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꾼의 노래
강원도 산골인 정선에는 아우라지라는 곳이 있다. 인근에는 여량이라고 하여 산간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넓은 들판이 있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벌판이 있으니 귀한 특산물도 나오는 지역이다. 아우라지는 송천과 골지천이 함께 만나 어우러지기에 불려진 이름이다. 아우라지는 여름철 장마가 오거나 가을 태풍으로 큰 물이 들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떼꾼들이다.
어느 날 나루터에서 어릴 때부터 꼬치친구들인 김첨지와 조생원, 그리고 강태공과 박춘봉이 모여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보게들, 어서 빨리 큰 물이 들어야 한양으로 떼를 몰고 갈 건데 이렇게 가물어서야 되겠는가. 작년에는 그런대로 몇 번을 떼를 실어 날라 먹고살았지만 올해는 앞이 캄캄하네 그려. 춘봉이나 생원이도 마찬가지일 테고 태공이는 그래도 좀 나은 편 일거라고 보이네.”하고 김첨지가 먼저 말을 끄집어낸다.
“아따, 형편이 낫다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만. 작년에도 우리 모두 한조가 되어 똑같이 품삯을 받았는데 어디다가 쑤셔 박았기에 돈이 없다는 말인고. 나는 꼬박꼬박 그 돈을 집에 갖다 주었는데 자네들은 한양 마포에서 탕진한 모양인가 보네.”하고 강태공이 말한다.
“아이구, 강태공이 낚시하는 법도 잘 알 텐데 미끼를 안 쓰니까 화류방에서 여인들이 달라붙겠는가. 사람이 먼저지 돈이 먼저든가. 젊었을 때 힘이 있을 때 돈도 쓰야 맛이 있지, 늙어서 쓰본들 제대로 맛이 나겠는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래가 왜 생겼는지 자네는 모르는가.”하고 여자 잘 후리기로 소문난 박춘봉이 말을 한다. 이렇게 친구들 간에 모여 이런저런 소담을 나누니까 그런대로 시간은 흘러간다. 그런데 기다리는 비는 오지를 않고 온다면 병아리 오줌 싸듯 찔끔찔끔 내리니 한숨만 더해 간다.
이제부터 가뭄이 길어지니 논농사는 보나 마나 흉작이고 밭뙈기에 심어 놓은 가뭄에 잘 버티는 수수만 그런대로 자라고 있었다. 아낙네들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곤드레나물을 캐와서 보릿가루나 밀가루에 풀어서 나물밥을 해 먹으니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질리고 만다. 친구들 네 명은 배고픈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일 년에 몇 번을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가보는 것이 무척 기다려지는데 배는 있는데 물이 없어 뜨지를 못하니, 그놈의 삿대를 저어 볼 수가 있겠는가. 그놈의 물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강물이기도 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면 돈이 아니겠는가. 그놈의 삿대는 항상 튼실하게 지니고 다니지만 저어볼 수가 없으니 애가 타기만 한다. 이 모두 다 하늘의 뜻인지라 어쩔 수는 없고 네 명의 불알친구들은 실없이 불알만 만지작 거리니 그럴수록 큰비가 내리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이 네 명의 친구들이 서로 부르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고 성격을 빗대어 지은 별명인데, 단 한 사람 춘봉이는 본 이름 그대로이다. 그의 별명을 선달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기 아버지가 엿듣고 유학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그런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는 별명을 붙여서야 되겠냐고 크게 호통을 쳐서 본명 그대로 부르고 있다.
어느 날 저녁 큰 우뢰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리면서 장대비가 끝없이 쏟아지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우라지 나루는 큰 물이 불어 힘차게 흘러간다. 드디어 친구들이 기다리는 비가 쏟아져 내린 것이다.
“아이구, 드디어 하늘 문이 열렸구마이. 문이 열려야 비도 오고 사랑도 오고 가고 하지. 그 얼마나 기다렸던 비소식인가. 저 철철 넘치다 못해 우르르 실려 가는 물줄기 좀 보시게. 며칠 후면 한양 구경하게 생겼구만. 조생원이 하고 박춘봉이가 살판이 나버렸구만. 흐흐.”
“야, 이 사람아. 비가 많이 온 것하고 내가 살판난 것 하고 무슨 상관이던가. 자네가 그러하니 그 설레는 마음을 주체를 못 해 남 핑계를 되구만. 김첨지 자네는 똑 지마음을 남에게 갖다 붙이는 말솜씨가 일품이제. 어쨌든 한양구경도 하고 돈가뭄에 떼돈 한번 만져 봄세.”하고 박춘봉이 응수한다.
“김첨지 말이 틀린 건 아니제. 우리야 하도 자주 만져 싫증이 나나 그래도 운우지정을 나눌 수 있는 짝이 있지만, 김첨지는 각시가 친정어머니 병수발하러 멀리 가있다 보니 그렇지를 못하니 마음이 저 태백산 구름처럼 붕붕 떠다니듯 안 하겠는가. 그러나 저러나 미인송을 묶을 준비를 하여야겠구만. 우리 조가 맡은 게 미인송 다섯 동가리이니까. 서둘러야 할 걸세.”하고 강태공이 말한다.
