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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 피로 물들다(1)

by 다다미 위 해설자

간토지방 편: 칼 없이 땅을 먹은 자, 호조씨 이야기


일본 전국시대 하면 뭐부터 떠오르세요?


불타는 성, 칼 휘두르는 무사,

붉은 깃발, 화살비처럼 쏟아지는 전투 장면.

그렇죠, 딱 그런 거요.


근데 말입니다.

그 전국시대 한복판에서,

칼도 안 쓰고, 전쟁도 안 하고,

그런데 조용히, 확실하게 영토를 넓힌 가문이 있었습니다.


누구냐고요?


바로 간토의 호조 가문입니다.

이 사람들요… 진짜 정치로 땅을 먹었어요.



"싸우지 않는다. 대신 성을 짓는다."


지금의 도쿄 근처,

간토 평야 한복판에 호조는 성을 짓습니다.


근데 그 성이 평범한 성이 아니에요.


여러분 성이라 하면

높은 벽, 큰 망루, 창 들고 지키는 병사들 떠오르죠?


근데 호조의 성은 달랐습니다.


안에 시장이 있어요.


창고가 있어요.


우물이 있고,


심지어 회의실까지 있어요.


즉, 이건 군사기지가 아니라 행정 도시였어요.

작은 수도, 작지만 강한 본사였죠.


그게 바로 오다와라 성(小田原城).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성 하나 무너뜨리려고 20만 대군을 끌고 올 정도였습니다.


"칼로 백성을 다스릴 수는 없다. 법으로 다스려야지."


호조는 땅을 얻기 전에 먼저 법부터 정비합니다.


전국시대는 남들은 전쟁의 시대라 불렀지만,

호조는 이 시기를 ‘행정의 황금기’로 만들었어요.


도둑질? → 곡식 몰수.


이웃 논에 물 넘기면? → 벌금.


세금? → 농사 기준으로 일정하게.


관리가 세금 빼돌리면? → 가문 자체가 벌을 받습니다.


이 법들을 책으로 만들어

각 마을마다 뿌립니다.


“법령집”을 무기로 삼은 거죠.

칼이 아니라 종이로 세상을 바꿉니다.


"쌀이 나라다. 농사는 국방이다."


호조가 두 번째로 한 건 농지 개혁.


논을 다시 나눠요.


수로를 팝니다.


물이 안 오면 다른 논에서 돌려줍니다.


마른땅도 다시 살립니다.


왜요?


쌀이 무기거든요.


쌀이 많으면 군대가 돌아가고,

백성이 배부르면 반란이 안 납니다.

세금도 자연스레 걷혀요.


이걸 호조는 진작에 깨닫고 있었던 거죠.


"칼보다 쌀이 세다."

이 말이 그냥 은유가 아니라, 현실 전략이었습니다.


"백성은 말 안 듣는 존재가 아니라, 말을 들어야 할 존재다."


호조가 진짜 무서운 건 이다음입니다.


민심 관리.


마을에 굶주리는 백성이 있으면?

창고에서 곡물 풀어요.


병든 노인이 있으면?

약초 나눠줍니다.


마을 촌장이랑 회의도 자주 하고요.


심지어 반란 조짐이 보이면

먼저 찾아가서 “왜 그런 마음이 드셨소?” 묻습니다.


이게 무슨 느낌이냐면요,

‘백성과 소통하는 다이묘’ 예요.


전국시대요?

다이묘들이 피 튀기며 싸우던 시대 맞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 호조는

“나는 내 백성과 싸우지 않는다”를 실천한 가문이었어요.


"성 하나로 시작해서, 전쟁 없이 나라가 되다"


처음에는 성 하나였습니다.

근데 몇 년 만에


성 열 개.


마을 수십 개.


땅은 수십 리.


그리고 그 전부,

칼 한 번 안 쓰고 얻었어요.


다른 다이묘들이

500명 죽이고 땅 하나 먹을 때,

호조는 세금제도 하나 바꿔서 5,000명 복속시킵니다.


그게 바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호조는 그걸 증명한 가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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