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비각
그는 한강의 흐름을 따라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을 펼친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역사기행을 통하여 한의 시원을 찾고 그 현장에서 자연과 사람을 만나서 한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다. 한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정선, 영월을 거쳐 단양, 제천을 우회하며 충주에서 잠깐 쉬어가다가 여주 이포나루를 거쳐 양수리에서 덩치를 키우면서 하나의 흐름인 한강이 된다. 그는 한강을 태백산에서부터 노량진까지 물길을 따라 기행하면서 그 유역에 얽힌 이야기들을 적어나간다.
그가 태백산을 처음 등정하였을 때 어둠 속에 갇혀있던 비석을 보았지만 그것이 단종비각인지는 몰랐었다. 긴 세월을 기다린 끝에 한반도의 정기가 서린 태백산 정상밑에 비각을 세웠으니 늦었지마는 찬탄을 해야 할 일이다. 단종이 관풍헌에서 사사당한 후에 예로부터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 날 태백산 정상밑에 있는 망경사 주지인 김보살이 꿈속에서 단종을 만난다.
“어이하여 그대는 태백산에서 수행을 하면서 산신령에게 예를 올리지 않는가. 불가의 도의가 어떻다는 것을 알지만 무속이라고 배척하지 말게나. 내가 그대에게 나타난 것은 나를 기리라는 뜻이 아니라 한 많은 민생의 아픔을 달래주고 국토가 번창하기를 바라는 것임을 알려주노라.”
“임금님, 어찌 저 같은 미천한 보살에게 나타나시어 그런 엄중한 말을 하십니까. 저가 그런 깊은 뜻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좁은 생각에 갇혀있었구만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곧 보살의 갈길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요.”
“내가 보니 망경사터가 태백산 안에서 정기가 응혈 된 곳이니 바로 옆에다가 나의 비석을 세우게나. 그 비석을 등산로 입구에 세우면 오가는 사람들이 안심을 얻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게 되어 민중들도 편안하게 될 것이네.”하고 단종이 말하고 난 후 사라진다.
김보살은 하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고 말 또한 구체적이어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자신도 한 번씩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설법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기에 예사롭지 않게 여겼다. 그 맺힌 한이 얼마나 크기에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지기도 하였다. 세상사람들이 비극적인 단종의 운명을 안타까이 여겨 산신령이라고 호명하였지만 또 한 명의 평범한 민중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단종임금이 비석을 세울 장소까지도 정해주었으니 그것은 관심을 넘어서서 거역할 수 없는 왕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자리 잡고 있는 망경사터가 명당자리임이 확실하고 이미 용정약수가 조선제일의 명수라고 이름나 있지 않은가. 김보살은 비석을 세운다는 마음을 굳히고 어떻게 하면 건립자금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평소에 가르침을 받고 있던 오대산 월정사의 탄허스님을 찾아가서 상의를 한다.
탄허스님은 조선의 명필이요 도선국사에게는 못 미치지만 유명한 풍수가가 아니던가.
“큰스님, 어떻게 하면 비석을 세울 건립자금을 마련할 수가 있을까요. 단종임금의 비석이니 대충 할 수가 없고 규모 있게 세워야 하는데 걱정이 됩니다. 저희 망경사는 초파일이나 명절에 가물에 콩 나듯이 시주를 하여 어렵게 살고 있지를 않습니까.”
“허허, 보살이 원력을 세워서 간절히 기도하면 못 이룰게 어디 있겠는가. 우선 대웅전 안에다 위패를 모시고 매일 용정약수를 떠다가 발원기도를 하게나. 그러다 보면 건립자금을 마련할 방도가 떠오르는 지혜의 문이 열릴 것이네.”하고 김보살은 탄허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돌아왔다.
김보살은 탄허스님의 가르침대로 지극정성으로 발원기도를 하였고, 마음을 급히 먹지 않고 인연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십 년 불사라라고 생각하며 비석의 크기며 전각의 규모는 물론 비문도 받아야 하니 일반 불사와는 격이 다르기에 차근차근 추진 해나기로 하였다.