“그렇지. 일단은 떼를 묶어 출발하여야 돈도 벌고 꽃도 따고 하지 않겠는가. 그 한양이라는 곳이 우리 같은 강원도 산골 출신들이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니, 우리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봐야제. 곳곳에 도사린 여울을 잘 벗어나고 무사히 마포나루에 도착해야 하니 지금부터 몸과 정신을 가다듬어 출발 준비를 잘하세나.”하고 조생원이 말한다.
이렇게 하여 뗏목의 출발지인 아우라지 나루터는 미인송을 엮는 작업이 밤을 새워가며 이루어진다. 한양으로 출발하는 뗏목의 화주들은 떼꾼들에게 약간의 선수금을 주니, 각자 집에다 갖다 주니 집사람들은 뒷산의 밤송이 터지듯 입이 벌어진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돈이라 그들은 잠시 잠깐 만져만 보고 손만 탈탈 털었다. 그래도 집안에 부모님과 새끼들을 먹여 살리려면 그럴 수밖에 더 있겠는가. 내일이면 출발하는 날이라 그들 네 명의 친구들은 한조를 이루어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불의의 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떼돈을 벌어 한 일 년은 무난히 집안 살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출발하기 전날 밤 네 명은 동네 주막에서 간단히 탁배기를 곤드레나물을 안주 삼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야, 친구들아. 내일이면 출발인데 마음도 설레고 또 불안하기도 하니 한잔 들이켜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세. 일단 뗏목에 올라타면 말할 기회도 없고 말을 하더라도 물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면서 가야 한다. 작년에도 그 거칠기로 유명한 황새여울에서 뗏목이 뒤집혀 몇 사람이 물귀신이 되기도 하였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하고 뗏목 조종에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김첨지가 먼저 말을 한다.
“아, 그렇지. 뗏놈들이 떼돈을 번다는 것은 남들이 하기를 꺼려하는 일이니까 그런 게 아닌감. 나도 몇 년 간 뗏목을 타보니까 그 살벌함으로 다시는 안 탄다고 마음먹었는데, 돈이 궁하니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더라구. 우리 마을에서도 옛날부터 일 년에 꼭 한두 명이 황천길로 가지 않았었나. 나의 노모가 그만하라고 말려도 그 길이 아니면 가족들 먹여 살길 길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이번에도 마음을 정갈히 하여 용왕님이 보살펴 주시길 기도나 하세.”하고 먹여 살릴 식구가 많은 강태공이 진지하게 말을 한다.
“맞아. 어제까지는 한양이 어떠니 마포나루 화류방이 어떠니 했지만 내일부터는 실없이 입방정을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조심해야 하겠지. 우리 친구들이 그나마 한조가 되어 생사를 같이 하니 단합도 잘되고 지금까지 최고의 떼꾼들이라고 명성이 자자하지 않던가. 맡은 바 임무를 잘하여 생명도 지키고 돈도 벌고 해야 않겠나. 죽으나 사나 이길로 간 것이니까 두렵지만 고마운 직업이 아니던가.”하고 박춘봉이도 한마디 거든다.
“그렇지. 나도 이 길을 버리고 싶은데 한번 들여 놓으니 나갈 수가 없더구만. 그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좌우에 펼쳐진 뼝대와 절경을 조망하며 내려가는 그 낭만은 무엇에 비교할 수 있겠던가. 그 폭포수와 같은 여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나왔을테 긴장과 두려움과 안도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 아니던가. 좌우지간 우리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서 무사히 한양에 도착하여 마포에서 거나하게 한잔 하세 그려.”하고 마지막으로 조생원이 말을 한다.
다음날 네 명의 떼꾼은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무사히 다녀오겠다고 어른들에게 고하고 아우라지 나루터에 모였다. 모두들 기대감에 얼굴이 밝기도 한편으로 불안감에 말문을 쉽게 열지는 않는다. 먼저 분위기를 잘 띄우는 조생원이 한마디 한다.
“여보게들, 모두 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는가. 드디어 기대하던 낭만의 뱃놀이를 하는데 얼굴을 좀 펴보게나. 인생은 어차피 뱃놀이와 같은 것이 아니던가. 밤이면 그 뱃놀이요 낮이면 그 고된 뱃놀이 이지만 지금하는 고된 뱃놀이 뒤에 달콤한 뱃놀이가 기다릴 테니 안그런가.”
“야, 조생원이 좀 방정맞은 소리를 하네. 오늘부터는 천지신명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니 언행을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여튼 그 입방정은 알아주어야 한다니까.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 뗏목 운행 요령과 조심할 점을 말할 테니 잘 듣게나.”
“아까 당부한 쓸데없는 입방정은 위험한 고비를 벗어날 때까지 일체 해서는 안되네. 아우라지에서 조양강을 따라 정선까지는 강폭이 넓어 천천히 내려가지만, 가수리부터는 강이 굽이굽이 휘어지고 강폭이 좁아 물살이 거세다네. 그러니 각자 맡은 대로 긴 장대로 바위에 떼가 부딪히지 않도록 하고, 나는 앞구잽이이니 앞에서 강길을 터서 조종을 할 요량이니 그렇게 알게나.”하고 선장 격인 앞구잽이 김첨지가 진지하게 말을 한다.
“맞아, 지금부터는 한양에 당도할 때까지 묵언을 하고 서로 수신호로서 말을 대신하도록 하세. 그 요란한 물소리 때문에 말을 해도 못 알아들어 하지 말래도 그렇게 될 걸세. 아무리 친구지간이지만 앞구잽이인 김첨지 말을 따르고 일체의 시비는 가리지 말도록 하세.”하고 매사에 신중한 박춘봉이 말을 한다.
