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8화. 연어

어느 실향민의 아들이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

by 벽운

연어


차가운 북서풍이 봄바람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마음의 문을 열고 있으니 슬며시 문틈을 비집고 도둑처럼 들어왔다. 그 반가운 손님을 무례하게 부르는 건 아무래도 지나친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 약속이란 소식은 서서히 보이지 않게 마음의 통로를 따라 언젠가는 당도할 것이다.

그날은 잊히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었다. 생이별이라고 하기에는 작정하고 하였기에 차라리 장기 출장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날로부터 수많은 밤을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지새우지 않았던가.

“애야, 조심해서 내려가거라. 여기를 떠나야 사는 길이 열리느니라.”

“야, 오마이. 얼른 떠나 있다가 얼른 돌아올게요. 그런데 참......”

모자간에 오간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창호지를 울린다.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피붙이 아들은 서럽다는 듯이 앵앵거렸다. 그날 중으로 삼팔선을 넘었고 곧장 남으로 달려 기차를 탔다. 삼팔선은 있으나 선은 보이지 않았고 말뚝 위에 세워진 이정표가 알려주고 있었다.


이북은 이미 장정들을 의용군이라고 하여 징집하고 있었다. 서른을 넘기지 않은 사람은 붉은 군복을 입어야 했다. 배고픈 사람들은 밥을 반겼고 살만한 사람들은 언짢아했다. 그의 어머니는 다가올 전쟁을 꿈속에서 이미 보았기에 아들을 피신시키기로 하였다. 갈라진 선을 경계로 어느 한쪽이 이기면 끝나게 되니 전쟁은 있지만 분단은 없을 것이라 보았다. 그의 홀어머니는 신심이 깊은 불자였고 금강산 신계사에 자주 시주를 하였다. 남편을 징용에서 잃었기에 외아들만큼은 지키고 말겠다고 부처님전에 맹세하였었다. 그 전쟁은 피를 보게 되어있고 누군가는 죽어야만 했다.


상열은 그의 아버지를 보면 항상 눈물이 나왔다.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니 보이지를 않았지만 서로 돌아서면 여지없이 그랬다. 자기가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아버지가 눈물보를 터트릴 것 같아 꾹 누르고 하늘만 응시하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효자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했다. 분단이 효자를 만들고 눈물샘을 자극하고 애달픈 유행가를 생산해 댔다.

상열은 이린 시절을 남부민동 산복도로를 오르내렸다. 피난민 시절부터 지켜온 판잣집은 지붕만 슬레이트로 바꾸었을 뿐 뼈대는 그대로였다. 그는 송도바다와 영도가 바라보이는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곳은 가난했지만 아름다웠고 비좁지만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바다라는 넓은 정원이 있었다. 그의 중학교 친구 중에는 빤히 바라보이는 영도 함지골에 살고 있는 영태가 있었다.


영태는 상열이와 이유 없이 친해졌고 한 번씩 집에 놀러 가기도 하였다. 자기는 섬에 살고 있지만 상열이는 송도라고하는 섬이름의 동네에 살았다. 남부민동은 어느 지점에서 송도라는 이름과 만나기 때문이었다.

상열이는 아버지를 구해준 성당이 고마왔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것에 대한 보답은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었다. 성당은 배고프고 불쌍한 사람들을 거둬들였다. 한번 들어온 사람은 나가지를 않았고 자꾸 사람들을 끌고 들어왔다.

영태는 절에 나갔지만 교회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보곤 하였다. 그는 종교를 연구하려는 듯 어느 한쪽에 완전히 발을 담그지는 않았다.


전쟁이 터진 그해 부산은 피난민과 임시정부로 터져나갔다. 중앙동 40 계단에는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종이쪽지가 새끼줄에 끼여 있었다. 만날 사람은 만났고 만날 수 없는 사람은 소식이 없었다. 그중에 김씨와 박씨라는 두 명의 이북사람이 이산가족을 찾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찾고 있았다. 두 명은 같은 고향이었던지 우연히 만났던지 함께 다녔다.