그래도 어마어마한 불사자금을 마련하는데 방도가 있을 것이라고 한 꿈속의 단종임금 말씀이 머릿속을 맴돈다. 김보살은 더욱더 정성껏 발원 기도를 하였는데 어느 날 오랜만에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김보살이 비석을 세우는 보시금을 마련한다고 고생을 하시는구만. 부잣집에 기복을 빌어주어 받는 뭉테기 돈은 별로 가치가 없으니, 민중들의 조그만 성의를 모아서 이루는 게 값진 것이라네. 그러니 태백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조그마나마 시주를 할 수 있게 등산로 입구에 조그만 초당이라도 지어 단종비각이라 이름 붙이고 비석은 조그만 화강석을 구해다가 비문이 없는 백비를 우선 세우시게.”
“어떻게 초라하게 단종임금의 비석을 세운다는 말씀이신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가 태백산을 매일 오르내리더라도 규모 있게 세울 것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조석으로 발원기도를 하니 좋은 인연이 다가오겠지요.”
“허허, 속가에서도 처음부터 크게 집을 짓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갈수록 형편이 나아지면 저절로 크게 되듯이 내가 말한 대로 따르게나. 작지만 진정성이 있으면 사람도 감복하고 하늘도 돕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하고 문수보살이 당부를 하고 떠난다.
그렇게 하여 김보살은 문수보살이 가르쳐 준 데로 초막에다가 단종비각이라는 현판을 달고 그 안에 백비를 세웠다. 태백산을 오르내리는 산객들이 초막에 걸린 단종비각이라는 간판과 조그마한 백비를 보고 의아해하였다. 그것을 어느 진정성이 있는 보살의 정성이라고 여기며 형편 되는 대로 주머니를 열었다. 또 단종임금을 잘 모시고 싶은데 형편이 안되어 초막에다 백비를 세운 것을 보고 애틋하게 생각하였다. 그 소문은 산아래로 퍼져나가 태백산 아래에 있는 당골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주하러 올라왔다. 그 보상은 조선제일의 명수인 용정약수 한 바가지이었지만 만족하였다. 태백산을 오르고 약수를 마신 사람들은 하나같이 있던 잔병이 없어지고 얼굴도 밝아졌기에 그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야말로 부잣집의 큰 시주가 아니라 서민들의 자발적인 소소한 공양으로 차츰차츰 건립자금이 쌓여나갔다. 단 한 명에 의한 독점적인 불사보다는 수만수천의 민초들에 의한 적은 보시가 쌓여 이루는 것이 참다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종 이외에도 문수보살의 화현이 나타났다는 소문도 크게 한몫을 하였다. 태백산 바로 옆에 있는 봉우리가 문수봉이 아니던가.
당골마을 아낙네들에게서 오간 말들이다.
“오우, 태백산 망경사에 단종임금이 나타나시어 비각을 세우라고 하였었데. 그것도 우선 초막에다가 비문도 없는 비석을 말이제. 무슨 큰 복을 갖다 주시려고 그러신 것 같은데 좀 신기하다네.”
“맞아, 그것도 그렇지만 문수보살까지 나투시어 보시금 마련에 대한 방법을 전해주었다니 무슨 좋은 징조인 것은 분명하다오. 그것도 마을아래로 내려가는 것 보다도 직접 올라와서 시주하도록 권유했다니 깊은 뜻이 있는 모양일세.”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로 진리의 말씀인 것 같다네. 우리도 바로 위가 태백산이지만 멀리서 구경만 하였지 어디 제대로 한번 올라가 본 적이 없지 않던가. 공양물을 이고 지고하여 오르면 운동도 되고, 조선제일의 용정약수를 한 바가지씩 마시고 내려오니 있던 잔병이 다 나아버린 게지.”