“지당한 말씀이요. 떼돈이 그리 쉽게 벌어지던가. 뗏목을 잘못 다루어 떼가 박살나거나, 그보다 더해 여울을 잘 못 넘겨 뒤집히면 돈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도 잃으니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네. 사람이 살아야 돈이 필요한 게지,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람.”하고 강태공도 한마디 거들며 선장 격인 김첨지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이렇게 미인송 다섯 동가리가 한 떼가 되어 아우라지를 출발하여 강을 따라 유유히 흘러간다. 뒤로는 발왕산이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저 멀리 백운산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정선읍을 지나서 조양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가수리부터 강이름이 동강으로 바뀐다.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좁은 협곡을 따라 기나긴 떼를 몰아야 하니 모두들 정위치로 가야 하고, 다시 앞구잽이인 김첨지가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말한다.
“지금부터가 진짜로 위험한 물길이네. 수년간 해왔었지만 어느 장소에 가면 틀림없이 그런 현상이 있으니 다시 한번 주의를 하니 잘 듣게나. 가수리를 거쳐 점재나루를 지나 절매나루 까지는 회돌이가 아주 심해 각자는 장대로 떼가 강가 바위에 닿지 않도록 잘 사용하여야 하네. 그리고 절매나루 아래에 있는 무당소를 지나서부터는 진짜 생사가 걸린 물길이니 최선을 다하고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네.”
“일단 제일 큰 고비인 황새여울이 우리의 운명을 거의 반이나 결정하고 나머지는 어라연 아래에 있는 된꼬까리와 삼옥마을 앞에 있는 둥글바위가 거의 반을 차지할 것이네. 그 구간을 통과하면 큰 방심만 하지 않으면 저절로 물길의 흐름에 맡기면 될 걸세.”하고 김첨지가 다시 한번 주의를 당부한다.
이렇게 하여 반나절이 걸려서 절매나루를 거쳐 무당소에서 잠깐 흐름은 쉬어간다. 무당소는 물의 깊이가 있고 강폭이 넓어 흐름이 느리니 떼도 숨을 고르고 떼꾼들도 한숨을 돌린다. 이곳은 천당과 지옥으로 가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장소 같기도, 그 험한 여울을 건너기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주는 장소 같기도 하다. 무당소 앞에는 문희마을이 몇 가구 초가를 이루고 있고, 그 뒤편의 백운산자락과 칠족령이 눈앞에 들어온다. 그 빠르던 강물이 신기하게도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구경하라는 뜻인지 생사의 갈림길을 앞에 두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라고 하는지 시간을 준다. 강물의 마음도 사람의 마음처럼 참으로 알기가 어렵다. 네 명의 떼꾼들은 무당소에서 합장을 하며 눈을 감고 천지신명에게 안전을 바라고 안심을 위한 기도를 올린다. 무당소라는 이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곳에는 이미 산신할매를 모시는 산신당이 있고 떼꾼의 안전을 위해 매년 용왕제를 올리니까 불려진 이름일 것이다. 그만큼 거기에서부터 영월 덕포나루까지가 생사의 갈림길이니 그럴 만도 하다. 작년에는 아우라지 마을의 뗏군들 세 명이 물귀신이 되었고, 이번에 같이 떼를 탄 박춘봉의 사촌동생인 춘식이를 그때 삼켰지 않았던가. 몇 년 전에는 구절리 출신들 떼꾼 네 명을 삼켰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숫자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드디어 무당소를 떠난 뗏목이 동강을 타고 내려간다. 조금 아래에는 그 악명 높기로 유명한 황새여울이 기다리고 있다. 다섯 동가리를 묶은 뗏목은 무슨 물뱀처럼 머리를 들고 꼬리를 흔들면서 강물 위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저 앞에서 물길을 조종하는 김첨지의 긴 장대가 이리저리 무슨 칼춤 추듯이 흔들린다. 주변을 둘러싸고 호시탐탐 생명을 노리는 악귀를 쫓아버리려는 듯 한 장대 놀림이다. 앞구잽이는 오랜 경험을 쌓고 담력이 강하며 어느 위기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선발한다. 그러니 다른 떼꾼들 보다 보수도 더 높게 주니 뗏목과 생명을 지키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머지 떼꾼들은 중간중간 포진하여 떼가 바위에 걸리지 않도록 보조적인 역할을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느끼는 공포감은 마찬가지이다.