부평동 시장통에서 자갈치로 이리저리 다녔지만 넘치는 피난민으로 빈손으로 돌아다녔다. 먼저 박씨는 어느 보살을 만나 선암사로 들어갔다. 꼭 스님상이라는 말을 듣고 배도 고프고 하여 그랬다. 나머지 김씨는 절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북쪽에 두고 온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이 있기에 그랬다. 그는 분명 전쟁은 어느 한쪽이 이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서로는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까지 버텨야 했고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어 인민군은 삼팔선 위로 밀려났지만 전쟁은 끝나지를 않았다. 오히려 휴전협정을 하면서 새로운 삼팔선이 생기느니 마느니 하는 소문이 들려왔다. 김씨는 절망하였고 홀로 남쪽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없기에 절망하였고 새로운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자갈치시장에서 좌판을 하는 할머니의 안내로 성당을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문턱을 들어선 적이 없는 곳이었고 성모 마리아라는 것이 생소하였다. 그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허름하지만 잠자리를 마련해 준 곳은 성당이었다.


그 사람은 성당에서 여인을 만났고 나머지 인생을 함께하는 반려가 되었다. 그 여인을 품게 되는 순간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것처럼 평온했고 새로운 희망이 솟아올랐다. 분단의 시간은 고착화되어 갔고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는 것은 얼음장 같은 평화를 깨게 하는 또 다른 아수라 같은 전쟁이 일어나야 하니 빈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의 안녕을 위해서는 위태하지만 현재와 같은 평화가 필요했다. 그는 당분간 북쪽을 바라보지 않기로 했고 남쪽의 지금과 여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그는 부평동 시장통에서 전쟁통에서 헤어진 박씨라는 사람을 먼발치에서 보았다. 그냥 보기만 하였고 손잡지는 않았다. 그것도 어쨋던 만남이었다. 그는 승복을 입은 박씨의 모습에서 틀림없는 신계사의 스님을 보는 듯했다. 박씨는 선암사에 있었다. 그는 스님의 모습에서 자비와 평온을 읽었고 산속에서의 성당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김씨는 베드로가 되었고 박씨는 인환이 되었다.

부평동 시장통에서 박씨는 배고픔을 잊으려고 물을 마셔댔다. 그 전쟁통에 널려진 것은 배고픈 사람들이었고 누구 하나 거덜떠보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 많은 피난민들이 뒤엉켜서 선택된 자비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길가의 음식점에서 풍겨 나오는 고깃국 냄새는 그의 창자를 뒤틀리게 하였다. 그는 눈을 감았고 자신의 현주소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러나 빛은 보이지를 않았고 이제 그리움도 비치지를 않았다. 오직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는 생존의 부름만이 있었다. 그때 웬 할머니가 그를 툭 치며 정신 차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젊은이가 이제 힘이 다 빠졌나 보네. 정신을 차리시오.”

“사람은 우짜든 살고 봐야 하는 법이여. 절로 가면 밥은 굶지 않을 것이요.”

“보아하니 두상도 그렇고 귀가 부처님 귀를 닮았네. 나를 따라 오시요.”

하고 그 할머니는 박씨를 팥죽집으로 데리고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생각해 보고 내일 다시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헤어졌다. 그 할머니는 당감동에 살고 있었으며 집 뒤의 선암사에 나가는 보살이었다.


선암사에서 박씨는 인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주지스님으로부터 혜월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경허대사의 상좌인 혜월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지혜로운 달이 되어라는 사명을 받고 선암사로 왔던 것이었다. 박씨가 남쪽으로 내려온 것은 피난이었고 한편으로는 운명이었다. 살아야만 살릴 수 있는 살림살이를 선암사에서 펼쳐보기로 원을 세웠다.


어느 날 상열이와 영태가 만났다. 세월이 또 흘렀으니 그들은 가정과 자식을 가졌고 그들은 또 그들의 아버지를 닮은 길을 걷고 있었다. 영태가 사는 동네는 선암사 밑에 있는 당감동이었다. 그는 자주 선암사를 갔고 거기에서 어느 스님을 만났다. 그 선암사는 혜월스님의 원력이 배어 있고 자비의 이야기들이 전설 되어 흘러오고 있었다.

“내가 선암사에 자주 가는데 그 주지스님이 이북말을 쓰데. 법문을 들을 때 신계사 이야기도 하데.”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와 친구인 스님이 아닐까. 그런 감이 오네.”