“이 모두 다 단종임금이 자신을 기리라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민중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하기 위한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이 분명해. 그런 당부사항을 망경사의 김보살에게 하였으니 신심이 깊은 그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 건가. 나도 단종임금 비석을 세우는데 힘이 된다면 도우려고 하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아닌가.
이렇게 하여 단종비각을 세우는 불사보시금은 차곡차곡 쌓여 몇 년 내에 세울 수가 있을 것 같다고 김보살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하나하나 건립준비를 하여야 하니 비석을 제작하고 비문을 새기고 나머지 제일 어려운 운반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석은 제작도 어렵지만 운반과정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 김보살은 다시 원력을 세웠다. 제작은 보시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지만 그 무거운 비석을 태백산 정상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길이 험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인부를 사서 끌어올린다면 운반비용이 얼마가 들어갈지 가늠하기가 힘든 것이다. 무작정 비석을 제작해 놓고 정작 운반하여 세우지 못한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김보살은 다시 원력을 세우니 그에게 지혜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태백시내에 신도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이다.
“김보살님, 불사자금이 마련되면 거의 준비가 다 된 것인데 무엇을 걱정하고 계십니까. 혹시 추가로 들어갈 자금이 있거나 차질이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저희들은 돈은 없어도 다른 것은 도와드릴 수가 있습니다.”
“아이구, 내가 비석을 그냥 세운다고 마음먹으면 그대로 될 줄 알았는데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저 높은 태백산 정상 밑에 그것도 작은 게 아니고 단종임금의 격에 맞게 세우려는데 운반하는 게 제일 문제라고 하네요. 사람의 손으로 끌어올려야 하니 긴 시간이 걸리고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하겠는가요.”
“아이구, 그런 문제가 있구만요. 그런데 지금 와서 그만 둘 수도 없고 그것은 단종임금과 문수보살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니 있을 수도 없고요. 제가 생각해 보니 자원봉사하는 인력이 필요한데 그것도 남정네들이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저의 집 처사에게 부탁해 볼께요.”
“장보살님 말씀이나 따나 정말 고맙고 또 힘이 됩니다. 처사분들이 좀 나서주시면 많이 수월할 것 같은데 한번 서방님한테 부탁 한번 해보시지요. 전번에 만나보니 신심이 굳고 힘도 세게 보이더라고요. 그것만 해결되면 큰 걱정 하나가 해결될 것 같기도 하군요.”하고 김보살이 여러 보살들과 나눈 이야기이다.
김보살은 불사자금은 이미 마련되었고, 비석을 제작하는 곳과 비문을 지어줄 분을 물색하는 일이 남았다. 태백에도 석공소가 있기는 하나 지극 정성을 들여 단종임금의 한과 염원이 어우러진 혼이 담겨야 진정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진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김보살은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김보살은 그에 대한 고견을 탄허스님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는다.
“김보살, 그간 건립자금을 모은다고 고생을 하셨네. 비문은 내가 한번 시간을 두고 적어볼까 하고, 현판도 남들이 내가 그런대로 붓글씨를 쓴다고 하니 걱정을 마시게. 문제는 어디에서 비석을 제작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네.”
“아이구 감사합니다, 큰스님! 저도 말씀은 안 드렸지만 분명히 비문과 현판을 적어주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저 마음하고 딱 들어맞는구먼요. 비석은 운반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으니 이곳 태백이나 영월에서 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허허, 모르는 소리. 단종임금의 비석이니 혼이 배여 들어야 하고 진정성 있는 정신으로 제작해야 하니 석공명인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나. 강원도 땅에도 사찰이 많으니까 유명한 석수장이들이 많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네. 서해가 끝나는 인천 쪽에서 제작하면 어떨까 생각하네.”
“예, 큰 스님이 어찌 그리 먼 곳에서 제작한단 말씀이십니까. 인천이라고 하면 여기서 수백리나 떨어진 바닷가가 아닙니까. 그곳에 유명한 석공을 구하기도 힘들 것이니 무슨 깊은 뜻이 있으신지요.”