무당소를 흘러내려온 물길이 갑자기 빨라진다. 바로 눈앞에는 큰 파도같이 솟아오른 물기둥이 보이고 바로 아래는 폭포수 같은 물보라가 날린다. 이제 동강의 아가리라고 하는 황새여울에 진입하기 일보 직전이다. 저 앞에 보이는 김첨지의 장대가 신중하게 흔들린다. 우당탕하는 큰 소리와 함께 황새여울의 목구멍에 진입하였다. 이제는 그 목구멍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엄청난 물을 뱉어내어야만 살길이 열리는 것이다. 제일 앞에 있는 떼가 공중으로 한번 크게 치솟더니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불안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세명의 친구들이 가슴을 조아리며 걱정을 한다. 공중에 솟아 오른 선두 떼에 타고 있던 김첨지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며 잘못하면 중심을 잃을 상황이다. 그 순간 넘어지면 끝장이고 어쩌던가 떼에 붙어서 선두를 여울에서 잘 벗어나게 하여야 한다. 여울에 진입하는 순간에는 물밑에 큰 바위가 없는, 물살은 빠르지만 낮은 지점으로 선수를 틀어야한다. 그 딱 몇 초가 떼와 생명의 운명을 좌우하니 조종실력이 제일 중요하고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이윽고 선두는 황새여울을 지난 것 같고 두 번째 떼가 넘을 차례이다. 다시 한번 떼는 공중으로 치솟더니 바로 착수를 하였으나, 세 번째가 다가 설 차례이다. 그 떼에 타고 있던 강태공의 장대질이 예사롭지 않으니, 무사히 여울을 벗어날까 염려가 된다. 강태공은 일행 중에서 근력이 제일 약한 편에 들어 제일 안전한 중간에 포진시켰지만 그 무거운 장대를 놀리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기도하듯이 세 번째 떼가 벗어나기를 지켜본다. 다시 한번 공중으로 치솟은 떼가 물 위에 내려앉았을 때 강태공은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게 아닌가. 아무리 중간에 포진해 있다지만 앞서가는 떼와 대열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엄청난 물길의 반작용에 의해 떼를 묶은 칡넝쿨이 끊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때가 좌우로 급격히 흔들리더니 바로 섰다. 다행히 대열을 이탈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나머지는 네 번째 떼에 타고 있는 조생원의 차례이다. 앞선 장면을 멀리서 지켜본 그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불길한 기분이 들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눈을 뜨자니 불안하고 감자니 떼가 어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자신이 잘못하여 선두가 이끄는 방향대로 떼를 넘기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니까 정신을 가다듬고 열심히 장대를 흔들었다. 가벼워라고 만든 왕대나무 장대지만 그의 키보다 서너 배 긴 장대를 다루기는 쉽지 않았지만 젖 먹은 힘을 다하여 이리밀고 저리 밀고 하여 여울을 넘겼다. 마지막 꼬리에 달린 떼도 조종을 해주니 무사히 따라와서 여울을 넘어왔다. 이제는 문산나루까지는 순탄한 흐름이다. 진탄을 지나서 무사히 뗏목은 문산나루에 다다랐으나, 하루저녁을 쉬는 곳은 만지나루에서 하기로 하였으니 큰 고비를 넘겼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용왕님의 보살핌인지 관세음보살의 원력인지 모르지만 첫 관문을 무사히 벗어났다. 저 앞에 탄 김첨지가 손을 흔들며 잘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니 마지막에 탄 조생원도 같이 무사하다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제 뗏목은 문산나루를 벗어나 그 아름다운 소가 있는 어라연으로 흘러간다. 주변 뼝대에는 동강 야생화들이 피어 고개 숙여 맞이하고 옥순봉은 우아하게 솟아있고 용유담은 여유롭게 물결이 춤을 추고 있다. 드디어 첫날밤을 보낼 만지나루에 도착하였고, 일행은 뗏목을 나루에다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전산옥이라는 오래된 숙소로 갔다. 뗏목에서 내려서 서로 무사함을 자축하였지만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고 그대로이다. 전산옥에 방을 잡고 대청마루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앞구잽이인 김첨지가 첫 말을 끄집어낸다.
“아이구, 친구들아 무사해서 천만다행이다. 나는 황새여울에 진입할 때 꼭 악마의 아가리에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네. 작년에는 그냥 순순히 들어갔는데 요번에는 어찌 된 판인지, 마냥 두렵고 떨리데. 나이를 먹고 애들도 커가고 하니 집안 걱정이 들어서 그런가 보네.”
“김첨지가 오늘 정말 수고가 많았네 그려. 나는 자빠지는 바람에 크게 잘못될 줄 알았는데 다시 밑에서 나무가 퉁하고 솟아올라 받쳐주어 바로 서게 되었지. 그때 넘어졌더라면 떼가 주변 바위에 부딪혀 부서졌을 테고, 나도 그 충격으로 물에 떨어졌을지 모를 테니 천지신명이 도우신 게지.”
“맞아, 나도 태공이가 넘어지는 것을 뒤에서 쳐다보니 아찔했고, 나마저 덜렁 겁이 나더라니까. 그래서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에 간절히 하늘에 빌었지. 하여튼 이번 첫 물길은 좀 예사롭지 않았네 그려.”하고 아직도 굳은 표정의 조생원이 말을 한다.
“아이구 참,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나도 앞에 있던 김첨지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낭패감을 느꼈는데 운동신경이 빨라 제대로 균형을 잡데. 그래서 나도 심호흡을 하고 순서를 기다리니 무사히 벗어나지더라구. 앞에 선 떼가 잘못되면 두 번째, 세 번째 모두 다 흔들리게 마련이니 첫 단추를 잘 꿰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자아 자, 모두들 탁배기 한잔씩 하면서 긴장을 풀어 보도록 함세.”하고 박춘봉이 말을 한다.
“아마 내가 생각할 적에 이번이 어렵게 느껴진 것은 매년 그랬다시피 공백기가 길어 감각이 무디어진 것이라고 보아야제. 작년 가을 이후 근 열 달 만에 나서는 물길이 아니던가. 겨울과 봄을 보내면서 감각이 떨어졌으니 다음 항차부터는 좀 나아질 것이네. 그런데 겁이 나서 이 길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넘의 가난이라는 게 놓아 주지를 않네. 다 우리의 천직이라 생각하고 넘겨버리세.”하고 마지막으로 김첨지가 마무리 한다.