영태는 그 스님에 대해서 알아보니 전쟁통에 북으로 올라가지 못한 실향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자갈치에서 어느 노보살의 안내로 출가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스님은 다른 절로 가지 않고 오직 선암사만 지켰다. 그곳은 자신이 머무르면서 중창해야 할 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베드로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잊어야만 했다. 세월은 어머니를 당연히 데려갔을 테고 처자는 살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심한들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두 아들의 학업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하면 자연히 잡념은 물러갈 것이었다. 그는 부산에서 개인택시 번호판을 받았다. 그 운전대는 잡념을 잊게 해 주었고 한 번씩 북쪽 고향으로 몰고 가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는 한 번씩 선암사 방향으로 가면 인환스님이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수행을 방해할까 봐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전번 부평동 시장통에서 본 것처럼 인연이 닿으면 만날 것이라 믿었다. 그 부평동 시장은 그들이 서로 그리울 때면 서성이는 만남의 공간이 아니었던가.


김베드로는 성당에 나갔지만 어머니가 절에 나갔기 때문에 불교도 인정했다. 그의 친구인 인환스님이 선암사에 있기에 평지에서는 성당에서 산에서는 절에서 진리를 배우고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을 구해준 성당과 운명적인 결합을 인정했고 자식들에게도 가르쳤다. 그는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라고 믿었다. 우선 전쟁을 피해서 남으로 피난 가게 하여 동족상잔의 총을 드는 것을 피해가게 하였다. 새로운 세상에서 둥지를 틀어 자비를 실천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믿었다. 두 아들에게는 성당을 가르쳤지만 절도 존중하였다.


다시 세월을 흐르고 흘러 김베드로는 세상을 떠났다. 90세를 넘겨 백수에 근접한 나이까지 살았다. 그의 수명을 연장해 준 것은 성모의 사랑과 자식의 효도는 말할 것 없고 통일이라는 기다림이 함께 하였다. 한 해가 시작하면 집뒤 천마산에 올라 북쪽을 향해 상봉을 기도했었다.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몇 번 들이닥쳤다는 것을 지나고야 알았다. 삼팔선을 넘으면서 인민군이 그랬고 부산에서 국군으로부터 그랬다.


그날 김베드로는 지게를 지고 부산역에 나갔다. 너무 많은 지겟꾼들로 보따리 하나 싣기가 어려웠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매의 눈으로 사방을 살펴도 손님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때 부산역 광장에 걸어놓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배고픈 사람은 모두 모여라’이었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길로 가자’였다. 긴 줄이 길게 늘어섰고 거지 행색을 한 피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그가 표적이 되었다. 그는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어 슬며시 긴 줄에 들어섰다. 그 접수대에는 김밥과 빵과 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줄은 생명줄로 보였고 입에는 거미줄이 쳐져있었다. 점점 접수대와 가까워지고 입에는 침이 고였고 눈에는 편안한 잠자리가 보였다.

그 순간 옆에서 어느 할머니가 그를 툭 치면서 말하는 게 아닌가.

“젊은이, 지금 나를 따라오게. 부평동시장에서 쌀을 져다 주어야겠네.”

하면서 그를 줄에서 끌어내다시피 하였다. 엉겁결에 대열에서 빠져나온 그는 할머니를 따라 부평동시장통으로 갔다. 그 할머니는 먼저 팥죽집으로 데려가서 죽을 곱빼기로 시켜주었다. 그 할머니는 쌀 두말을 지게에다 실었고 대신동에 있는 칠보사로 가자고 하였다. 구덕산 비탈을 힘겹게 올라서 칠보사에 쌀을 내려놓았다. 그 할머니는 수고했다고 품삯을 주었고 칠보사 주지는 쌀을 한 되 주었다. 대웅전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미소 짓고 앉아있었다.


김베드로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 할머니가 자기를 구해주었다고 믿었다. 그 할머니가 지게를 지고 칠보사로 가는 길에 당부한 말이 있었다.

“젊은이, 앞으로 이북말 하는 사람하고 일체 이야기를 마소.”

갱상도 말을 쓰는 사람하고만 이야기하소. 목숨을 건질라카면......”

그 무렵 많은 이북 실향민이 청년단에 가입하였다. 그들은 공산당을 쳐부순다면서 국군의 수복지역 길잡이가 되기도 또 앞잡이가 되기도 하였다. 많이 죽었고 많이도 죽였다.