“허허, 김보살이 다 잘 아는데 단종임금의 유배길과 한을 이해하는 데는 좀 부족하군 그래. 이곳 태백산 단종비각에서 흘러내린 한의 눈물이 흘러가서 동강을 따라가다가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고 다시 양수리에서 합류하여 한강이 되지 않는가. 노량진 사육신묘를 감돌면서 비로소 서해에 이르느니 그런 뜻에서 인천으로 정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네.”
“큰 스님의 깊은 뜻에 감복하였나이다. 그러면 서해안 인천근방에 유명한 석공소를 저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단순히 비석만 크게 세운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정신이 깃들여야 살아있는 비석이 된다는 말씀으로 듣겠습니다.”하여 이렇게 탄허스님과 김보살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김보살은 이제 주변의 석공소를 찾아가서 인천근방에 소재한 유명한 석공장인이 있는 곳을 탐문해 나갔다. 근 한 달을 찾아본 결과 추모비석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석공소를 알아내었다. 그 석공장인은 일 년에 한두 개의 비석만 만드는 그야말로 정성을 다 쏟아 만드는 진정한 장인정신의 소유자이었다. 비석을 다듬는 일은 기본이고 비면에 적을 글자를 음각하여야 하니 그야말로 혼신을 다하여 제작하는 석공장인이었다. 그렇게 하여 비석을 제작하는 장소와 석공을 구했으니 이제는 탄허스님으로부터 비문을 받아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석공은 마음이 급해서도 아니 되고 정신을 집중하여 한자 한자 글자를 새겨야 하니 시간을 재촉하지는 않기로 하였다. 특이한 것은 그 석공소와 장인은 제작비용을 대폭 깎아주었기에 이문을 남기지 않을 심산이 분명한 것 같았다.
김보살이 그 석공을 만나 나눈 이야기이다.
“박대성 장인님, 어찌하여 견적서 대로 안 받으시고 깎아 주시는지요. 그렇게 하면 근 일 년이나 걸리는데 어떻게 생계를 꾸려 갈 수가 있겠는가요. 건립자금이 충분하지는 않으나 비석을 제작하는 비용은 우선적으로 지불이 가능합니다.”
“김보살님이 그런 훌륭한 불사를 하신다고 하니 저도 불자인데 어찌 이문을 남기겠습니까. 원가 이외에는 받을 수가 없고 견적서와 차액만큼은 저가 불사에 시주를 했다고 생각하여 주십시오. 저도 단종임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하고 김보살과 박장인은 아주 원만하게 합의를 하였다.
이제 박장인은 비석의 원석을 구해야 하고 그것은 태백산맥에서 캐낸 화강암대리석이어야 했다. 돌도 정기를 품고 있으니 아무래도 원산지가 태백산이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박장인은 분명히 성은 달라도 신라시대에 석굴암을 세운 김대성과 같은 진정성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탄허스님으로부터 받은 비문을 박장인은 한글자 한글자 음각해 나갔다. 근 일 년이 걸려 비석이 완성되었고 김보살은 인천 석공소에서 비석완성 기념법회를 열었다. 이제부터는 길이가 2미터요 폭이 70센티인 거대한 비석을 안전하게 태백산 아래까지 운반하는 일이 남았다. 다행히 상동중석광업소에서 트럭을 제공하여 준다고 하니 그 또한 희유한 일이었다. 상동광업소는 태백산 자락을 파헤쳐 정기를 훼손한 잘못에 대한 보상인지 자발적으로 나섰다. 비석에 가마니를 몇 겹으로 두르고 묶어 파손과 흠집발생을 예방하였다. 이제는 비석을 싣고 가는 노선을 정하는 것이 남았다. 이것은 탄허스님이 태백산에서 한강의 흐름을 따라 한이 실려 내려간다고 하였으니 그 역순을 따르면 되겠다고 김보살은 알아챘다. 그것도 단종이 영월로 간 유배행렬이 갔던 길이 마지막으로 결정된 운반노선이다.