이윽고 전산옥 주모가 차려온 안주로 탁배기를 들이키니 서서히 긴장도 풀리고 흥이 일어난다. 전산옥이라는 주점은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 이름은 원조 전산옥 주모의 이름을 따서 대를 이어 며느리들이 주모를 맡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전산옥에 대한 노래 가사는 떼꾼들의 마음을 여실히 대변해주고 있지를 않은가. 그들은 대청마루에서 그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한다.
그믐달 초생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띄워 놓았네
만지산에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뜬 구름만 흘러도
팔당주막 들병장수야 술판 벌여 놓아라∼
전산옥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일행들은 다시 뗏목에 묶인 밧줄을 풀고 출발을 준비한다. 저녁에 마신 탁배기가 긴장을 풀어주고 아침에 주모가 끓여준 황태해장국이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 출발에 앞서 앞구잽이인 김첨지가 엄숙히 말을 한다.
“모두들 잘 주무셨는가. 오늘 일정은 바로 밑에 두 번째 관문인 된꼬까리를 벗어나서 마지막 관문인 둥글바위를 통과하는 것이네. 황새여울은 물길이 거칠어서 위험하지만 된꼬까리는 이름 그대로 물길이 빙빙 돌아서 그 소용돌이에 말려들면 벗어나지 못한다는 곳이네. 내가 조종하는 대로 가만히 두고 만약에 소용돌이에 걸려들면 비상대책을 알려줄 테니 잘 되기를 빌어만 주시게.”
“그러니 그 소용돌이의 눈은 강 중심에 동그랗게 보이니까 눈이 밝은 내가 잘 찾아야 하고 최대한 강언저리에 떼를 붙여 몰아야 하니 자네들은 안으로 밀려간다는 조짐이 보이면 장대를 강심에 꾹꾹 눌러 꽂아 주면 되네. 이곳은 소용돌이가 수시로 위치를 바꾸므로 천천히 내려가면서 관찰해야 하네.”하고 김첨지가 연이어 말을 한다.
이제 뗏목은 만지나루를 떠나 거운마을 앞에 있는 된꼬까리로 내려간다. 넓은 소가 있어 유속은 느리지만 곳곳에는 소용돌이가 보인다. 세 개가 되었다가 다섯 개가 되었다가 수시로 바뀐다. 김첨지는 내려가면서 유심히 관찰을 하여 강기슭으로 선두를 잡는다. 일행도 그에 맞추어 강 중심으로 뗏목이 밀려가지 않도록 장대로 버텨준다. 아주 서서히 강 중심을 피해 뗏목은 흘러가지만 안심을 할 단계는 아니다. 선두에 선 김첨지는 조심스레 안전한 물길을 열어 나간다. 마지막 후미까지 통과하여야 된꼬까리를 벗어날 수 있기에 긴장이 된다. 만약 운이 없거나 예측을 잘못하여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뗏목은 부서지거나 물길의 흐름이 바뀔 때까지 제자리를 맴돌게 되니 뗏목을 포기하더라도 인부들 역시 빠져나갈 수 없으니 꼼짝없이 물 위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강 주변으로 떼를 밀어붙여 내려가자니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다. 그렇다고 마음이 급해 강심으로 떼를 몰면 위험 속으로 스스로 빠져 들어가니 기다림이라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아주 서서히 흘러내려가서 드디어 된꼬까리를 벗어났다. 앞선 선두의 김첨지가 손을 흔들고 마지막으로 선미의 조생원도 손으로 답을 하니 무사히 통과하였다는 신호이었다. 이제는 삼옥리에 있는 마지막 관문인 둥글바위쪽으로 뗏목이 흘러간다. 그 둥글바위는 강 중심에 있어 물살이 사나워서 조종을 잘못하면 그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니 그 또한 위험한 곳이다. 뗏목은 물길따라 서서히 흘러 둥글바위를 앞두고 있다. 거센 물살이 강 중심으로 흘러가니 뗏목도 그 흐름을 따라가므로, 앞구잽이인 김첨지는 잔뜩 긴장을 한다. 그 초입에 들어서기 전에 선두의 방향을 물길이 느린 쪽으로 장대로 있는 힘을 다해 밀어 재낀다. 그런데 본류의 물의 힘이 너무 강해서 뗏목은 강 중심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로 비상상태이어서 김첨지의 얼굴이 굳어지고 이마에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만약 충돌에 대비하여 뒤를 향해서는 엎드리라고 손짓을 한다. 아마 자기의 의도대로 뗏목이 통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급한 물길을 따라 뗏목의 선두는 둥글 바위 쪽으로 끌려가기에 충돌은 피해야 한다. 김첨지는 장대를 둥글바위를 향해 겨누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다. 드디어 선두가 둥글바위에 접근하고 그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는 듯하다. 충돌 직전의 상황인 온 것이다. 뒤에서 엎드려 쳐다보는 동료들은 가슴이 쿵쿵거리고 모두들 얼굴색이 노랗다. 눈앞에 둥글바위가 다가왔기에 김첨지는 장대로 있는 힘을 다해 둥글바위를 밀어재낀다. 그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뗏목의 속력에 의해 충돌이 불가피하게 보인다. 이제는 인력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고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모두는 천지신명에게도 또 무심하게 보이는 둥글바위에게도 살려달라고 빌었다. 뗏목의 선두는 둥글바위를 스치듯이 하면서 지난다. 나머지 엎드린 일행들도 일어서서 스쳐가는 둥글바위를 밀어내니까 뗏목은 자세를 바로 잡아 둥글바위를 기적적으로 벗어났다. 천만다행이요, 운이 따랐고, 천지신명이 도운 것이다.
