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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벽운 Aug 27. 2024

15. 나라를 구한 義妓, 마음을 구해준 藝妓

의기 논개와 예기 매창과 두향

 김만덕을 알려면 조선시대의 기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기생이란 신분은 관에서 기적에 올린 것으로 관기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관아에 소속되어 예능으로 향연과 접대를 한다. 김만덕과 같은 경우는 기생이라기보다는 의로운 의기(義妓)로 표현하는 게 맞다. 논개와 같은 의기는 국가가 난을 당했을 때 목숨을 바친 점에 비추어, 김만덕은 굶어 죽어가는 백성을 구했으니 의기로 대하여야 하고 후일에 면천을 하였으니 의녀라고 불러야 하겠다. 그리고 매창과 두향 같은 기녀는 시와 그림에 능하고 러브스토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예기(藝妓)로 부르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매창은 유희경과 시를 매개로 정분을 나누었고, 두향 또한 퇴계선생과 시와 매화로써 교분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상으로 중인이나 천민으로 분류되었으나 예능과 기예가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 서얼차별에 의해 벼슬길이 차단된 유능한 인물도 있었으니 유교의 냉엄한 신분제도는 지금 관점에서 볼 때 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신분제도는 국가를 통치하기 위한 편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윤리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했지만, 충성을 지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봉건사회에서는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노예제도도 승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반란의 원천적 차단을 위해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조선시대의 관기제도는 유학을 숭상하던 사대부계층을 위한 인신구속이자 인신공양의 모습도 보인다. 관기의 자유스러운 행위를 제한하고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수령들의 수청을 들게 하였으니 여인들의 인권은 엄청나게 침해당하였던 셈이다. 하기사 사대급계층의 정실부인들도 유교의 남녀유별에 의해 출입과 행동에 제약을 받았으며, 재가를 사실상 금하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으니 기녀에 대한 대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김만덕 외에 의기인 논개와 예기인 매창과 두향에 대하여 살펴본다. 의기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본래 양반계층인 주씨 가문의 자녀였다. 부친이 사망하자 양육을 의탁한 숙부가 노비로 팔아버리자 모친과 함께 함양으로 도피를 한다. 장수 관아에서 논개를 찾아서 관기로 배속시켜 버리자 장수 현감인 최경회가 억울한 사정을 듣고 면천하였다. 그 이후 최경회의 부인이 사망하자 논개를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진주성 전투에 최경회가 초유사로 참전하여 전사하고 만다. 논개는 신분을 기생으로 위장하여 촉석루 연회장에서 왜장을 남강변 평바위로 유인하여 왜장의 허리를 감고 남강물에 투신한다. 이곳의 바위가 의로운 논개를 기리는 의미로 의암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음은 내가 남강변의 의암을 탐방하여 논개의 의로운 살신성인의 정신을 기리며 지은 시이다.


                논개     


구름이 감고 도는 육십령 너머로

어머니 손에 끌려 동으로

철부지 소녀는 갔다네   

  

그 길은 운명의 길인가 험하고 멀다

뒤돌아보는 장안산 자락의 초가는

다시 못 올 꿈속의 터전인가     


길섶에 핀 진달래가 소녀를 배웅하고

그토록 극진하니

다시 올 기약마저 없으련가     


임진년 붉은 해가 서산에 지면

임을 따라 남강가로 나섰건만

청초한 젊은 꽃을 조국은 불렀다네     


옥지환 낀 두 손으로

왜장 허리 부여안고

나라사랑의 이름으로 가쁜 숨을 거두었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그곳을 지나건만

숨 가쁜 임의 숨결은 보이지 않고

촉석루 언덕에는 한송이 진달래꽃만 피었네  

   

거룩한 분노를 하이얀 화장에 감추고

가냘픈 미소로 바위까지 이끌어서

깊은 강심으로 몸을 던진 꽃잎이여 

    

처절한 피비린내는 진주성을 물들였지만

그대 혼은 타오르는 불씨가 되어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한번 밝혔네   

   

 다음으로는 예기인 매창과 두향에 대하여 적어본다. 송도삼절이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라면 부안 삼절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이다. 황진이는 너무 유명한 인물로 화담 서경덕 선생을 흠모하였지만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다. 반면 매창은 중인 신분인 유희경과 시를 매개로 대화하며 뜨거운 애정을 나누며 평생 그리워하는 관계를 형성하였다. 양반출신이며 도력이 넘치는 서경덕을 매혹적인 황진이도 수용하지 못했으니 황진이는 그를 존경하였지만 내심으로 서운함을 지녔을 것이다. 또 하나 두향과 퇴계선생과의 관계는 황진이와 서경덕의 관계와 달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화합하였던 운우지교이었다. 서경덕 선생의 인품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에게 냉철한 학문의 경지만 열어주고 정녕 뜨거운 가슴의 문은 열어주지 못했다. 그것은 인성의 문제인지 사제간의 금도를 지키려 함인지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힘들다.


 다음은 두향과 퇴계선생의 매화를 매개로 하는 사랑을 도산서원의 뜰에 서있는 등 굽은 노송과 매화나무를 보고 적어놓은 시를 올려 본다.


     노송과 매화   

  

도산서원 앞뜰에는

등 굽은 노송이 서있고

맞은편의 돌담 옆에

오래된 매화나무 서원을 지키네 

    

본래 소나무는 그 자리에 있었건만

매화는 혹시 죽령 넘어왔을까

외로운 소나무가 두향을 그리워하니

뜻깊은 유생들이 만남을 주선했나    

 

선생은 열정의 맑은 물을

후학에게 마시게 하고

두향은 이름다운 지조의 향기를

후생들에게 맡게 하였네     


남한강 강물이 소백산을 넘지 못하니  

죽령을 따라가는 산길을 돌고 돌아

매화향은 봄바람에 실려 천리를 가서

노송 아래에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겠네


 이에 비해 김만덕은 시와 예능에 탁월한 재능을 갖지 못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간절함과 성실함이 있었다. 당대의 명재상인 채제공과 만나서 민생구제에 대해 논하고, 정약용의 실용철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황진이, 매창, 두향과 다른 논개와 같은 의로움 길을 갔으니 세간의 존경을 받을만하다. 그리고 육지와의 직교역으로 중간상인의 폭리를 배제하여 물가안정에도 기여한 탁월한 상술과 상도덕을 지녔다.

 사실 그는 논개와 같이 출신이 양민이었으나 일시적으로 기녀의 길로 들어갔기에 신분에 대한 자격지심은 없었고, 자신이 목도한 민생의 고달픔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자비심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뭍으로 나갈 수 없는 출도금지령으로 평생을 제주도에서 살아야 하는, 해상 조난으로 남편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해녀들의 애환을 느끼며, 남자 보다 더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더 다은 삶을 구가하려는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에게 형성된 혁신과 민생구제의 포부는 실현되어 평범한 여인으로 잊히지 않고 탐라의 향기가 되어 뭍으로 불어와 사방으로 퍼지고 있지 아니한가.

 다음은 김만덕의 공덕을 기리며 적어놓은 시조를 올려본다.


         탐라의 향기처럼     


파도마저 옥죄는 감옥 같은 탐라도에

바람에 돌 날리 듯 힘든 삶 살아가는

만인의 목숨을 구한 만덕 베푼 향기여   

   

태생은 양민이나 운명처럼 기녀 되어

숱한 설움 갖은 수모 이 악물고 참아내어

탐라의 등불이 되어 민생구제 했다네  

   

나라님이 불러줘서 금강산을 구경하고

궁중에 머물면서 개혁 신료 만나보고

연약한 여인이 아닌 장부 기질 지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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