이제 트럭은 인천을 출발하여 단종이 정순왕후와 이별한 영도교를 지나고 광나루를 거쳐 여주에 도착하였다. 다시 여주다리를 건너 원주 신림면 싸리재를 넘고 다시 황둔을 거쳐 영월 수주면으로 들어섰다. 수주면에서 군등치를 넘으려고 하니 차가 부르르 떨리는 게 아닌가. 김보살은 그냥 예사롭지 않게 느꼈지만 다시 명라곡에 이르니 차가 다시 털털거리면서 힘을 내지 못한다. 김보살은 단종의 유배길에 들어섰기에 비석도 혼이 깃든 것인지 역사현장에서 반응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럴수록 김보살은 차 안에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차가 진정하여 잘 나아가기를 기도하였다. 김보살은 혼잣말로 몇 마디 말한다.
“아이구, 단종임금께서 힘들게 넘던 군등치에서 부르르 사지를 떨듯이 트럭도 떨고, 백성들이 가지 말라고 유배행렬을 가로막고 통곡하던 명라곡에서 또 차가 부르르 떨고 하니 분명히 이 비석에 단종임금의 혼이 깃들은 모양이네.”
이제 트럭은 배일치에 당도하였고 차도 쉬고 비석도 사람도 함께 쉬기로 하였다. 그곳은 단종임금이 유배지인 영월이 가까워지자 서산에 지는 해를 보고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며 절을 하였는 곳이 아니던가. 그 시간에도 마찬가지로 서산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저 풀숲에 가려진 자그만 바위가 단종임금의 모습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다시 화물차는 시동을 걸고 소나기재를 넘어 장릉 앞을 지나간다. 그 순간 화물차의 시동이 꺼지고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게 아닌가. 운전기사가 내려서 엔진도 점검을 하여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차는 꼼짝을 안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김보살은 단종비석이 장릉과 감응하고 있다고 믿었다. 김보살은 운전기사와 다른 인부들을 내리게 하여 기다리라고 한다. 그리고 조용히 장릉의 배식단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말한다.
“단종임금이사여, 장릉에 지금껏 참배를 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요. 꿈에서도 저를 꾸짖었듯이 이곳에서도 저의 불충함을 다스리시는군요. 부디 고정하시옵고 이제 그 한을 내려놓고 태백산에 올리는 비석이 무사히 안착하기를 도와주십시요.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그 얼마나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저들은 비석을 싣고 유배길을 따라 이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앞길을 어서 빨리 열어 주시옵소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자 다시 시동이 걸리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단종이 숨진 관풍헌 앞에서 마지막 예를 올리기로 하여 김보살은 내려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화물차는 단종의 시신이 아닌 비석을 싣고 태백으로 다가간다. 저 앞의 육육봉 아래 청령포가 보이고 금강정 아래는 천길낭떠러지인 낙화암이 보인다. 이곳에서 많은 시녀가 꽃잎처럼 강물에 몸을 던졌었고, 엄흥도와 함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정사종도 그 부근에서 투신하였던 슬픈 역사가 있는 장소이다. 화물차는 단종이 사사당한 후 그의 혼이 태백산으로 향하던 길로 접어들었다. 석항삼거리에는 단종의 현신을 따라가다가 길가에서 죽은 추익한의 묘가 있다. 다시 차는 이제 막바지인 상동으로 접어들었고 태백산이 점점 가까워진다. 차도 목이 메는지 숨이 차는지 어평재를 넘어갈 때 구슬픈 경적을 몇 번 울린다. 인천에서 출발한 지 꼬박 하루 만에 태백산 아래 백단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김보살은 기중기를 이용하여 그 무거운 비석을 안전한 장소에 일단 안치하였다.
지금부터가 진짜로 힘든 과정이며 시간도 엄청 걸리는 일만 남았다. 김보살은 태백시내로 들어가 일전에 만난 장보살하고 상의를 한다.