이제부터는 위험한 고비는 남지 않았고 그냥 강물의 흐름에 맡기면 된다. 어느 듯 저 멀리 눈앞에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덕포나루가 나타난다. 일행은 이제 선두에 있는 떼로 자리를 옮겨 함께 모였다. 별도로 떼에 나누어 탈 필요가 없기에 선두에 모여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겁이 좀 많은 박춘봉이 말을 건넨다.
“아이구, 김첨지 친구야 너무 고생했다. 이번에는 진짜 충돌하여 죽는 줄 알았다. 황새여울도 위험했지만 둥글바위가 정말 겁나는 곳이네. 매년 물길을 타 보았지만 이 번 처럼 동강물이 불어난 적이 없었기에 아슬아슬한 경험을 하였네 그려.”
“아이구 말도 마라. 나는 된꼬까리에 있는 소용돌이가 눈을 뻐끔거리며 목을 쏙 내밀고 있는 게 염라대왕 같더니만, 이번 둥글바위는 눈앞에 드러난 시커먼 악귀처럼 보이데. 김첨지가 조종을 잘못했으면 우리 모두 황천길로 갔을 텐데 하늘이 보살펴 준 걸로 보이네. 아이구 무서워라.”하고 조생원이 말을 한다.
“그래 말이제. 이번 홍수로 물길이 사나웠었는데 미인송의 화주가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큰 낭패를 당할 뻔 하였제. 품삯을 정산할 때에 단단히 따져야 하겠고, 죽다가 살아 났으니까 장례비용까지도 청구해야 안 되겠나. 김첨지는 조정한다고 하늘이 노랬겠고 우리들은 죽을 까봐 겁이 나서 혼이 다 빠져 버렸으니 말 다했제.”하고 강태공이 이런 급한 물길로 내보낸 화주를 탓하면서 말한다.
“자아 자, 다들 고생 많았고 이미 각오한 일이 아니던가. 지금부터 나는 좀 쉬어야 겠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신경을 써서 지금은 앉아 있을 기력도 없다네. 누가 재미있는 이야기나 꽃노래나 한번 해봐라. 이제 부터 한양까지는 사흘 안에 도착하니까 걱정은 조금도 안 해도 된다. 안심 푹 놓고 마음대로 이야기해보세. 다음 정박지는 단양 꽃거리이니 거기에서 들병장수들 불러 거나하게 한잔 하세.”하고 김첨지가 아직까지 긴장이 덜 풀린 듯이 몸을 떨면서 말한다.
큰 고비는 다 넘겼고 이제는 물길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들의 마음과의 싸움이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 한동안은 마음을 비우게 되지만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어디서 나오지 모를 고뇌와 욕망이 꿈틀거리는 게 아닐까 여겨진다. 그 일행들의 머릿속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보상으로 낭만을 찾아가기도 허황된 망상으로 빠져들어 가기도 한다.
덕포나루를 벗어나서 동강과 서강이 하나가 되어 남한강이 되는 지점에서 조생원이 말문을 연다.
“아, 여기가 한 많은 고장인 영월이로세. 단종이 유배 와서 죽은 곳이며, 많은 시녀들이 절벽 위에서 뛰어내려 뒤따라갔으니 얼마나 한스러운 고장이 아니던가. 저 마주편에 보이는 절벽이 낙화암이라네. 저 육육봉 밑 서강변에는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지. 이곳 영월에 벼슬을 버리고 단종을 시봉 하려고 온 충신들이 많이도 있제.”
“아이구, 조생원이 어찌 그리 영월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안다는 말인고. 나야 단종이 유배 와서 죽은 곳이라는 것만 들었는데 상세하게도 아는구만. 세조가 그 어린 조카인 단종을 죽였으니 아마 천벌을 받았을 게야.”하고 박춘봉이 말한다.
“조생원이 아마도 선친의 영향을 받아 충절의 고장에 대해서 많이 알 것이라고 보네. 아마 생육신인가 하는 분의 후손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맞는지 모르겠네.”하고 강태공이 말한다.
“내가 알기로는 사육신 다음으로 충신들인 생육신 중 한 분이 맞는 걸로 아네. 오래전에 술자리에서 자규가 우는 밤이 어쩌고 하면서 시를 읊는 장면이 떠오르네. 한양으로 내려가면서 역사적으로 이름난 장소가 있으면 해설을 좀 해주시게나.”하고 이제사 긴장에서 깨어난 김첨지가 말을 한다.