어느 날 상열이는 영태에게 털어놓았다. 그의 아버지가 보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고 살인을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성당을 나갔지만 북녘땅의 신계사를 그리워하곤 했다. 그곳에서 자비를 알았고 생명의 귀중함을 배웠다. 한그루 들풀도 한 마리의 벌레도 똑같이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기댈 데 없는 바람의 언덕 위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김베드로는 다시 지게를 지고 부평동시장으로 나갔다. 부평동시장통은 늘 사람 냄새로 가득했다. 젓갈과 생선 비린내, 눅눅한 쌀겨 냄새, 전쟁이 끝났다는 소문과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이 뒤섞여 있었다. 김베드로는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허리를 폈다. 허리는 펴졌지만 마음은 늘 굽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칠보사 보살로부터 받은 품삯은 여인숙비와 밥값으로 다 나가고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지게를 길모퉁이게 세우고 봉초 담배를 말아서 피우고 있는데 어느 자상스럽게 보이는 할머니가 그를 쳐다보았다.

“젊은이 나를 따라오시요. 잠자리와 밥은 먹을 수 있을게요.”

“보아하니 이북 실향민인가 본데 이제 고향을 잊으시요.”

할머니는 송도 아랫길에 있는 성당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는 성당에서 잔잔한 일을 거드는 잡역부로 일하게 되었다. 밥은 삼시 세끼를 먹을 수 있었고 잠자리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빠르게 성당에 적응해 나갔고 그 할머니의 소개로 아내를 얻었다. 결혼식을 성당에서 올렸고 세례명은 베드로였다.


김베드로는 이제 가정도 꾸렸고 첫 아들도 낳았다. 모든 게 성당에서 배운 성모 마리아의 은총이라고 믿었다. 전쟁의 상흔도 지워져 나갔고 아이들도 커나가니 그간 잠복되었던 북쪽이 다시 그리워졌다. 아무런 소식도 없었고 찾아낼 수도 없었다.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제 편안함이 그를 번뇌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전쟁통에 길을 달리 한 북쪽 친구인 박씨가 궁금해졌다. 그때 선암사로 들어간다는 마지막 기별은 있었지만 지금껏 손잡고 만난 적은 없었다.


김베드로는 택시를 당감동 어귀에 세웠다. 손님은 없었고 갈 데도 없었다. 그냥 그 방향으로 차를 몰았을 뿐이었다. 나침반이나 미터기를 사용할 것도 없었다. 바람이 그쪽으로 불어주었고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었을 뿐이었다. 선암사로 올라가는 길은 늘 아늑하고 조용했다. 그 절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조금 남겨둔 길 같았다. 끝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되고 돌아서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는 길이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개비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시간 날 때마다 피우는 것은 습관이 되었고 마음을 달래주는 진정제였다. 담배가 없었더라면 그 긴 세월의 한숨을 숨길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허연 연기 속에 그리움을 실어 항상 북쪽을 바라보며 품어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순간 빼낸 한 개비를 도로 구겨진 답배갑에 밀어 넣었다. 절 앞에서는 피우지 않는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있었다. 마침 법회가 끝난 모양이었다. 신도들이 하나둘 줄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유난히 반짝거리는 머리를 한 사람을 알아보았다. 알아봤다고 하기보다는 느꼈다는 말이 맞았다. 잿빛 옷을 입은 스님이었다. 발걸음이 느렸고 말수가 적어 보였다. 눈매가 호수처럼 깊었다.


‘저 사람이다.’하고 속으로 외쳤다.

이름도 법명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확신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부평동시장통에서 마주쳤던 그 얼굴, 세월에 씻겨 더 둥글어진 얼굴이었다. 김베드로는 한 걸음 다가가려다 멈췄다. 그때 신도 중 누군가 말했다.

“스님, 오늘 법문에서 신계사 이야기가 참 좋았습니다.”

노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산은 자리를 옮겨도 산이지요.”

그 말 한마디가 김베드로의 가슴을 쳤다. 산은 자리를 옮겨도 언제나 산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산이 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끝내 대화의 대열로 다가가지 않았다. 입언저리에서 나올락 말락 하는 이름을 애써 밀어 넣었다. 그저 길언저리에 비껴 서서 고개 숙여 합장만 하고 눈을 감고 돌아섰다.