“장보살님, 이제 비석도 백단사 아래에 도착하였기에 망경사까지 옮기는 일만 남았네요. 그 얼마나 가파른 산이던가요. 무게가 어마어마한 비석을 옮겨야 하는데 과연 비석이 꿈쩍이라도 할까 걱정이 됩니다. 장정들이 수십 명 달라붙어도 급경사를 어찌 올라갈지가 정말 난감합니다.”
“전번에 저의 서방님 보고 부탁을 하였더니 자기 주변에 힘이 센 친구들이 합심하여 도와주기로 하였답니다. 저의 서방이 산판에서 벌목도 하고 옮기기도 한 경험이 있기 요령 있게 잘해나갈 거라고 보입니다. 문제는 인부 숫자가 서방님의 친구들로 다 감당할 수가 있을지가 염려가 됩니다.”
“아이구, 장보살님께서 큰일을 하셨네요. 모자라는 인부는 건립자금을 풀어 구해야겠지요. 안 그래도 비석을 제작하는 석공분이 자기에게 돌아가는 이문을 시주를 하여서 큰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또 힘을 함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작업을 한 전문가가 꼭 필요하니 비용을 들여서라도 하면 될 것 같습니다.”하고 장보살 남편의 협조로 인부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드디어 비석이 태백산을 오르는 첫날이 되었다. 출발하기 전에 김보살을 비롯한 불사추진 관련자들과 인부들 대표도 함께 산신령에게 제를 올리고 빌었다. 먼저 길이 크고 작은 돌멩이로 거치니까 목질이 좋은 나무를 비석밑에 깔고 나가는 목도를 놓아 운반하기로 하였다. 백단사에서 출발하는 초입에서는 그런대로 경사가 완만하여 잘 나아갔다. 절 뒤를 돌아 경사가 급한 길에는 몇 번씩 미끄러지기도 하여 위험천만한 일이 발생할 뻔하였다. 그런 고비가 올 때마다 김보살은 간절히 발원기도를 올렸다. 그렇지만 기도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줄 모른다. 김보살은 장보살과 그의 남편을 불러 의논을 한다.
“김보살님이 염려하시는 대로 정상에 다가갈수록 미끄러지기가 쉬워 위험해집니다. 제 생각에는 하루에 백 미터를 옮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세월만 가면 언제가는 망경사에 도착할 테니 큰 걱정은 마십시요. 그리고 저의 자원봉사 처사들도 산판노동을 해보아서 안전하게 옮길 것입니다.”
“아이구, 단종임금님의 비석 건립에 열성적으로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기필코 도착하게 되겠지요. 하늘도 돕고 사람도 도우면 다 이루어 지지 않겠습니까. 그 운반하는 시기에 눈이나 큰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처사들이 생각해 낸게 한걸음을 옮기고 다시 밀고 당길 때마다 비석 끝부분에 쇠와 나무로 된 쐐기를 박아 미끄러지는 사태가 없도록 고안해 놓았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면 당연히 앞으로 나가겠지요. 김보살님께서는 간간히 축원기도만 올려주시면 되겠습니다.”하고 김보살과 장보살의 남편과의 대화는 마무리된다.
이렇게 하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비석을 운반하는 방법을 쓰게 되었고, 결코 후퇴 없는 일보 전진하는 수도승의 정진과 같은 운반작업은 착착 진척되었다. 근 열흘이나 걸려 반재에 도착하였다. 반재는 아마 반쯤 왔다고 정해진 이름인지 모르지만 백단사에서 오르는 길이 당골 쪽과 만나는 지점이다. 그간 날씨도 비나 눈이 오지 않아 좋았기에 무사히 반재까지 오른 것이다. 얼마나 길이 험하고 비석이 무거웠으면 열흘 만에 중간지점까지 왔는지를 짐작이 간다.
그런데 무사히 반재까지 왔다고 하였지만 비석이 무사하다는 뜻이지 그 과정은 결코 무난하지도 않았고 너무나 험난하였다. 그때 그 장면으로 되돌아가본다.