이 네 명의 친구들의 집안은 서로 같은 듯 다른 듯 특색이 있다. 김첨지 집안은 옛날 동해안의 건어물과 소금을 거래하던 거상이었는데, 부친대에 이르러 외상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잘못되어 크게 실패하고 말았다. 강태공의 집안은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 후손으로 왕자의 난을 피해 깊은 산골로 피신해 온 족보 있는 집안이다. 박춘봉의 집안은 무슨 당파싸움에 말려 유배온 선비 집안이다. 조생원의 집안은 고려시대 조선창건에 반대하여 정선골의 두문동으로 피해 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모두들 공통적으로 집안의 구체적인 내력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옛부터 은인자중 하면서 살아온 게 틀림없을 것이다.
이제 뗏목은 남한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간다. 서강의 물이 합쳐졌으니 강폭도 근 두 배로 넓어 보인다. 태화산 아래편에 고씨동굴을 지나 영춘으로 흘러가니 남대천이 만나는 소백산 자락에는 온달산성이 아련히 보인다. 그 적벽을 따라가며 보는 풍경은 언제 봐도 기이하고 옛스럽다. 마음이 편하니 보이는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고 역사의 향기가 밀려온다. 역사해설사 같기도 한 조생원이 말문을 연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역사의 현장이 많네. 온달산성은 알다시피 고구려의 평강공주와의 사랑이 엉켜있지. 저기 산중턱에 무슨 두꺼비 같이 생긴 성이 온달산성이란 말일세. 그 아래는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연상케 하는 암벽이 늘어서있제. 오늘 날이 맑아 저 소백산 봉우리들이 다 보이네.”
“뭐시라꼬. 저 산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성터가 온달산성이라고 했나. 참말로 좁은 땅덩어리 차지할려고 민족끼리 싸우고 지랄했네. 고구려는 중국 대륙으로 가면 되지 뭐할라고 남쪽으로 내려왔는지 이해하기 힘드네.”
“그것은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어 끊임없이 고구려의 후방을 괴롭히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게지. 뒷문이 열리면 불안하니까 후환을 없애려고 장수왕인가 누군가가 남하를 하였었제.”하고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르지만 박춘봉이 제법 유식하게 말을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뗏목은 단양의 천동굴 옆을 지나 도담삼봉에 도달하였다. 단양팔경에 도담삼봉이 제일 첫 번째로 치는 명소가 아니던가. 야사에 의하면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 그곳이 그리워서 자신의 호로 사용하였다는 설화가 있다고 조생원은 일행들에게 알려준다. 조금 더 물길을 타고 내려가니 중간 휴식지인 꽃거리에 도달하였다. 주변 넓은 강변에는 먼저 온 뗏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뗏목의 한가운데에는 장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잠하게 말문을 닫고 있던 박춘봉이 눈을 부시시 비비며 한마디를 한다.
“아, 벌써 단양 꽃거리에 도달했구만. 오늘 여기서 아줌마들 불러 한번 놀아볼까. 이런 맛으로 떼를 타지, 안 그러면 무슨 낙으로 살겠는가. 나는 그 들병이 아줌마들의 풍성한 궁둥이가 그리워 죽겠다.”
“아이구, 춘봉이가 세상을 지 세상을 만났네 그려. 들병장수야 애정도 없고 돈벌이한다고 궁둥이를 흔들고 애교를 부리지 니가 좋아서 그러겠나. 다 돈 보고 하는 연극이라고 생각하게나. 언제 춘봉이가 세상 물정을 알지 걱정이네.”하고 강태공이 훈수를 둔다.
“태공이가 무슨 판 깨지는 소리를 하고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게 그런 재미도 있고 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떼를 타는 게 아니던가. 태공이는 떼돈을 몽땅 여편네한테 다 갖다 바치는 것 같은데, 그러면 같은 동네에 사는 우리들의 입장이 난처해지니까 조그만 타락하여 보시게.”하고 조용히 입을 닫고 있던 김첨지가 비시시 웃으면서 말을 한다.
꽃거리에 떼를 정박시키니, 나룻배를 타고 온 고운 색동옷을 차려입은 색시들이 허락도 없는데 떼에 올라탄다. 그 광경을 보고 근엄하기로 유명한 김첨지가 호통을 친다.
“지금 무엇들 하는 게요. 주인 허락도 없이 올라타니 그 어디에서 배워먹은 예절이요. 우리는 지금 지쳐있어 그대들과 같이 놀아줄 힘이 없으니 알아서 물러들 가시오.”
“아이구, 선부 나으리들 이곳 까지 무사히 오신 걸 축하드리옵니다. 우리같이 비천한 것들이 돈 많은 선부님들의 은덕이 없으면 어찌 살아가겠는가요. 허락 없이 올라타서 미안하지만 그 배는 주인이 따로 있지 않소. 주인 몰래 올라타는걸 어찌 간섭을 한단 말인가요.”하고 좀 늙어 보이는 들병이가 비꼬면서 말을 한다.
“하하, 말로써는 그대들을 당할 수도 없고 임자 없는 배에 올라탄들 무슨 흠이 되겠소. 어서 빨리 주안상을 차려 주고 장구 한번 멋지게 쳐주시게. 인생만사 봄날의 나비처럼 한철이라 아니하던가요.”하고 역시 춘봉이가 관대하게 말을 한다. 이렇게 하여 들병장수가 가져온 술을 마시고 장구소리에 맞추어 같이 노래를 부르니 이틀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다. 역시 돈이 좋은 것이며, 술과 노래도 좋은 것인데 돈이 없으면 정선아리랑 가사처럼 끈 떨어진 갓 신세와 다름이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일행은 큰돈은 아니지만 들병장수들의 일당이 될 만큼 대가를 치러 주었다.
