사 훈련은 벌써 활에서 창으로 바꿨지.”
“세금은 본부로 안 보낸 지 오래야.”
그들의 눈빛은 변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요,
“천황폐하 만세~ 쇼군 폐하 영광을~” 하던 신하였어요.
말도 곱게 하고, 인사도 예의 바르고, 예법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느끼기 시작한 균열
“쇼군님… 괜찮으십니까?”
“응…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게 해 줘…”
막부가 힘을 잃고,
쇼군이 입만 살아 있는 허수아비가 되자,
다이묘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중앙정부는 실종 상태야.”
“이제 우리 지역은, 우리 손으로 지켜야겠어.”
아니, 지킨다는 말이 예쁘게 포장한 거고,
속내는 달랐습니다.
“기회다.”
“이젠 우리도 왕 해보자.”
가면을 벗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이묘는
쇼군이 임명한 지방관리였어요.
한 마디로 ‘지점장’.
근데 본사가 멈췄어요.
지점장들이 이때 외칩니다.
“지점장이고 뭐고, 이젠 내가 본사다!”
“나는 이제 이 땅의 주인이다!”
하나둘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사력 강화: 병사 모집, 훈련, 화약 무기 확보
성곽 요새화: 나무 성에서 돌 성으로, 해자(도랑), 망루 설치
독립 과세: 세금은 쇼군에게 안 보냅니다. 자기 금고로 바로 입금
법령 제정: 다이묘 이름으로 법을 만들고, 재판까지 직접 합니다
이젠 성이 수도고,
자기 가문이 국회고,
무사는 외교부고,
농민은 조용히 세금 내는 국민이었습니다.
무너진 관계, 찢어진 가족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인간관계가 무너진 겁니다.
사돈도 이젠 적입니다.
장인어른도 땅 문제 생기면 싸웁니다.
형제끼리도 성벽 사이에서 활을 겨눕니다.
그야말로 "욕망이 도덕을 찢어발긴 시대"였어요.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
일본은 이제 하나의 나라가 아닙니다.
성마다 왕이 있고,
가문마다 헌법이 있는 작은 왕국이 된 겁니다.
“도카이 지방? 거긴 다케다가 있어요.”
“규슈는 시마즈 땅이죠.”
“주고쿠는 모리가 먹었고요.”
“호조는 간토 지역 꽉 잡고 있습니다.”
막부?
그냥 도쿄 한복판에 현판만 걸려 있는 상태.
‘중앙’은 이름뿐인 시대.
질서가 없을 때, 질서를 만드는 자들
이제부터 싸움은 단순한 영토 전쟁이 아닙니다.
이 싸움은 “누가 법이 될 것인가”,
“누가 세상을 다시 만들 것인가”의 싸움이었어요.
그 한가운데서,
다이묘들은
자신만의 법, 전쟁, 정의, 권력, 문화를 세우기 시작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