아주 가파르고 길이 좁고 바위가 돌출된 반재 바로 아래 급경사 지점에서는 하루에 겨우 3미터밖에 움직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때 만약 지나가던 등산객들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아예 그 지점에서 꼼짝달싹 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다음에 반재 바로 아래 두꺼비 형상처럼 생긴 바위 밑에서의 사투는 그야말로 치열하였다. 거의 60도나 되는 경사에다가 길이 없어 바위를 우회하여 등산객도 다니는 길인지라 굳건한 신심이 없었더라면 그냥 영원히 주저앉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김보살과 운반책임자 간의 대화를 들어본다.
“김보살님 이제 정말로 난감한 상황이네요. 저가 몇 번 사전 답사를 하였을 때는 그런대로 이지점을 통과하겠다고 보았는데 바위틈에서 언제부터인가 물길이 열려있네요. 그 새어 나오는 물이 그치지 않는다면 미끄러워서 한치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이곳에서 이런 장애를 만나다니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거센 물길이 잡히지 않는 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뭐시라고요! 어떻게 해서 없던 물길이 갑자기 열려 흘러나온다는 말씀이신가요. 요 근래 큰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이런 낭패가 있는가요. 물길도 지 마음대로 요리조리 옮겨 다니는 모양인가 본데, 그 마음을 한번 돌려 볼까 합니다. 지금부터 물길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 저가 산신령께 기도를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하고 김보살과 운반책임자 간에 나눈 대화이다.
김보살은 앞이 캄캄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자 간절히 발원기도를 올린다. 천지신명에게 빌고 부처님에게도 빌고 천제단에도 빌고 그 장소의 두꺼비바위에게도 빌었다. 어찌 보면 자연의 법칙을 모르는 어리석은 기도이었지만 아주 간절하게 빌었다. 그때 잠시잠깐 문수보살이 나투시어 지혜를 가르쳐 준다. 그 말은 두꺼비바위 위에서부터 물길이 열려있으니 바위위쪽에 물길을 찾아서 다른 방향으로 돌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을 책임자에게 말하니 무릎을 탁 치면서 기가 막힌 방법이라고 얼굴에 자신감이 되살아 난다. 사실 그간 비가 오지 않았지만 두꺼비바위에서 물길이 비위밑을 통과하여 도로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보았다. 인부들을 동원하여 두꺼비바위 위쪽에 흐르는 물길을 찾아내어 다른 방향으로 틀고 나서 다시 하루간을 기다려 보았다. 벌써 출발한 지 근 아흐레가 다되어 가고 있는 시점이어 너무 대책 없이 늦어지면 우기가 시작되어 큰비를 만나면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이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운반책임자가 김보살에게 달려와 흥분된 목소리로 말한다.
“김보살님 이리 와 보십시요. 물길이 밤사이에 바뀌어 이제 흘러나오지 않는군요. 문수보살님의 가르침대로 하였더니 드디어 물길이 바뀌었네요. 나는 다른 방도가 없어 눈앞이 캄캄하여 이일을 어쩌나 하고 절망하였던 게 사실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우리 스스로 알아야 하는데 지혜의 문이 열리지 않아 그냥 속수무책으로 방관만 하고 있은 셈이지요.”
“아이구, 드디어 물길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단 말씀이시지요. 아, 지혜로운 문수보살이시여,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단종임금의 비석을 세우는데 하늘도 도우니 이제는 우리 사람들이 기필코 성공시켜야 하겠지요.”하고 김보살이 문수보살의 지혜를 찬탄하면서 감사의 말씀을 하늘을 보고 전한다.
이제 반재부터는 다소 길이 순탄하고 돌들이 돌출되어 있지 않았기에 수월할 것 같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는 받치고 하면서 거북이걸음이지만 점차 망경사가 가까워진다. 다시 닷새가 지나서야 비로소 망경사 경내에 도착하였고 본래 초막이 있던 자리에다가 운반도중 누워만 있던 비석이 바로 서게 되었다. 와석인지 와불인지 모를 비석이 바로 섰으니 본래 자리를 이제서야 잡았던 것이다. 이제는 준비해 둔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씌웠고 탄허스님이 친필로 쓴 현판을 걸었으니 긴 세월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그 비석은 먼 길을 달려왔고 이제야 단종의 혼과 만나 민생을 구하는 효험을 발산하기 시작할 것이다.
