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본열도, 피로 물들다(4)

by 다다미 위 해설자

모리 가문, 바다 위에 나라를 세우다


전국시대 다이묘라고 하면

다들 산 위에 성 짓고,

평야에 군사 깔고,

말 타고 돌격하는 그 그림 떠오르시죠?


근데 말입니다…

일본의 서쪽,

바다와 강이 엮인 주고쿠(中国) 지방에선

그 공식이 안 통했어요.


산은 가파르고, 땅은 좁고,

길은 없고… 대신 강과 바다만 있어요.


그래서 모리 가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칼로는 산을 못 자른다.

하지만 배는 산을 돌아간다.”


“배 위에서 싸우는 무사들”


모리는 육군보다 해군을 먼저 키웠습니다.


병사도 배 위에서 훈련시키고,


무기도 물 위에서 쓰게 만들고,


성도 항구 옆에 짓고,


요새도 강 입구에 세워요.


한 마디로 바다 위에 군사 도시를 만든 자들입니다.


“우리는 강을 타고 진군한다.”

“우리는 수로를 타고 병력을 실어 나른다.”


산 넘을 필요 없어요.

배에 실어서 직행입니다.


“강을 통제하면 땅을 통제한다”


육지는 성 하나 먹으려면 몇 달이 걸려요.

하지만 수로를 장악하면요?


보급이 쉽고,


이동이 빠르고,


포위가 간단합니다.


모리 가문은 이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작은 섬 하나에도

작은 성 하나씩 세워둡니다.

바다 위에 점을 찍듯이 성을 박아요.


강 입구엔 감시 요새


섬 위엔 보급 기지


바닷길엔 초소 배치


이게 전부 연결되면 어떻게 되느냐?


“바다 위에 국경선이 생깁니다.”


“우리 땅은 파도고, 우리 길은 수로다”


모리는 싸움도 다르게 해요.


말이 아니라 노로,

칼이 아니라 대포로,

기습이 아니라 상륙전으로 싸웁니다.


특히 섬 사이에 포진지를 설치해서

다른 가문들이 접근도 못 하게 만들어요.


“산은 방어용이지만,

바다는 지배용이다.”


이 철학을 실현한 게

바로 모리 가문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인정한 해상력


나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 통일하려고 군사 움직일 때,

가장 먼저 한 게 뭐였는지 아십니까?


모리 해군을 회유하는 것.


왜냐?

“이 자들 바다 틀어막으면,

우린 육지에 갇힌다.”


실제로도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의 절반 이상이

모리 계열이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본열도, 피로 물들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