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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밤, 일본 편의점에서 존중을 배웠다

by 다다미 위 해설자

솔직히 말하자.

나는 편의점에선 빨리 사서 빨리 나가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삼각김밥이랑 캔커피 들고

삑– 찍고

카드 퉁– 긁고

문 열고 딱 나오는 그 속도감.


그게 편의점이지, 무슨 정찬 식당도 아니고.


근데 그날,

일본의 조용한 밤과 조용한 편의점 앞에서

내 사고방식은 잠시 정지당했다.



카레빵이랑 우유 하나 들고 줄을 섰다.

앞에 손님은 단 두 명.

'이거 30초 컷이지' 싶었는데…

5분이 지나도 내 차례가 안 오는 거다.


뭐지? 하고 봤더니,

직원은 마치 연극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물건 하나 꺼내고,

고개 숙이고,

손에 건네고,

도장을 콩콩 찍고,

영수증을 접어서 두 손에 담아 건넨다.


그 사이 손님도 계속 “도모~” “오세와니 나리마스~” 하며

감사 인사 스탠딩 오베이션.


나는 그 뒤에서

‘내가 지금 기다리는 게 계산이야, 예식이야’ 싶었다.



한국 편의점은 이제

계산대 대신 기계랑 눈 마주치는 시대잖아.

물건 사고 사람 안 보고 나올 수 있어.

편하긴 해. 정말 빨라.

근데…

그만큼 무미건조하긴 하지.


근데 일본 편의점은 아직도

정중하게, 하나하나 손으로 한다.

속 터질 만큼 천천히.


근데 이상하지?

그 천천함에

묘하게 위로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건 느린 게 아니라

'정중한' 거였다.


한국은

‘다음 손님을 기다리게 하면 미안한 마음’이 기본값이고,

일본은

‘지금 이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실례’라는 마인드다.


그러니까 계산대도 달라지는 거다.

효율 vs 예의.

속도 vs 순서.


그날 나는 편의점에서 물건보다

사고방식의 온도 차를 산 셈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

점원이 눈을 맞추고 고개 숙이며 말했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내가 산 건

카레빵 하나, 우유 하나였는데

그 말 한마디에

내 존재도 하나 산 기분.


작은 계산대 위에

정중함, 인내, 배려, 그리고 나를 위한 시간이 놓여 있었다



빠름 빠름 빠름의 나라,

효율의 민족 한국 사람인 나는

일본 편의점에서

잠시 정중한 속도에 머리를 조아렸다.


불편했냐고?

처음엔 그랬지.

근데 이상하게…

그게 좀 좋더라.


지금도 편의점에 갈 때면 가끔 생각난다.

그 일본 점원의 두 손,

천천히 찍히던 도장,

그리고 정중했던 "감사합니다"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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