그날 밤 그는 집에 돌아와 아이들이 잠든 얼굴을 오랫동안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환이라는 이름을 속으로 깊이 불러보았다. 부르자마자 지워버렸지만 이미 마음에 한 번 울린 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환스님도 김베드로가 궁금했다. 송도 성당에 있다가 가정을 꾸렸다는 소문을 보살을 통해 들었다. 조석으로 그를 위해 목탁염불로 축원하였다. 그 소리는 소리 없이 바람을 타고 백양산에서 천마산 쪽으로 실려나갔다. 한 번씩 밤이면 저 멀리 천마산 능선에서 반짝거리는 불빛이 반딧불 되어 실려왔다. 보고 싶지만 본다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고 마음을 다 잡아나갔다. 속세의 인연은 빨리 잊어야 하고 연민과 집착이 쌓이면 다시 중생도에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오직 만나지 않으면서 만나는 길로 걸어갔다.

어느 날 김베드로는 집에 들어올 시간인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이면 골목에 세워져 있을 택시가 보이 지를 않았다. 전화도 없었고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상열은 아버지의 신변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는 성당으로 달려가 수소문을 하였지만 인기척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전에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다가 온 적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가 막 경찰서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에 아버지가 걸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김베드로는 아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애써 허리를 폈다. 하지만 다리는 후들거렸고, 가슴속엔 서늘한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혼잣말처럼 입속에서 우물거리며 한마디를 뱉어냈다.

“허허, 왜 그리 못 믿을까.”

그날 경찰서 취조실의 공기는 자갈치의 비린내 나는 비늘보다 훨씬 차갑고 날카로웠다. 세모진 얼굴의 형사는 삐걱거리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김베드로의 낡은 신분증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김씨, 자갈치에서 만난 그 사람. 고향 말씨가 아주 진하던데. 무슨 이야기를 긴히 나눴소.”


형사의 낮은 목소리가 취조실 벽에 부딪혀 김베드로의 귓가에다 반사되었다. 김베드로는 마른침을 모았다가 꿀꺽 삼켰다. 메마른 목구멍이 모래를 삼킨 듯이 칼칼거렸다. 사실은 별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저 고향 통천의 바다가 지금의 송도 바다보다 조금 더 푸르렀다는 것이고 어머니가 해주셨던 가재미식해 맛이 그립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고향이라는 언어는 곧 죄였다.

“저... 일자리를 물어보길래 아는 체를 했을 뿐입니다.”

김베드로는 애써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답했지만 혀끝에 숨어있던 북쪽의 억양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형사의 눈이 다시 번뜩였다. 그는 김베드로의 얼굴 가까이 다가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아직 그쪽 물이 덜 빠졌구만.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잠을 못 자요. 한 번만 더 이북 놈들하고 어울렸다는 소문 들리면, 그때는 성당 신부님도 못 도와줘. 알겠소.”


취조실을 걸어 나오는 김베드로의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햇살이 눈부신 경찰서 마당에 서자, 방금 전까지 느꼈던 공포가 현실의 무게로 변해 어깨를 짓눌렀다. 아들 상열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신이 뱉는 말 한마디가 고향 사람과 나누는 눈길 한 번이 아들의 앞날에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공포이었다. 그날 이후로 김베드로는 집안에서조차 북쪽 말을 완전히 봉인했다. 그것은 망각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침묵의 수행이었다.

그날 밤, 그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가 아닌 통곡을 삼켰다. 세상은 그를 베드로라고 불렀지만 경찰서 취조실의 그는 이름 없는 한 명의 이북사람일 뿐이었다. 그가 그토록 보고 싶던 선암사 인환스님을 찾지 않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본 이유도 그것이었다. 누군가와 연결되는 순간 그 인연이 밧줄이 되어 서로의 목을 죌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의 뼈에 새겨져 있었다.


상열은 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에 갈길을 찾아야 했다. 그냥 따라가기만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가야 했다. 아버지는 그가 출세의 길보다는 생명의 길로 가기를 바랐다. 생명이 있어야 출세가 있으니 그 허망한 것을 위해 생명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침묵 속에 심어주었다. 한 번씩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북쪽을 바라보며 희멀건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상열은 아버지를 기리는 것은 성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갈 수 없는 고향을 보이지 않은 길을 만들어 그곳으로 가게 해주는 것이었다. 넘을 수 없는 휴전선은 너무 오래 쉬고 있어 지겨울 지경이었다. 어느 해 아버지와 함께 두만강가에 있는 국경에서 그의 배다른 형을 만나지 않았던가.