김보살은 단종비각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그 자리에는 탄허스님이 오고 그간 불사를 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장보살과 많은 처사분들이 참석하였다. 또 비석을 만든 인천의 박대성 석공장인도 특별히 모셨다. 김보살은 지금껏 많은 불사를 이루고 제를 올렸지만 그날만큼 감격스러운 날이 없었다. 낙성식에 탄허스님이 축사를 하면서 남긴 특이한 말이 있다.
“아, 태백산 천제단 밑 정기가 어린 터에 단종임금을 기리는 비석을 세웠도다. 긴 세월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어주며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비가 되기도 하였던 그 자비스러운 마음을 이제야 비석을 세워 알리는도다. 이제는 태백산 산신령이 되셔서 수많은 민생을 보살피고 국토의 번창을 챙기실 것이도다. 비록 한스런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그 한이 승화되어 민생과 국토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도다.”
“꿈속에서 단종임금의 부름을 받고 불사를 일으킨 김보살은 진심 어리고 열정적인 발원을 하여 위대한 비각을 이루었으니 진정한 보살이기에 그에게 김진정행이라는 법명을 다시 내린다. 수많은 보살들과 처사들의 공덕이 함께 하였으니 비각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멀리 인천에서 참석해 주신 박대성처사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비석을 새기는 각고의 노력의 대가를 챙기지 않고 불사에 보탠 그 신심은 성은 다르지만 석굴암을 건립한 김대성의 화신이라고 여긴다.”하고 탄허스님은 의미심장한 축사를 하였다.
탄허스님이 한 축사에서 김보살에게 진정행이라는 법명을 새로 내렸다. 그전에는 그냥 김보살이라고만 부르고 별다른 법명을 붙이지 않았었다. 진정행이라는 법명도 좀 특이한데 탄허스님이 내린 뜻은 심오할 것이다. 민초이던 스님이던 보살이던 모두 다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행하여야 하늘도 감동하여 도울 것이니 그 어려운 불사를 진정성 있게 주변을 설득하고 모범을 보여 이루었다. 탄허스님은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하여 평범하기도 특이한 진정행이라는 법명을 내린 것이라고 보여진다.
다음으로 비석을 제작한 박대성처사에게 대한 찬사가 예사롭지 않다. 불국사를 세우고 석굴암을 축조한 김대성에 비유하였기 때문이다. 김대성은 현생의 어머니를 위하여 불국사를 전생의 어머니를 위하여 석굴암을 세웠다. 그 유명한 김대성과 이름이 같기도 하지만 그에 갖다 붙인 것은 필시 무슨 인연이라도 서로 연결될 것이다. 후일 김진정행보살이 박대성처사의 가문은 사육신인 박팽년선생의 후손이라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박팽년선생을 어찌 박대성처사가 잊을 수가 있겠는가. 단종복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생의 후손이기에 지극 정성으로 비석에 글자를 새겨 넣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지금의 단종비각을 탄생시킨 김진정행보살과 박대성처사는 물론이고 꿈속에 나타난 단종과 문수보살의 출현은 단종비각을 신비롭고 영험스러운 성소로 만들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성도 이름도 밝히지 않고 지나가다가 몇 시간이나 밧줄을 당기고 뒤에서 밀고 하던 수많은 등산객들의 무주상 힘보시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선 사람이 최선을 다해야 하늘도 돕는다는 진인사대천명이요, 지성감천이 맞는 것 같다. 태백산 천제단에는 단군이 그 아래 망경사의 비각에는 단종이 광부들과 떼꾼들을 보호하고, 온
민족의 구원자가 되어 세세년년토록 그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