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자의 가훈을 알게 된 후로 최부자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 논문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업가정신과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블레스오블리주에 관한 것이다. 논문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경주 최부자와 유한양행 유일한 선생에 관하여 많은 자료와 일화를 알게 되어 언젠가는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논문을 어느 친구에게 전하였는 데 내용에 공감하고 우당 이회영 선생과 거상 김만덕을 포함하여 책을 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하여 나의 출간 의지를 굳히게 하였다.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들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사상을 연구하여 10여 년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독립운동이라는 새로운 테마를 추가하여 주관적인 관점에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간에 긴 사유(思惟)를 통해서 현시대에 교훈을 줄 수 있는 공통적인 사상과 가치관을 가진 인물을 선정하게 되었다. 그 인물들은 사회적 지도층에 있기도 아니면 연약한 여인의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기본적으로 인의를 실천하고 자비를 베푼 공덕이다. 다음으로는 국권상 실기에 나라를 구하는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거나 민생을 구제하는 선행을 베풀어 고난의 시대를 밝혔던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인 경주 최부자와 유일한 선생은 기업가로서 독립운동자금을 후원하였고, 이회영 선생과 이상룡 선생은 전재산을 처분하고 가솔들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최일선에 뛰어들었던 인물이다. 나머지 거상 김만덕과 길상화 김영한은 국가가 돌보지 못하는 생계의 사각지대에 있는 극빈계층을 위해 재산 전부를 보시하여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경우이다. 한쪽은 양반 내지 사대부계층으로 사회의 지도층에 있었기에 그들의 자선은 노블레스오블리주가 맞다. 다른 한쪽은 기녀계층으로 사회의 홀대를 극복하고 자수성가하여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기에 노블레스오블리주 보다 더 큰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인물들을 재조명함으로써 고난의 시대에 자신을 희생하였던 그들의 정신을 되살려 다시 암흑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현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고자 하였다. 지금 조국은 분단되어 있고, 남쪽은 경제발전으로 문명의 이기에 의한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부의 양극화와 기득권층의 권력과 명예와 부를 독점하려는 탐욕으로 사회는 병들어 가고 있다. 북쪽은 유일 독재체제에다 공산주의라는 비생산적인 제도로 인권이 억압받고 경제는 파탄이 난 상태이다. 이러한 민족적인 현실에서 일제 강점기에 조국을 되찾고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선각자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국민교육에 반영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그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광복과 민족사랑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후세들에게 민족의 동질성에 대한 의식을 교육시켜 영구분단에 따른 민족혼의 상실을 예방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목적의식으로 그간 머릿속에 그리면서 구상하였던 책을 집필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들의 자취를 찾아서 현장을 답사하고 글로서 듣고 알던 모습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도도히 흐르는 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 그들로부터 파생되는 많은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자취를 찾아 더듬어 가며 공통된 주제인 노블레스오블리주와 독립운동, 민생구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실어 보았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가치관과 내면상태를 나름대로 고찰하여 평면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관과 덕목이 종교는 다르지만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인의와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파생적으로 드러난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의사와 열사들에 대한 용기와 의분을 평가하고 냉전시대의 산물인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버린 그들의 비애를 재평가하여 위무하고자 하였다. 인간의 양심의 자유와 노선의 다양성을 존중하여야 거대한 힘의 결집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모든 힘의 원천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고 불변의 진리인 정의를 위하여 연소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도 하였다.
거상 김만덕과 길상화 김영한은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드러운 정서로 민중을 위무하는 미덕을 실천하였기에 그들이 현세태에 묻고 던지는 의문에 답하려고 하였다. 조선시대의 높은 신분의 벽을 넘어서 그들의 애환을 승화시켜 민생을 구제하고 자신들도 구원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였다. 자식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성의 한계로부터 자유스러운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아우르는 평등심과 자비심을 발산한 어둠 속의 등불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주인공들의 사상과 민족혼을 기초로 하여 따뜻한 인간성을 보태어 후세들에게 교육해야 한다는 명제을 안게 되었다. 그들을 현재의 기득권층과 비교하는 것은 그들의 거룩한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니 오히려 기득권층에게 준엄하게 꾸짖는 경책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황현 선생이 나라가 망했는데 그간 온갖 기득권을 누려온 선비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절명시를 남기고 떠나간 사실은 현세태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단순한 그들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기에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현장기행과 시와 시조를 함께 묶어 적어 나기로 하였다.
역사기행이기도 인물평전이기도 감상문이기도 한 다양한 형태로 꾸며보고자 하였다.
책 제목을 “모든 걸 다 주고 간 사람들”이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적어놓은 글이다. 『버릴 줄 아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다. 모든 것을 얻으려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모든 걸 주고 간다는 건 모두를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무소유의 실천이며 하늘에 대한 보은이며 의무다. 소유의 진정한 의미는 맑은 정신에 의한 깨끗한 재산을 나누는 것이다. 그들은 내 것이라는 게 없다고 자각한 선각자들이다.
자타를 구분 않고 동일시하는 동체대비이다.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요, 남의 즐거움이 나의 즐거움이 이라는 보현보살 행원품을 실천한다. 광수공양이요 수희공덕이다.
버림으로써 인격의 완성이요 깨달음에 이름이다. 선비의 인(仁), 불교의 자비이며 기독교의 사랑이다. 물질적으로 다 버려도 정신적으로 전부를 얻는다.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라는 더불어 사는 숲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조그만 울타리 속에서 살면 공동체는 없고 이기심과 가족주의만 생긴다. 효보다 높은 차원의 충이다. 그들은 진정한 효는 충의의 실천임을 알았다.
보살도는 자비의 실천이다. 두 여인은 보살이다. 가족이 없다. 모성애는 모르지만 보시는 안다. 모성애는 성스럽지만 이기적인 요소가 있다. 보시는 그것을 초월한다. 두 여인은 모성애 대신 보살심으로 승화시켰다. 자녀에게 다 주는 모성애를 뛰어넘어 모든 약한 자를 자녀처럼 여겼다. 대덕보살이다. 무소유는 모든 공덕의 단초요 깨달음의 길이다. 자기의 한을 보시로써 승화시키고 자신을 구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