이제부터 뗏목은 장회나루를 향해 간다. 남쪽으로는 죽령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적성이 눈에 들어온다. 강변을 수놓은 기암괴석 위에 홀로 선 소나무가 외롭게 보이고, 간간이 불어오는 강바람은 무슨 소식을 전하는 듯하다. 장회나루에 초입에 들어서자 조용하던 조생원이 입을 연다.
“바로 맞은편 강변에 있는 바위가 애절한 사연을 갖고 있는 강선대라고 하네. 단양기생 두향과 이퇴계 선생의 사랑의 징표이지. 그곳에서 퇴계선생의 부음을 듣고 두향이 뛰어내렸다는 사연이 있제.”
“아, 그렇구만. 나도 이곳을 지나가면 이상한 끌림현상이 나타나더니만 무슨 인연이 있는지 알 수가 없구만. 나는 유학을 공부하여 퇴계선생을 존경하지 않던가.”하고 박춘봉이 말을 한다.
“아마, 춘봉이는 그 시절 퇴계선생의 제자라고 보네. 두향이 보내준 매화에게 물을 주던 그 서생 말이제. 퇴계선생이 항상 매화보고 매형이라고 부르며 물을 주라고 하지 않았던가.”하고 사주팔자 관상에 정통한 강태공이 말한다.
이제는 흘러 흘러 월악나루로 향해 간다. 날이 어두워지자 강 위에는 초승달이 애잔하게 뗏목을 비추고 있다. 강가에는 제비봉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고 금수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정말 단양팔경이라더만 선경이로다. 드디어 월악나루가 다가오고 마주편 월악산 정상에는 초승달이 걸쳐져 있다. 그러자 조용하던 강태공이 먼저 말을 끄집어낸다.
“내가 이곳 월악산을 쳐다보면 언젠가는 살았거나 자주 지나갔다는 느낌이 든단 말일세. 무슨 인연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네 그려.”
“내가 보기에 태공이는 전생에 월악산 속의 미륵사에 수행하던 스님이던가, 아니면 문경에서 하늘재를 넘어 송계계곡을 거쳐 월악나루를 오가던 등짐장수가 아니었는가 추측해 보네.”하고 조생원이 그럴듯하게 말을 한다.
월악나루에서 일박을 하고 다시 남한강을 흘러가니 충주가 다가온다. 한참을 흘러가니 탄금대에 이르렀다. 다시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조생원이 말을 한다.
“여기가 그 유명한 탄금대이네. 본래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인데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치다가 패전하자 강물에 몸을 던진 애절한 사연이 있는 곳이니 고개를 숙여 묵념하면서 지나가세.”
다음 숙박지는 여주에 있는 이포나루이다. 목계나루를 지나가서 한참을 내려가니 이포나루가 다가온다. 눈을 감고 잠을 자다가 이포나루라는 소리를 듣고 김첨지가 갑자기 깨어나서 말을 한다.
“벌써 이포나루에 도착하였단 말인가. 나는 이곳을 지나면 항상 목이 메고 가슴이 아프단 말일세. 무슨 연고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네 그려.”
“김첨지는 아마 단종의 유배행렬을 이끌던 금부도사이거나 단종에게 사사의 어명을 집행하고 이곳에서 배를 탄 왕방연과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보네.”하고 역시 강태공이 추측하며 말을 한다.
이제는 양수리를 거쳐 팔당을 지나면 목적지인 마포나루에 이르게 된다. 나흘간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다가온다. 뗏목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여 이름을 바꾼 한강으로 흘러간다. 노량진이 다가왔고 노들언덕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용히 있던 박춘봉이 말을 한다.
“나는 저 노들언덕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애달프게 느껴진다네. 왜 그럴까 알 수가 없네 그려.”
“박춘봉이 자네는 내가 짐작하기로 사육신이신 박팽년 선생의 후손일 것이라고 보네. 그래서 멀리 강원도 산골로 피신하였던 게 아닐까.”하고 또다시 강태공이 그 답을 말해준다.
이렇게 하여 나흘간의 생사의 관문을 넘어가며 무사히 마포나루에 도착하기 바로 전이다. 조용히 있던 김첨지가 한마디 한다.
“내가 뗏목을 타보니까 그것이 우리 인생의 축소판인 것 같다고 항상 느껴지더라구. 동강에서 사투를 벌이며 치열하게 장대를 젖는 것이 인생의 초창기라면, 꽃거리에서 노닐면서 술판을 벌이던 것이 화려한 중년의 인생이며, 강물 따라 조용히 흘러가면서 인생을 되돌아보는 지금이 쓸쓸한 노년기라고 말일세.”하고 김첨지가 제법 유식한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떼꾼들의 이야기도 끝이 난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 험난한 물길과 싸워 이겨왔듯이 자신의 마음속에 잠복된 욕망을 잘 다스려 무사히 고향으로 귀환하는 일이 남아있다. 그들이 과연 내재된 본능이라는 욕정을 털어버리고 떼돈을 온전히 보존하여 비탈밭에서 땀을 흘리며 고생하는 각시들을 호강시킬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마포나루의 화류방이나 객주집의 원초적인 유혹을 뿌리치고 떼돈을 기다리는 가족 품에 안기기 위해 마음과의 싸움이 자연과의 사투 못지 않게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