“이봐라 거기가 창열이가 맞는가. 어릴 때 귀밑에 큰 점이 그대로 있네.”

“야, 아바이, 지가 맞습니다. 오마이는 죽었고요.....”

“허허, 그 넘의 삼팔선이... 상열아 너그 형이다 손이나 한번 잡아봐라.”

“동상, 우리 아바이 잘 모셔주기오. 막상 만나고 보니 눈물도 안 나오네.”

그렇게 국경의 만남은 더 큰 눈물을 만들어 두만강으로 흘러갔다. 만남이라는 것은 기다림의 결과이었지 해결은 아니었다. 한순간의 갈증을 풀어주었지만 더 큰 애환을 심어주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참모습인 것이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만나지 않는 것이 그리움의 완성이요 진정한 만남이라고 믿었다.


상열은 아버지의 삶을 따라가면서도 그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데 천착하였다. 돈도 출세도 그 삶의 진실을 아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버지를 살게 해 주는 힘은 바로 빛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빛은 생명과 만남을 만들어 주고 고단한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알았다. 그는 아버지의 삶을 조명하는 빛을 찾아서 그것을 자신의 영혼에 간직하기로 하였다. 죽을 수 있는 현실에 잠시 눈을 감고 꿈결 같은 희망을 부여안고 살아온 힘의 근원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보이지 않은 빛이요 잡히지 않는 희망이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였다. 어느 날 영태와 나눈 이야기였다.

“내가 분단이 없었다면 태어났겠나. 슬픔이 생명이라고 말이지.”

“그 말이 그럴듯하네. 사람은 홀씨처럼 흩어져 번식하는가 봐.”

“생명은 눈물을 먹고 산다고 봐. 나는 눈물을 사랑할 거야.”

“맞아, 보슬비 내리는 날이면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지.”


상열과 영태는 한 번씩 선문답 같은 소리를 하곤 했다. 영태 자신도 말할 수 없는 한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가족들은 제주도에서 영도로 옮겨왔고 그는 영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가 바다가 여자들을 집어삼키는 것에 분노하여 그 섬을 버렸다. 그토록 바라던 육지에 닻을 내렸건만 어쩐 일인지 영도라는 작은 섬에 또다시 둥지를 틀었다. 그의 어머니는 천직처럼 낙인이 된 허벅을 끌어안고 파도를 껴안으며 살아갔다. 아버지는 말없이 저 남쪽의 서글픈 섬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파도와 바람과 배고픔을 떠나보내기 위해 찾아온 그 영도는 여전히 그 기억의 잔재까지 실어왔다. 영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할머니의 운명을 보았다.


영태는 아버지를 닮아 표정으로만 이야기했다. 그 요란한 말들을 싫어했고 말없음이 서로 편했다.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닮아 끝없이 침묵했고 보이지 않는 그리움을 향해 허공을 휘저었다. 그것은 유전이었고 지울 수 없는 생명의 표현이었다. 그 집안은 유난히 말수가 적었고 대화는 눈치로서 이미 알아차렸다. 처절하게 침묵하는 현실에는 애달픈 과거가 숨 쉬고 있었다. 영태는 그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그것을 전승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 번씩 자신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한 번씩 봄날에 바람에 흩어져 날아가는 민들레 꽃을 유심히 바라보곤 하였다. 그 제주도에서는 북쪽의 뭍을 그리워했고 영도에서도 북쪽을 자주 향했다.


영태의 할아버지는 뭍으로 나온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그것이 돌하루방이 살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믿었다. 출도를 하고 난 후 몇 년 뒤에 한라산의 오름은 핏빛 진달래꽃으로 뒤덮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한 이웃과 친척들은 그 어머어마한 진달래꽃 덤불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영도에서 자리를 잡고 난 뒤에는 한 뼘씩이라도 북쪽을 향하여 나아가고 싶었다. 그의 족보에는 가문이 황해도에서 출발하여 호남을 거쳐 제주도에 입도한 것으로 나와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떠나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꾸만 멀어졌다. 제주도를 반환점으로 하여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싶었다.


상열은 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에 송도를 떠났다. 이곳저곳에 터를 잡아 살아보았지만 왠지 깊은 잠이 들지 않고 자주 깼다. 간혹 꿈속에서 아버지가 나타나서 송도 쪽으로 걸어가자고 하였다. 천마산자락의 판잣집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는 몇 년간의 방랑을 끝내고 송도로 다시 돌아왔다. 그날 밤에 천마산 송신탑에서 파란 불빛이 깜박이며 사라졌다.

영태도 영도를 떠나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녔다. 영도에서 바라보는 다른 세상에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깊은 잠이 안 들고 끊임없이 파도소리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 시퍼런 갯내음과 몽돌자갈 굴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자극하여 그쪽 방향을 언제나 바라보게 하였다. 몇 년의 유랑 끝에 어쩔 수 없는 운명에 포획되어 영도로 되돌아왔다. 그날 밤 봉래산 송신탑에서는 파란 불빛이 반짝거렸다.


어느 날 밤 영태는 송도 쪽에 있는 상열의 집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잠깐 지나니 송도 쪽에서 영태의 아파트 베란다에 파란 불빛이 도착해 있었다. 그 실오르라기 같은 불빛은 직진하며 그곳에 도착하여 산란하며 부서져 재가 되었다. 그 주고받은 불빛은 봉래산을 감돌다가 천마산 쪽으로 사라졌다. 그 불빛은 그리움을 실어와서 다시 안도로써 되돌려 보냈다.


김베드로의 생은 천마산의 굽이진 길을 닮아 있었다. 가파른 고비마다 성모의 손길이 있었고, 막다른 골목마다 이름 모를 보살의 자비가 있었다. 90세를 넘긴 그의 육신은 이제 낡은 택시처럼 삐걱거렸으나 북쪽을 향한 마음의 안테나만은 여전히 꼿꼿했다.

임종을 앞둔 어느 날 그는 상열의 손을 잡고 힘겹게 입을 뗐다.

“상열아, 내가 죽거든 내 몸을 태워 재로 만들지 말고 그냥 흙으로 돌려보내 다오. 나무가 되어야 북쪽 바람소리라도 더 잘 들을 게 아니냐.”

그는 끝내 인환스님을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만나서 박씨라 부르는 순간 스님이 쌓아 올린 평온의 탑이 무너질까 두려웠었다. 자신 또한 북으로 가고 싶은 본능을 제어하지 못할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함께 수행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김베드로의 마지막 숨이 가빠질 무렵, 그의 눈앞에는 환영처럼 통천의 기차역이 나타났다. 삼팔선의 말뚝은 온데간데없고 어머니가 정성껏 싸준 봇짐을 멘 자신만이 홀로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군복 대신 승복을 입은 인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베드로야, 이제 다 왔다. 고생 많았다.”

그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남쪽에서 일궈온 삶이 사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가장 긴 우회로였다는 것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성당의 잡역부로, 개인택시 기사로 살며 흘린 땀방울이 모두 고향의 맑은 시냇물로 흐르는 줄기였다는 것을.


김베드로의 심장이 멈춘 날 송도 앞바다에는 유난히 큰 물결이 일었다. 상열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아버지가 그토록 기대었던 천마산 자락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여전히 차가운 북서풍이 불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봄바람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상열의 가슴속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김베드로가 숨을 거두었을 때 그가 남긴 것은 단순한 유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삶이 품고 있던 빛이었다. 그 빛은 상열에게 그리고 그의 가족에게로 흘러갔다. 비록 김베드로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그들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그가 살아온 삶과 그가 전하고자 했던 불변의 진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북쪽의 바다처럼 그리운 존재가 되었고 이제 그곳에 가게 되어 영원한 평화를 찾았다. 그가 남긴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여정이었다. 자신이 살아온 의미를 완성하고 그 길을 아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남긴 말은 더 이상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였다.


어느 날 상열이와 영태가 영도에서 만났다. 둘은 말없이 건너편 송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쓸쓸한 말을 한마디씩 나누었다.

“연어는 왜 죽으면서까지 돌아오는 걸까.”

“죽으려 가는 게 아니라 거기서 끝내야 시작이 되는 것이니까.”

그 둘은 한동안 말없이 쉴 새 없이 밀려와서 부서지며 사라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는 늘 그랬듯 대답하지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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